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이란 말을 싫어하는 혁신가이자 진정한 발명가
진공청소기에서 먼지 봉투를 없앤 것, 선풍기에서 날개가 없는 것, 사실 이건 기존 제품이 가진 특성을 완전히 바꾼 혁신이다. 제임스 다이슨은 영국 왕립미술학교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산업디자이너지만 그에게 디자인은 시각적인 영역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기술과 결합된 것이다. 그는 45년간 활동한, 기술과 디자인을 잘 결합시킨 매력적인 발명가이기 때문이다. 다이슨이 갖고 있는 특허만 1300여개에 이른다.
다이슨의 제품들은 기존 제품이자 산업의 속성이자 틀을 바꿔버리는 전형적인 파괴적 혁신인 셈인데, 흥미롭게도 제임스 다이슨은 혁신가지만 혁신이란 말을 싫어한다고 한다. 이는 혁신이란 말이 유행처럼 쓰이는 상황에 대한 경계를 보여준다. 무조건 기존의 것에서 새로운 것으로 바꾸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왜 바꿔야 하냐는 문제의식과 태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더 나은 제품을 위해, 더 나은 기술적 진화를 위해 바꾸는 것이라도 기존의 자리잡고 있는 비즈니스의 입장에선 안 바꾸는 게 득이라고 생각해서 이런 진화를 반대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제임스 다이슨은 확실히 사업가보단 발명가다. 대표적인 예가 먼지 봉투 없는 진공청소기를 만드는 일이었다. 다이슨의 진공청소기가 나오기 전 사람들은 집집마다 먼지 봉투가 있는 진공청소기를 써왔다. 소비자 입장에선 사용 시 흡입구가 먼지로 쉽게 막혀 흡입력이 약해지는 것도 문제였고, 먼지 봉투를 계속 사야 하는 것도 문제였다. 사실 먼지 봉투는 청소기 판매업체로선 지속적으로 팔리는 매력적인 상품이었기에 이걸 없앤다는 제임스 다이슨의 발상이 맘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확보된 안정된 밥그릇을 하나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임스 다이슨이 먼지 봉투 없는 청소기를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을 때 회사 이사회에서 이를 반대했고, 결국 제임스 다이슨은 자기가 설립한 회사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제임스 다이슨은 1970년대에 정원용 수레와 차량 운반선인 ‘시트럭’을 발명해 주목 받았고, 공동창업자들과 회사를 설립했었다. 성공작을 계속 내놨으나 사업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 불화로 결국 이사회에서 해임되었다. 그가 나중에 회사 이름을 자기 이름인 다이슨으로 하고, 특허와 브랜드를 중요시 여긴 것도 발명가이자 개발자로서의 소신을 지키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것을 지키지 못하면 사업은 늘상 돈 앞에서 기술적 진화를 외면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는 R&D에 대한 투자도 적극적이다. 다이슨은 R&D에 매년 세후 이익의 30%를 투자 한다. 2014년엔 매주 300만 파운드(약 52억원), 즉 연간 2600억원 정도를 썼다. 2015년엔 더 늘려서 매주 400만 파운드(약 68억원)를 투자하고 있다. 이런 추세면 연간 3500억원 정도 쓰는 셈이다. 심지어 R&D센터를 건축에 들이는 투자금액만 1조6500억원 정도다. 이미 매력적인 최고의 브랜드, 계속 진화하는 기술력, 전세계적인 히트 상품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점점 더 R&D에 투자를 확대한다. 그건 현재에 만족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며, 더 매력적인 발명품이자 기술적 진화를 계속 선보이겠다는 의지다. 브랜드보단 성능에 더 큰 관심을 두고, 기술에 집착하듯 R&D하는 것이 그들의 경쟁력이자 혁신의 핵심인 것이다. 역시 제임스 다이슨은 진정한 발명가이자 혁신가다.
