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4층 보장시스템’ 운용의 묘를 살려야 한다
60세엔 월 200만 원,
80세엔 360만 원 있어야
웬만한 통계나 설문조사를 보면 노후 필요 자금으로 의료비용 등을 감안한 적정 생활비는 월 200~250만 원 정도라고 답한다. 그런데,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이 월 200만 원이라는 돈의 가치와 물가상승과의 관계이다. 물가라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계속 상승하는 반면 화폐가치는 계속 떨어지기에 월 200만 원의 구매력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감소한다. 따라서 명목금액은 훨씬 더 많이 준비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최근 2년 정도는 연 1%대의 기이한 저물가 현상이 이어졌지만 이제 저금리 시대는 끝났다. 실제 통계청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평균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3.3% 수준이다. 이처럼 매년 3%대 인플레이션이 나온다면, 화폐가치는 10년 정도 지나면 4분의 3으로, 20년이 지나면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다. 따라서 은퇴 후 생활비를 월 200만 원으로 가정해보면 60세엔 200만 원이면 충분했지만, 70세엔 269만 원이 있어야 하고, 75세엔 312만 원, 80세엔 361만 원, 그리고 24년이 흐른 84세 이후부터는 400만 원 이상으로 2배 넘게 마련해야 한다. 그러니까, 연간 물가상승률이 3%라면 화폐가치는 24년 뒤엔 절반 정도로 추락한다는 건데, 40세 월급쟁이가 24년 뒤 64세 때 손에 쥐고 싶은 노후자금을 5억 원으로 계산했다면 실제 모아야 할 돈은 10억 원으로 설계해야 한다.
그래도 연금이 최고인데
물가상승률을 이기려면 어떻게?
이처럼 노후자금은 반드시 물가상승률만큼 비례해 더 많이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이제 머리가 더 아파온다. 은퇴설계라는 것 자체도 어렵고 부담되기만 하는데, 여기에 물가상승률까지 생각해야 하다니!지금까지 국내에서 가장 많이 활용했던 노후준비는 부동산이었다. 아파트를 구입한 후 세월이 지나 가격이 오르면 매도해 차익으로 노후를 버텼다. 또한 건물, 상가, 오피스텔 등을 장만해 여기서 나오는 임대수익으로 은퇴 후 삶을 이어갔다. 이런 스타일은 지금까지 훌륭하게 통했다. 그간 대한민국 부동산은 물가상승의 2~3배 넘게 올랐고, 임대료 역시 평균 4~5배씩 지속적으로 상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40~50대들은 “상가 하나 구입하는 걸로 은퇴 준비 끝내고 싶어”와 같은 응답을 자주 한다. 하지만 과연 지금부터 20년 후에도 이런 방식이 통할까. 우선 고령화와 저출산이 심화되면서 특정 지역 부동산을 빼놓고는 자산 가격 상승이 물가상승을 이기기 어려워졌다. 이제 웬만한 아파트나 상가 혹은 오피스텔로 은퇴 후 20년 이상을 확실하게 보장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특히, 임대수익에는 ‘공실’이라는 위험이 상존하며, 복지사회로 갈수록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는 더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가장 보편적인 은퇴설계는 무엇인가. 역시 연금을 첫손에 꼽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연금이야말로 물가상승(인플레이션)에 가장 취약한 거 아닌가?” 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약점이 많이 보완되고 있다. 가령 내 연금수익률이 최소 물가상승률만큼이거나 이보다 높으면 된다. 연 3% 물가상승률일 경우 나의 수익률이 6%라면 내 은퇴자금의 실질가치는 그 차이인 연 3% 복리로 불어날 수 있는 것이다. 아니, 딱 물가상승분만큼만 따라잡아도 내 자산가치는 온전히 보존된다. 많은 재무설계 전문가들이 결국 “은퇴준비엔 연금밖에 없다”라고 주장하는 데는 확실한 이유가 존재하는 것이다.
