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메카, 파리와 밀란의 2009 F/W 런웨이를 감상한 프레스와 VIP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불황은 정말 불황인가 보구나.” 실험정신이 녹아든 기상천외한 컬렉션과 스테이지를 기대했건만, 막이 오른 런웨이의 실제 모습은 검소했고 지극히도 무난했다. 세계에 불어 닥친 반갑지 않은 불황의 여파는 패션코드에도 변화를 주었다. 불황일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스타일은 강인한 여성성을 드러낸 팬츠 슈트와 미니스커트였다. 항간에는 원단의 양을 줄이고자 불황 때마다 스커트의 길이를 줄인다는 설도 있다. 이번 시즌도 예외가 없었다.
어깨가 뾰족한 슬림재킷 / 스키니팬츠(딱 붙는 바지) / 킬힐(굽이 10cm이상 되는 슈즈)
1980 돌아가기
특기할만한 점은, 80년대 스타일의 귀환으로 여성들의 재킷과 코트가 하나같이 크고 뾰족하게 솟은 어깨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동안 우리는 ‘뽕’이라 불리는 어깨 패드를 얼마나 촌스럽다고 터부시 했던가.
새로운 트렌드에 적응하기 위해서라면 스타일링 공식부터 알 필요가 있다. 남성들의 양복바지를 연상시키는 배기팬츠(폭 넓은 바지)와 다리 선을 그대로 드러내는 스키니팬츠(딱 붙는 바지)를 입는 방법부터 알아보자. 어깨가 큰 재킷과 매치한 배기팬츠는 밑을 두어 번 접어주는 것이 센스. 스키니팬츠는 어깨선을 뾰족하게 세운 슬림한 재킷과 매치해 글램록 스타일(자극적이거나 화려한 스타일)로 연출하는 것이 포인트다. 물론, 모두 킬힐(굽이 10cm 이상 되는 슈즈)로 마무리해야 멋스럽단 점도 잊지 말 것.불황의 척도라고 불리는 미니스커트는 그럼 어떻게 입을까. 유난히 짧아져서 이름도 ‘마이크로 미니’로 붙여진 올해의 스커트는 달랑 그것 한 장만 입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때문에 등장해준 것이 총천연색 레깅스와 싸이하이부츠(무릎 위나 허벅지 아래까지 올라온 긴 부츠)다. 기존의 롱부츠와는 전혀 다른 엣지 있는 룩을 완성해 줄 테니까. 그렇다고 상큼한 걸그룹들이 유행시킨 무지갯빛 레깅스를 일반인들이 소화하기란 다소 어려움이 있으니, 일단 회색이나 검정 등 무채색계열로 우회하는 게 좋겠다.
글로벌 워밍
매서운 겨울 추위를 비웃기라도 하듯 겨울패션의 고정관념이 깨지고 있다. 소매를 아예 떼어낸 털조끼의 인기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변함없이 이어지는 추세. 코트 역시 5부나 7부 길이로 소매를 줄이는 게 대유행이다. 두툼하고 묵직해서 보기만 해도 포근함이 느껴지던 소재들은 사라지고 가볍고 얄팍한 소재들이 대거 등장했단 점도 인상적이다.
그렇다면 겨울 외출복으로는 허전해 보이기만 했던 짧고 얇은 옷들이 거리를 활보하게 된 배경은 뭘까. 글로벌 워밍이 그 이유다. 올해처럼 한시적 추위도 있긴 하지만, 대체로 해마다 포근해지는 겨울 날씨를 고려해 디자이너들은 무겁고 둔한 겨울패션을 산뜻하게 바꿔놓는 중이다.사정이 이렇다보니 때 아닌 특수를 맞은 아이템들도 태어났다. 대표적인 아이템은 당연지사 긴 장갑. 짧아진 소매를 대신해 팔목을 감싸줄 목이 긴 장갑은 추위를 완벽히 견디기에는 살짝 모자란 룩을 보완해주며 겨울 필수품으로 등극하고 있다.
믹스 앤 매치
트렌드세터가 놓치지 말아야 할 또 다른 패션 코드가 있다. 패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심플한 라인과 모노톤으로 일관된 스타일이 패션계에서 사라진지 한참이나 지났음을 알고 있겠지만, 조금 더 특별하고 개성 있는 룩을 연출하기 위해 기억할 키워드는 바로 믹스&매치. 매년 겨울이면 핫컬러로 떠오르는 블랙의 강세가 올해도 변함없을 예정이다.그러나 밋밋한 블랙을 화려하게 표현하려면 한 가지 아이템에 다채로운 소재들을 결합시켜야 한다. 실제로 대다수의 브랜드들은 블랙 코트, 블랙 조끼, 블랙 점퍼, 블랙 팬츠 등 다채로운 블랙 아이템에 여러 소재를 응용하고 있다. 가죽과 니트, 털과 청, 코듀로이(골덴)에 이르기까지 재기발랄한 소재의 믹스매치를 했다. 똑같은 블랙이라도 소재의 재질에 따라 조금씩 색과 빛을 달리하기 때문에 지루해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