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의 부활을 7080세대의 노래나 세시봉의 부활, 더 나아가 우리나라에서 불고 있는 복고 열풍의 일환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경제학자의 눈에 비친 도시락 인기는 경제적으로 불가피하고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의 결과다. 왜 요새 직장인들은 도시락을 많이 선택하고 있을까?
사람들은 합리적으로 선택한다. 합리적 선택을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무엇인가를 선택하는 데에서 얻는 효용이 비용보다 커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직장인들도 일상생활에서 합리적으로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데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도시락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현상은 도시락을 먹는 효용이 비용보다 큰 직장인이 많아졌다는 방증이다. 도시락의 효용을 비용보다 크게 만든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숨어 있는데, 우리에게 별로 달갑지 않은 경제적 원인부터 말하고 싶다. 현재 우리나라 경제는 저성장과 경기 침체가 지속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물가는 계속 오르고 있다. 식당에서 사 먹는 음식의 가격도 크게 올랐다. 이제는 5천 원을 가지고 식당에서 밥 한 끼를 사 먹기 힘들어졌다. 월급과 아이 성적 빼고는 다 오른다는 농담도 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먹을거리값은 우리나라에서 물가 상승의 주역이다.
반면 직장인의 주머니 사정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이제 합리적 직장인은 새로운 선택을 하기 시작했다. 식당 음식값보다 훨씬 저렴한 3천 원 정도면 점심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도시락으로 눈을 돌렸다. 점심값이라도 아껴보겠다는 계산이다. 가격이 상승하면 수요량이 감소한다. 경제학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수요의 법칙이다. 식당 점심 가격이 상승하면 식당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감소하는 이유는 두 가지 효과 때문이다.첫째, 사람들의 실질 소득이 감소하는 효과가 나타난다. 소득이 감소하면 당연히 점심을 덜 먹는다. 그렇다고 점심을 아예 거를 수는 없지 않은가. 이제 두 번째 효과가 작용한다. 가격이 오른 상품을 포기하고 상대적으로 저렴해진 다른 상품을 소비한다. 이를 대체 효과라 한다. 갈치를 사려던 주부가 금치가 된 갈치를 사는 대신에 상대적으로 저렴해진 고등어를 사서 주어진 예산에서 최대의 효용을 얻으려는 현상이다.
합리적인 직장인은 상대적으로 저렴해진 도시락 식사를 통하여 예산을 최대한 절약하거나, 한정된 예산으로 최대의 효용을 얻으려는 선택을 하고 있다.
그러나 불경기에 식비라도 절약해보자는 동기만 가지고서는 지금의 도시락 인기 상승을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도시락을 먹는 편익이 과거에 비해 크게 증가한 점도 도시락 인기를 끌어 올리는 데 기여했다. 과거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도시락은 왠지 모르게 불신을 샀고, 가격이 아무리 저렴하더라도 소비자들은 그런 도시락을 구입하지 않았다. 이런 문제점을 깨달은 편의점들은 소비자 입맛에도 맞고 위생적이며 다양한 반찬의 도시락을출시했다. 국산 재료를 사용하여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하려고 노력했다. 포근한 엄마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인기 연예인이나 유명 요리사를 활용한 도시락도 선보였다. 이런 도시락의 변신에 합리적 직장인이 지갑을 연 것이다. 품질 좋은 도시락이 인기를 끌자 도시락 시장은 급속히 확대하는 단계로 접어들었고, 다시 속속 새로운 도시락을 출시하는 선순환이 가능해졌다. 이제 직장인으로서는 골라 먹는 재미까지 누릴 수 있게 되었다.직장인은 도시락을 먹음으로써 시간 절약이라는 효용도 덤으로 얻는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 수십 분이 걸리고 커피까지 마시며 한 시간을 보내기 마련이다. 이에 비해 도시락은 빠른 시간 안에 먹을 수 있고, 남는 시간에 동료들과 산책을 하거나 자기계발을 할 수 있으며, 자유시간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정해진 일을 마치면 퇴근할 수 있는 직장인이라면 점심뿐 아니라 저녁까지 도시락으로 해결함으로써 퇴근시간을 앞당길 수 있는 효과도 있다.
혼자 살고 있는 직장인이 많아진 것도 도시락 인기에 한몫을 했다. 이들 직장인이 집에 가서 밥을 하고 반찬을 만드는 것은 여간 힘들지 않다. 재료 구입비도 만만치 않고 툭하면 남은 재료를 버린다. 차라리 자기 입맛에 맞는 도시락을 사 먹는 것이 시간도 절약하고 경제적으로도 이득이 될 수 있다. 도시락을 먹음으로써 직장인이 얼마나 절약할 수 있는지 따져보자.
6천 원짜리 점심을 먹는 경우 한 달(20일 기준)이면 12만 원, 연간으로 144만 원이 든다. 3천 원짜리 도시락을 먹는다면 비용이 절반만 필요하므로 연간 72만 원을 절약한다. 식당 이용 후에는 대개 몇천 원하는 커피를 마시는 게 일반적이지만, 도시락을 먹고 나서는 이처럼 비싼 커피를 잘 마시지 않는다. 따라서 절약하는 커피 값까지 따진다면 직장인이 도시락 이용에서 얻는 금전적 이득은 72만 원보다 훨씬 크다. 여기에 점심 식사 시간을 30분씩 절약할 수 있다고 할 때 연간 7200분, 시간으로는 120시간을 절약하는 셈이다.
도시락은 혼자 먹는 것보다 여럿이 옹기종기 모여 수다를 떨며 먹을 때 더 맛있다. 도시락은 장소에 구애를 받지 않으므로 날씨가 좋으면 사무실을 벗어나 야외에서 즐기자. 아무리 비싼 식당 밥이라도 이 맛을 도저히 쫓아올 수 없다. 도시 직장인들이여! 락(樂)도 얻고 돈도 절약하여 도시락에서 얻는 효용을 더 늘려보자.
한진수 / 현재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알기 쉽게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고 있으며 주요 저서로는 <경제학 에센스>, <17살 돈의 가치를 알아야 할 나이>, <17살 경제학 플러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