연금 3중 보장 최근엔 주택연금을 더해 연금 ‘4총사’ 란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연금 4총사’ …이것부터 확보하자
보통 은퇴설계에선 ‘연금의 3중 보장시스템’(요즘엔 주택연금을 포함해 ‘4중 보장’이라고도 한다)을 확보하라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3중 보장시스템이란 국민연금, 퇴직연
금, 개인연금 등 세 가지 연금상품을 말한다. 물론 개인상황에 따라 이 세 가지를 모두 활용하지 못할 수 있다. 가령 개인사업자는 퇴직연금을 받을 수 없다.
그런데, 어떻게 이 연금상품들은 인플레이션을 막을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운용의 묘를 살린다는 데 있다. 가령 10~15년 이상 중장기로 갈수록 단순 금리상품에서 채권상품, 그리고 주식 상품으로 비중을 높여 물가를 이기는 수익률을 달성하는 방식이다. 한편, 국민연금이나 주택연금 같은 경우엔 설계 자체가 물가상승을 커버하고 있기도 하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국민연금
국민연금은 국가가 최저생계비를 보장해 주는 것으로 직장인은 의무가입이고 직장에 다니지 않더라도 만 18~60세 사이 국민은 소득이 있으면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또한 소득이 없어도 임의로 가입할 수 있다.
국민연금의 가입유형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사업장가입자(직장인) ▲지역가입자(자영업자·프리랜서 등) ▲임의가입자 ▲ 임의 계속 가입자 등인데, 본인의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
국민연금은 10년간은 반드시 납입해야 한다는 일명 ‘최소납입기간’이 존재한다. 연금 수령 전 이 납입기간을 모두 채워야 만 61~65세 이후부터 수령할 수 있다. 이 최소 납입기간을 채우지 못했다면 그간 낸 보험료에 약간의 이자를 붙여 반환 일시금을 받게 된다.
국민연금의 최대 장점은 연금수령액이 물가상승률에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소비자물가상승률이 클수록 국민연금 수령액도 커진다. 직전연도 4월 1일부터 당해 3월 31일까지를 구간으로 하는데 예를 들어 2015년 전국소비자물가상승률은 1.9%였기 때문에 2016년 4월부터 2017년 3월까지 2015년도보다 1.9% 인상된 국민연금이 지급됐다. 올해는 지난해 소비자물가상승률인 0.7%만큼 오른 금액이 4월부터 내년 3월말까지 지급된다.
테크닉도 있다. 국민연금에서 정하는 기준소득(2017년 현재기준 월 217만 6,483원)도 챙기지 못한다면 공식 연금수령 나이 5년 전에 조기 수령할 수 있다. 반대로 5년 늦게 받으면 매년 연금이 7.2%씩 증가해 최대 36%를 더 받을 수 있다. 여유가 있다면 이렇게 지급시기를 늦추는 것도 좋다.
퇴직연금
퇴직연금은 샐러리맨이 본인의 퇴직금을 금융회사에 적립해 운용하고 퇴직 시 연금으로 수령하는 상품이다. 과거엔 목돈인 퇴직금을 받았지만 ‘은퇴준비’라는 취지를 충족시킬 수 없기에 ‘퇴직연금’이 등장한 것이다. 2006년에 시작했으니 이제 12년 정도가 된 셈이다.
