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결혼의 편익비용
어느 날 지도하는 학생 한 명이 연구실로 찾아왔다. 평소에 특별한 일이 없더라도 연구실을 찾아와서 실없는 소리로 나를 곧잘 웃겨주던 친구다. 그런데 그날은 평소답지 않게 표정이 심각했다. 나는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음을 직감하였다. 몇 년 동안 사귄 여자 친구와 헤어질까 고민 중이란다. 그들은 과에서 유명했던 캠퍼스 커플이었기에 나 역시 매우 놀랐다. 사귄 지도 꽤 오래되었고, 내 연구실에도 둘이 함께 자주 찾아왔던 커플이기에 놀라움은 더욱 컸다. 이별을 생각하게 된 이유를 물었더니 가치관이나 생각하는 게 너무 달라 사사건건 의견 충돌이 발생하고 최근엔 같이 있으면 짜증까지 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대답했다.
“그럼 헤어지면 될 걸 왜 그리 고민해?” 내가 다시 물었다. 그러자 그는 답했다. “그동안 오랜 시간을 사귀었고 너무 친해져서요.” 그의 대답을 듣는 순간 마음 한구석에 아쉬움이 진하게 퍼져왔다. 선남선녀의 헤어짐이 아쉬워서가 아니라 이 친구에게도 경제지식이 부족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나도 참 나쁜 교수다. 이런 상황에 경제지식의 부족이나 염려하고 있으니 말이다. 앞으로의 만남이, 더 나아가 결혼 생활이 행복할 것 같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몇 년의 사귐이 아쉬워서 계속 만나고 결혼하기로 한다면 이를 옳은 선택이라 할 수 있을까? 앞으로 만남을 계속할지, 또는 사귀던 이성과 결혼할지를 고민할 때에는 결혼의 편익과 비용만 따져야 한다. 지금까지의 정은 고민하지 말아야 한다.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매몰비용이기 때문이다. 결혼의 비용이 편익보다 크다는 판단이 서면 그동안의 정과는 관계없이 헤어져야 한다.
그동안 투자했던 돈이 아까워 헤어지지 못하겠다는 커플도 있다. 연애하면서 비싼 음식도 많이 사줬고, 비싼 선물도 많이 해줬는데 이제 와서 헤어진다면 그 돈이 아까워 어떻게 하느냐는 논리다. 또 어떤 사람과 오래 만나고 싶으면 초기에 돈을 많이 투자하라고 조언하는 사람도 있다. 쓴 돈이 많으면 그 돈이 아까워 오래 사귀게 될 것이란 논리다. 모두 매몰비용과 관련해서 비합리적으로 생각한 결과다. 매몰비용은 비용이란 이름이 붙어 있지만, 의사결정에서 고려하지 말아야 한다.
갈등남녀, 매몰비용을 잊자
“내 이제 이미 지나간 일은 고칠 수 없지만 앞으로의 일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음을 알았도다. 실로 내가 길을 잘못 잡아 헤매었지만, 아직은 정도에서 멀리 벗어나지는 않았고 비로소 지금이 옳고 어제까지는 틀렸음을 깨달았노라” 중국의 유명한 시인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의 일부다. 옛날 일은 잊어버리고 앞으로 다가올 일에 신경 쓰자는 교훈을 담고 있다. 그 옛날 도연명 시인이 매몰비용이라는 경제개념을 알아서 이런 말을 한 건 아니겠지만, 매몰비용을 잊어야 한다는 삶의 지혜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제학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시다. 합리적 사고를 중시해온 서양에도 “지난 일은 따지지 말자” 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과거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의사결정의 영향은 미래에 발생한다. 따라서 미래지향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 미래에 발생할 편익과 비용만을 따져야 한다. 매몰비용은 우리의 사고를 과거 지향적으로 만드는 무서운 함정이다. 다른 기업을 인수했거나 새로운 사업에 투자했지만 어려움에 부딪히는 경우가 있다. 이때 인수비용이나 투자비가 적은 경우에는 비교적 쉽게 실패를 인정하지만, 인수비용이나 투자비가 많은 경우에는 좀처럼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음을 경제학자들이 발견하였다. 그리고 투자비가 많이 들어간 경우 그 사업에 계속 매몰되어 더 많은 돈을 새로 투자한 결과 기업에 위기를 초래하는 기업가들이 많다. 모두 매몰비용의 악령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다. 몇 년 후 그 남학생은 교사가 되어서 나를 다시 찾아왔다. 그의 뒤로 새 여자 친구가 따라 들어왔고, 지금은 결혼하여 아이 낳고 잘살고 있다. 의사결정에서 매몰비용을 ‘매몰’ 시켰기에 얻은 행복이다.
한진수 / 현재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알기 쉽게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고 있으며 주요 저서로는 <경제학 에센스>, <17살 돈의 가치를 알아야 할 나이>, <17살 경제학 플러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