실패를 진정으로 사랑한 남자
다이슨의 최고 히트작이자 제임스 다이슨의 최고 발명품이라 할 수 있는 먼지 봉투 없는 진공청소기는 5127번의 실패 끝에 나온 제품이다. 먼지 봉투 없는 진공청소기는 그가 회사에서 쫓겨난 후, 그의 집 창고에서 만들어졌다. 두꺼운 종이 상자를 오려 진공청소기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아이디어가 진화되는 동안 플라스틱과 전기모터가 추가적으로 장착되었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모델만 5127개다. 무려 5년이 걸린 작업이었다. 그 기간 동안 집안의 생계는 아내의 몫이었고, 그는 5127번의 실패 속에서도 자신의 확신을 믿었고, 결국 완성해낼 수 있었다. 1993년 첫 제품이 나온 후 18개월만에 영국 내 판매 1위 진공청소기가 되었고 이후 지금까지 계속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영국뿐 아니라 유럽, 미국에서도 다이슨의 인기는 유효하다. 만약 제임스 다이슨이 수천 번의 실패 속에서 좌절하고 포기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랬으면 지금의 다이슨이란 회사도 없었을 것이고, 우리는 먼지 봉투 없는 진공청소기를 쓰지도 못했을 것이다. 실패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 이들 덕분에 인류는 수많은 혁신의 성과를 누리고 산다. 결국 혁신의 에너지는 실패에서 비롯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닌 것이다.
제임스 다이슨이 가진 실패에 대한 태도는 다이슨의 R&D 인력들이 가진 연구 태도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사실 개발자의 삶 자체가 좌절과 실패로 가득하다. 왜냐면 개발 과정 자체가 실패의 연속이기 때문이고, 이런 과정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발전시키는 것을 반복하면서 완성도를 높이는 게 개발자의 일이기 때문이다. 즉, 이런 과정에서의 끈기이자 인내가 중요한 덕목이 된다. 회사의 설립자이자 CEO가 이런 생각을 가지는데, 회사의 R&D와 회사의 경영 방향에서 실패를 대하는 태도가 남다른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제임스 다이슨은 연구개발 과정에서의 실패를 ‘실패’라고 하지 않고 ‘경험’이라고 한다. 실패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실패들이 모여서 성공이 된다는 걸 경험한 발명가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실제로 실패에서 성공이 나오는 경우도 많다. 다이슨의 대표적 베스트셀러인 날개 없는 선풍기도 원래 드라이기를 연구하다가 발견한, 드라이기에서 배출된 공기가 주변의 공기흐름을 끌어들여 증폭시킨다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결국 드라이기를 연구하던 팀은 방향을 선회에서 드라이기가 아닌 날개 없는 선풍기를 연구한 것이다. 결국 R&D에선 과정과 경험만 있을 뿐, 엄밀히 말해 실패란 건 없는 셈이다. 진화를 위해선 끊임없는 시행착오와 오류를 넘어설 끈기와 긍정적인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 준다.
영원한 청년 제임스 다이슨
다이슨은 1993년에 설립된 회사다. 23년이 넘은 회사지만 다이슨 직원의 평균연령은 26세다. 본사 직원 1/3은 엔지니어다. 일부러 대학을 갓 졸업한 사람들 중심으로 채용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기성 세대와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고, 새로운 도전에 대한 과감함도 크고, 궁금한 건 거침없이 묻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이 부분에서 한국인과 한국 기업들은 뜨끔하게 여겨야 한다. 사실 우리의 20대들은 앞서 말한 이유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건 우리 사회가 창의성보단 학습력만 키운 결과다. 설령 창의성 있는 20대가 회사에 채용되었어도, 조직의 관성이 이들의 창의성이 발휘될 기회를 주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런 점에서 다이슨의 채용 방향이자 R&D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다이슨에 처음 출근하게 되는 직원의 첫번째 업무는 다이슨 청소기를 조립하는 일이라고 한다. 생산라인에서 자신의 손으로 직접 조립한 제품을 집에 가져가서 사용한다. 고장 나면 직접 수리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관련 개발팀과 공유한다. 모든 직원이 다이슨의 제품에 대한 충실한 소비자이자 개발자, 조언자가 되는 셈이다. 아울러 R&D 파트에선 제품을 연구할 때 본인이 직접 설계도를 그리고 종이로 프로토타입을 만들어야 한다. 제품에 대한 이해를 위해선 직접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는데, 제임스 다이슨이 일하던 방식이 여전히 회사에서 유지된다.제임스 다이슨은 2012년 CEO에서 물러나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겼지만, 여전히 그는 다이슨에서 일한다. 그의 직함은 수석 엔지니어이고 여전히 제품 개발에 참여한다. 68세 나이지만 여전히 그는 현업에서 연구와 개발을 즐긴다. 여전히 새로운 아이디어와 멈추지 않는 호기심을 보면 영원한 청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다이슨이 앞으로 무엇을 만들어낼지 더 궁금하고, 더 기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