다만 퇴직연금 관련 상황은 꽤 부정적이다. 적립돼 운용되는 퇴직금의 수익률이 너무 실망스럽기 때문이다. 공격적 운용을 선호하는 미국의 퇴직연금, 일명 ‘401k’와는 달리 우리는 원리금 보장 비중이 큰데, 상당기간 지속된 저금리 때문에 부진한 수익률이 나온 것이다. 물가상승을 잡으려면 주식 등의 비중을 높여야 하는데 그렇다고 무작정 투자비중을 높일 수도 없다. 은퇴자금이란 점을 감안하면 원금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개인연금이란 세 번째 연금상품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개인연금
앞서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이 각각 국가와 해당회사에 의해 제약된다면 개인연금은 스스로 운용을 결정할 수 있다. 개인연금 상품은 ‘젊을 때 10년 이상 일정액을 적립한 후 55세 이후 매달 현금을 받는 상품’이다. 국내에서는 1994년부터 노후대비라는 명분과 절세 혜택 등이 부각되면서 빠르게 확산됐다. 현재 개인연금 상품은 크게 ‘세제 적격형’과 ‘세제 비적격형’으로 나뉜다. 샐러리맨에게 아주 익숙한 ‘개인연금 3총사’인 ‘연금저축신탁’, ‘연금저축 보험’, ‘연금저축 펀드’ 등은 세액공제 혜택을 주고 있다. 반면 변액연금보험 등 세액공제가 없는 상품도 있는데, 개인연금은 적정 규모로 장기로 끌고 가면서 공격적 운용을 하는 게 물가상승을 이기는 좋은 전략이다.
주택연금
주택연금은 만 60세 이상이 자신의 집을 담보로 생활비를 연금으로 받아쓴 뒤 사후에 집 소유권(및 처분권)을 해당 금융사에 제공하는 구조이다. 2007년 등장했는데 벌써 가입자가 5만 명이 넘었다. 예를 들어 60세인 사람이 1억 원짜리 집을 담보로 넣을 경우 지금은 월 20만 9천 원 (2017년말 기준)을 받을 수 있다. 가액이 5억 원 이상이라면 월 150만 원도 넘는다. 또한, 지급방식을 종신형으로 선택하면 연금 지급액이 집값을 넘어도 평생 받는다.
또 한 가지. 주택연금은 독특한 방식으로 물가상승을 이겨낸다. 국민연금처럼 물가상승률에 직접 연동되지 않지만 가입 당시 결정된 주택가격상승률을 매년 일정하게 적용하기 때문이다. 다만 가입 시점에 딱 한 번만 주택 가격과 예상 가격상승률을 산정한다는 점은 알고 있어야 한다.
지난 2017년 국민연금공단 조사에 따르면 국내 50대 이상 중 장년층이 생각하는 적정 노후생활비는 부부가 월 237만 원(1인 기준 145만 원), 최저 생활비로는 월 174만 원(1인 기준 104만 원)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다. 즉, 은퇴 후 170만 원 이상은 연금으로 맞춰 놓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국민연금 평균수령액이 34만 원 정도니까 140만 원 정도는 퇴직연금과 개인연금, 주택연금 등을 통해 마련해야 한다. 이에 대해 필자는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은 원금 보장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개인연금은 증권사의 연금저축펀드와 보험사의 투자 비중이 높은 변액연금 상품을 고려하길 권한다.
“노후자금을 위험한 주식에 투자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라고 항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노후자금이기에 장기로 유지해 위험을 상쇄시킬 수 있는 측면도 있다. 또 그래야만 인플레이션도 이겨낼 수 있다. 은퇴준비는 하루라도 먼저 시작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다. 물가상승(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이기도 하지만 결국 시간과의 승부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Info. 물가연동국채를 아시나요
물가연동국채(Treasury Inflation Protected Securities)는 정부가 발행한 국채다. 채권의 원금과 이자지급액이 물가변동분에 연동돼 실질 구매력이 보존되는데, 물가 상승 구간에 눈여겨볼 만한 상품이다. 쉽게 말해 물가가 3% 오르면 채권의 원금 자체를 3% 증가시켜 원금에 대해 주기적으로 지급되는 이자도 함께 커지도록 설계돼 있다.
추가적인 특징을 보면 첫째, 2015년 이전 발행된 물가 연동 국고채는 원금 상승분이 비과세되고 이자지급분에 대해서만 과세한다. 둘째, 3년 이상 보유하면 세율 33% 분리과세를 선택할 수 있다. 셋째, 채권 만기는 10년이지만 6개월마다 한 번씩 이자가 지급돼 유동성(현금)이 확보되고 과세 부담도 나눠진다. 다만 만기까지 보유하지 않고 중도에 팔 경우 원금 손실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