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미국드라마 열풍을 몰고 왔던 ‘맥가이버’ ‘천재소년 두기’ 부터 ‘프렌즈’ ‘ER’ ‘CSI’ ‘섹스 앤 더 시티’ ‘프리즌 브레이크’ ‘로스트’ 등이 휩쓸고 간 자리를, 최근 ‘가십걸’ ‘크리미널 마인드’ ‘그레이 아나토미’ ‘히어로즈’ ‘오피스’ ‘빅뱅이론’ 등 더 신선하고 발칙한 드라마들이 대체하고 있다. 미국 드라마가 이렇듯 오랫동안 한국 시청자들에게 사랑 받는 이유는 뭘까?
나도 저렇게 하고싶다, 대리만족
라이프 스타일 측면에서도 미국 드라마는 주입식 교육의 효과를 입증했다. 담당과목은 브런치, 마놀로 블라닉 구두, 그리고 섹스다. 강사는 잘 나가는 네 명의 여성 뉴요커. 주말 아침 카페나 레스토랑에 앉아 사랑과 일에 대한 솔직한 얘기를 나누는 ‘섹스 앤 더 시티’의 여유로운 모습은 한국 20~30대 여성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됐다.
10~20대에게 사랑을 받는 드라마는 따로 있다. ‘Every Parent’s Nightmare(모든 부모들의 악몽)’이라는 카피를 내세운 미국판 막장 드라마 ‘가십걸’이 대표적이다. 뉴욕 상류층 10대를 주인공으로 한 이 드라마는 미국에서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뉴욕 맨하튼의 상류층 고등학생을 다룬 청춘물이지만, 들여다보면 자극과 화려함이 가득하다. 그렇게 상류사회를 열망하는 청소년들을 유혹한다. 한국의 10대가 치열한 대입경쟁에 지친 반면, 가십걸 주인공들은 도서관이나 학원 대신 카페와 클럽에 상주하면서도 아이비리그에 입학한다. ‘학생이 어떻게 저럴 수 있느냐’ 며 경악을 금치 못하는 순간에도 우리 10대들은 가십걸의 주인공을 부러워하며 위안 받고 있는지 모른다.
고를 게 이렇게 많네, 다양한 장르
미국 드라마가 인기를 얻으면서 확실히 국내 드라마들도 장르적인 측면에서 다양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참신한 소재의 작품보다는 기존의 검증된 레퍼토리 즉, 복수극, 불치병, 신데렐라 스토리로 이루어진 드라마들이 제목만 바꿔가며 반복된다. 이미 눈이 높아진 시청자들은 새로운 것을 찾게 되고, 매 시즌 새롭게 등장하는 미국 드라마는 그러한 욕구를 채워준다.
일례로, 어디서 본듯한 낯익은 사무실, 어디서 겪어본 듯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오피스’라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드라마를 보자. 이 드라마는 미국 직장인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드라마 안에 등장하는 회사 내에 있는 다양한 인간 군상과 그들의 꼬인 관계는 시청자들 스스로 회사생활을 돌아보며 미친 사람처럼 혼자 큭큭거리게 만드는 힘이 있다.
캐릭터와 함께 늙어간다, 시즌제 드라마
여러 미국 드라마들 중에서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은 역시 시트콤 ‘프렌즈’다. 10년 동안 방영된 프렌즈에서 여섯 명의 주인공들은 20대의 불안과 실연, 실직, 이혼 등의 문제를 보여주며, 시청자들과 함께 천천히 늙어갔다. 프렌즈를 비롯한 미국 시즌제 드라마의 가장 큰 미덕이 바로 여기 있다. 시청자들이 브라운관 속 주인공들의 삶에 공감하고 정을 느끼는 것.가장 큰 성공을 거둔 ‘ER’의 기둥이었던 닥터 그린이 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 9년 동안 그의 승진과 이혼, 재혼과 자식의 성장을 지켜본 시청자들은 아쉬움과 허전함을 넘어선 무언가를 느꼈다. CSI의 길 그리섬 반장이 연구소를 떠나면서 그의 빈자리를 견디지 못한 시청자들이 하나 둘 CSI를 떠나기 시작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제작현실상, 한국 드라마는 몇 개월이 지나면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그러나 인간관계를 길게 유지하기 힘들고, 팍팍해지는 생활 속에서 몇 년째 지켜본 미국 드라마들 속의 캐릭터들은 우리에게 오래된 친구처럼 편안함을 주고 있다.
tip 왜 이렇게 범죄 수사물이 많은 거지?
“의외로 여성 시청자들이 범죄 수사물을 좋아한다.” 미국 드라마를 주로 방영하는 케이블 방송 관계자의 말이다. 범죄 수사물의 인기가 높은 건 국내 현상만은 아니다. 당연히 미국도 지난 5~6년간 범죄 수사물이 유행했다. 10편 중 6편 정도가 범죄물이다. 그렇다는 그 이유는? 비인간적 히어로가 아니라 인간적 매력을 가진 생생한 캐릭터, 의외의 반전과 예측 불허의 결말을 예고하는 스토리의 탄탄함, 영화를 능가하는 스케일과 첨단장비를 이유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사실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정말 범죄수사물의 인기가 높은 이유는 각 회별 연결성이 높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한마디로 스토리를 쉽게 따라갈 수 있다는 장점 덕이다.
자료협조 캐치온, 온스타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