오렌지족과 X세대,
그들이 나이를 먹어 불혹이 되다
3545들은 어릴 때 프로야구 개막도 봤고, 88올림픽도 지켜보고, 교복 자율화도 겪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도 봤다. 햄버거와 피자 등을 한국에서 처음 소비하던 시기도 누렸고, 20세 전후에 해외여행 완전자유화를 겪으며 배낭여행을 비롯해 해외여행을 본격적으로 즐기기 시작한 세대이기도 하고, 소련의 몰락도 지켜봤다. 20대에 서태지를 비롯한 왕성해진 90년대 대중문화 부흥기를 겪은 세대이기도 하고, 대학졸업 때이자 사회생활 초기에 IMF 외환위기를 겪기도 했고, IT산업 열풍과 거품도 겪어본 세대다. 그야말로 버라이어티한 경험을 누린 3545들은 더욱더 자기표현에도 강하고 과거의 전통적 가족관과 결혼관에 대해서도 능동적인 태도를 취하기 시작한 세대가 된 것이다. 특히 이런 문화적 배경과 경제적 여유를 기반으로 자기중심의 1인 라이프를 지향하는 본격적인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이전의 40대와 달리 패션과 스타일, 명품에 아주 관심이 많다. 경제적 여유를 가지면서 어릴 적에 동경했던 명품들을 직접 소비하게 된 것이다. 그들에 의해 열리는 본격적인 40대 명품시장은 가장 뜨거운 백화점의 기회다. 요즘 백화점에서 가장 공들이고 있는 소비 타깃 또한 40세 전후, 즉 30대 중후반에서 40대 초중반의 남자들이다. 국내의 수입차 시장을 크게 키운 일등공신도 이들이고, 공연계의 큰손도 이들이고, 해외여행에 적극적인 소비를 하는 것도 이들이다. 불혹이 된 오렌지족과 X세대가 다시 돌아온 현재, 좀 놀아본 오빠들이 보여줄 새로운 소비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가 큰 기회가 될 수밖에 없다.
일러스트. 이동희
캠핑을 가고,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어른들
요즘 캠핑이 뜨거운 트렌드다. 사실 캠핑족 증가의 일등공신은 40대 남자들이다. 리조트세대인 2030들과 달리 40대는 어릴 적 보이스카우트를 비롯해 친구들과 야외에 텐트치고 놀러 가던 기억이 있는 세대다. 대개 40대 남자들은 10년 이상의 직장생활로 어느 정도 경제력도 갖춘데다, 아이들도 초등학생 정도 되어서 자연학습이나 생태학습 등 체험학습의 필요성도 커질 때다. 워커홀릭이기만 하던 이전의 선배 세대들과 달리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은 40대들이 가족이 함께하는 여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아울러 팽배하는 개인주의에 대한 반발이기도 하다. 이들에게 가족은 지켜야 할 문화이고, 가족에선 개인주의가 아닌 기성세대들에서 보였던 집단주의를 지향한다. 하지만 그걸 권위적 가장의 수직적 위계구조 방식이 아니라 같이 어울리면서 가족의 관계를 수평화하고 있다.
요즘 백화점엔 특화된 장난감 편집매장들이 들어선다. 어린이가 아닌 키덜트족①을 위한 곳이다. 이곳엔 3040대들이 꽤 많이 온다. 애들이가지고 노는 장난감보다는 훨씬 더 전문적이고 고가인데, 무선조종 자동차나 비행기, 헬기 등은 수십만원에서 백만원을 호가한다. 고가의 무선조종 장난감은 1980~90년대를 어린이로 보냈던 어른들이 그때 누리지 못하던 것을 나이가 들고 경제력이 뒷받침되면서 다시 누리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회인 야구와 야구 동호회 숫자가 수년 만에 몇 배씩 증가한 것도 3545 때문이다.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의식주에 쓰는 돈은 최대한 줄이는 사람들이 취미에는 아낌없이 투자한다.
내일보다는 오늘을 위한
소비를 한다
2010년 기준 국내 백화점 연령대별 매출 구성비에서 30대가 31.2%로 1위였고, 대형마트와 슈퍼마켓에서는 40대에 이어 2위, 편의점에서는 35.1%로 20대를 넘어 1위가 되었다. 소매유통채널에서 30대(40대 초반까지 포함하는)의 지배력은 단연 선두로 자리 잡았다.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5060을 위한 노래교실은 사라지고 있고, 그 자리에 3545 여자를 위한 뷰티강좌와 아이와 함께하는 프로그램, 그리고 3545 남자를 위한 요리강좌가 들어섰다. 이들의 소비 약진에는 내일보단 오늘을 더 중요시하는 소비 트렌드가 숨어있다. 과거 세대들이 내 집 마련을 위해 아끼고, 자녀교육비와 자녀의 결혼비용을 위해서 아끼다 보니 그들에게 나이 들어 남는 건 집 하나와 출가한 자식이 전부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출가한 자식들이 부모를 공양하는 것도 아니다. 남은 집을 팔지 않고선 쓸 돈도 모자라는 노후세대는 점점 늘어나고, 은퇴자들이 노후에 집을 매물로 내놓을 상황이 본격화되면 부동산 시장에서도 집값 하락의 대표적 촉발제가 될 소지가 크다. 하여간 과거 세대들은 내일을 위해 오늘 안 쓰고 아끼는 소비태도였다면, 30대는내 집 마련을 포기하고, 심지어 결혼도 포기하거나 결혼했더라도 출산을 포기한 경우가 많아 상대적으로 미래에 대한 대비에 들어가는 돈이 줄어 굳이 오늘의 소비를 포기할 필요가 없어졌다. 내 집 마련 하나만 포기해도 갑자기 돈이 여유가 생기는 듯해진다. 그만큼의 돈이 소비 여력이 되는 것이다. 이들이 명품을 사고, 외제차를 사고, 해외여행에 돈을 쓰는 건 그들의 생각이 바뀌고 그들의 선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오늘을 즐기며, 오늘에 소비하는 것은 이제 소비 트렌드의 대세로 자리 잡는 중이다.
① 아이(kid)와 어른(adult)의 합성어로 20~30대가 어른이 되었는데도 어렸을 적의 분위기나 감성을 간직한 성인들을 일컫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