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강연인가?
우린 늘 목마르다. 우리가 처한 어려운 현실에 대한 조언도 목마르고, 불안한 미래에 대한 명쾌한 답도 목마르다. 그 갈증을 인식한 명사들이 공감과 소통을 내세운 대중 강연으로 실마리를 풀었다. 우리나라에서 강연 열풍이 대중적으로 불게 된 계기는 TED 문화가 서서히 확산되는 상황에서 시작된 대규모의 각종 청춘 콘서트다. 안철수, 박경철 등을 비롯해 힘든 청춘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명사 멘토들이 과거 세대의 일방적 강연 방식이 아니라 토크 콘서트이자 짧지만 재미있는 강연으로 청춘들과의 소통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과거엔 지식과 정보를 일방적이고 하향식으로 전달하는 강연이었다면, 이젠 공감하고 공유하는 강연이 되었다. 자신의 삶의 궤적을 얘기하고, 속마음을 얘기하며 서로가 공감할 지점을 확대시키는 것이 요즘 강연의 특징이다. 아무리 좋은 얘기라도 듣는 이들의 공감과 감동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그냥 어른의 잔소리나 입바른 소리밖엔 되지 않는다. 이건 단절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젠 그 단절을 없애고 소통을 하는 시대다. 일방통행이 아닌 쌍방향으로 주고받고, 서로 공감과 공유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 것이 큰 변화의 핵심인 것이다. SNS를 비롯한 소통의 일상화이자 문화적 확산이 우릴 명사들과의 간격도 좁히고 자신들의 불만과 문제를 사회를 향해 쏟아내게 만들었다. 우린 강연이란 형식을 빌어서 지금 왕성한 소통을 하고, 그 속에서 공감과 공유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강연을 현장에서 직접 보고듣기도 하지만 강연 동영상을 통해서도 적극 소비된다. 스마트폰을 통해 일상에서 상시로 유튜브 동영상을 소비하는 요즘 세대에겐 책 읽는 것보다 동영상으로 된 정보를 보는 것에 익숙하다. 새로운 지식 정보나 흥미로운 이야기, 누군가의 삶의 이야기를 담은 동영상은 요즘 세대에겐 가장 흥미로운 콘텐츠다. 요즘 세대가 책을 덜 읽는다고 하지만 대신 그들은 동영상을 통해 더 많은 정보와 이야기를 접하고 있다. 미니 프레젠테이션 방식의 강연은 동영상으로 가장 잘 소비되기 좋은 지식 콘텐츠다. 책의 자리에 동영상이 왔고, 그 자리를 미니 프레젠테이션을 비롯한 강연 콘텐츠들이 채우고 있는 것이다.
일러스트. 서영원
TED①에서 세바시②까지
우리의 강연 열풍의 진원지는 좋은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먼저 실천하고 확산시킨 TED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는 널리 퍼져야 할 아이디어를 공유하기 위해 각 분야의 명사들이나 특별한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 참여해 각자 18분씩 릴레이 강연을 펼치는 지식 컨퍼런스다. 시간이 짧다 보니 핵심적이고 함축적이면서 강렬한 이야기에 집중한다. 뭐든 길면 지루하다. 특히 요즘 세대에겐 짧고 흥미롭고 강렬해야 한다. TED의 짧지만 강렬한 강연은 동영상으로 전 세계로 퍼져 나가 소비되었다. 그러면서 짧은 프레젠테이션을 통한 강연 릴레이가 문화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TED 정신을 기본으로 각 지역에서 열리는 비영리행사인 TEDx를 전 세계에 파생시켰는데, 우리나라에선 2009년 TEDx명동을 시작으로 전국 대학과 지역, 심지어 TEDx삼성처럼 기업으로까지 퍼져 나갔다. 요즘엔 중고등학교까지 TEDx가 퍼져 나가고 있을 정도다. 보다 많은 생각들이자 공유되어야 할 좋은 아이디어가 TEDx를 통해 전국적으로,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상시로 쏟아져 나온다. 이런 동영상은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로 공유된다. 강연은 동영상을 타고 세계를 누비고, 우리의 생각이 더 확대되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짧은 강연 릴레이의 대표 주자는 2011년부터 시작된 한국형 TED 프로그램의 대표주자라 불리는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이다. 여기서도 명사가 아닌 일반인들도 자주 연사로 등장한다. 또 다른 강연 프로그램인 ‘강연 100도씨’에서도 일반인들의 얘길 꽤 자주 볼 수 있다. 우리가 몰랐던 숨겨진 일상의 놀라운 주인공들이 이런 강연 열풍으로 하나둘 세상에 드러나는 셈이다.
당신도 미니 프레젠테이션에 동승하라!
미니 프레젠테이션 방식의 강연은 15~20분 내외, 심지어 10분 정도인 경우도 있는데 그만큼 강연에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아닌 모든 일반인들도 자기가 가진 좋은 생각이나 좋은 경험이면 큰 부담없이 얘기할 수 있을 시간이다. 우리가 짧은 강연에 더 열광하는 건 짧지만 강렬하고 흥미로워서도 있지만, 우리 모두가 그 자리에 서서 얘기할 수도 있다는 점 때문이다. 명사들의 일방적 강연을 소비만 하던 사람이 아니라, 모두가 강연의 소비자이며 생산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우리가 더 공감하고 소통하게 만들었고, 우리 생각을 남들과 더 공유하고 싶게 만들었다. 강연의 형식만 바뀐 게 아니라 속성이자 문화 자체가 바뀐 것이다. 특출한 한 사람의 아이디어보다 수많은 사람들의 작은 아이디어가 모인 것이 더 가치 있을 수 있고, 그게 바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요즘 시대의 보편적 정서이다.
과연 당신에게 어떤 좋은 생각들이 있을까? 공유할 아이디어와 남들과 공감할 어떤 삶의 이야기들이 있을까? 아마 모든 사람들에겐 살아온 궤적이 쌓인 만큼 꽤 많은 공감과 공유의 콘텐츠가 있을 것이다. 그걸 이젠 나누자는 것이다. 가령 TEDx우정사업본부를 만들어도 좋고, 여러분이 사는 지역이나 직장에서 남과의 공유에 적극 나서도 좋다. 우리의 목소리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그 가능성을 믿어보자.
각주
① 미국의 비영리 재단으로 정기적으로 열리는 기술, 오락, 디자인에 관련된 강연회를 개최하고 있다. 강연자들은 빌 클린턴, 앨 고어, 노벨상 수장자 등 각 분야의 저명인사들이다.
② CBS TV 시사/교양프로그램인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으로 TED 형식의 한국형 미니 프레젠테이션 강연프로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