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 년 역사가 흐르는 전통 무예의 힘을 느껴라!
일제강점기에도 흔들림 없이 굳건했던 불굴의 전통 스포츠
택견의 기원을 살펴보려면 한민족의 역사시대가 시작된 고조선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고조선 시대부터 무예를 숭상했던 우리 민족은 용기와 굳셈을 국풍(國風)으로 삼고 부족 공동체가 제천의식을 열 때 택견으로 심신을 단련하였다. 이후 2천여 년 전 삼국시대 중 무예가 가장 발달했던 고구려에서 오늘날의 형태로 발전시켜 민족 고유의전통 무예로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이는 고구려 4~5세기에 축조되어 만주 집안현에 위치한 씨름무덤과 춤무덤 등과 같은 고분벽화에서 활기찬 택견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 고증되고 있다. 이 외에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동국여지승람, 조선상고사, 조선무사영웅전 등 역사적 문헌에서도 택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택견은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무인들의 승진 수단이 되거나 병사를 뽑는 기준이 되기도 하였다. 그 정도로 한때 우수성을 인정받았던 택견이지만 무술을 천시하는 풍속이 널리 퍼지면서 점차 무예의 성격이 쇠퇴하였고 그저 명절에 모여 행하는 세시 풍속 놀이가 되어 1920년대까지 성행하였다.
민족의 역사와 함께해온 택견은 일제강점기에 탄압과 견제의 대상이 되어 그 원형이 일그러질 뻔한 위기를 맞기도 하였다. 그러나 다행히 택견의 고증자인 고(故) 송덕기 선생과 정립자로 알려진 고 신한승 선생에 의해 고유한 전통적 기법이 복원, 정립되었다. 1993년 6월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제76호로 지정되었고 2011년 11월에는 중국의 소림무술을 제치고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되는 쾌거를 이루며 명실상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전통 스포츠가 되었다.
<대쾌도>
19세기 화가 유숙
(劉淑, 1827-1873)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우리나라의 고유한 놀이인 씨름과 택견을 통하여 백성들이 크게 즐거워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림의 가운데 부분에는 씨름과 택견 등의 놀이 장면과 이를 구경하는 무리가 보인다. - 국립중앙박물관 작품 소개 발췌
곡선으로 연결된 점을 이어가듯 유연성을 보여라!
계획된 부드러움이 있는 신사적인 격투기
택견의 승패는 아주 간단하면서도 허무하게 느껴진다. 한 번이라도 얼굴을 정확히 맞거나 땅에 넘어지면 지는 것이다. ‘걸이 기술’만으로 상대를 넘어뜨려 제압하면 되는 ‘대걸이’인데 택견에서 가장 일반적인 겨루기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걸이 기술 외에 차기 기술까지 동원하여 택견의 모든 기술을 적용, 상대가 전투 불능이 될 때까지 치고받는 형태의 ‘맞서기’가 있는데 이는
‘혼자익히기’와 ‘마주메기기’에 이어 택견의 3단계 수련 과정 중 가장 고난도 과정이다. 그러나 맞서기의 핵심이 될 수 있는 ‘발질’을 할 때도 원칙적으로 무르고 연하게 발질(느진발질)하여 상대를 다치지 않게끔 배려해야 한다. 한마디로 박진감 넘치게 때리고 넘어뜨리는 ‘한 방’이 없이 승패가 결정되는 ‘신사적인 격투기’다.
흐느적거리는 동작과 함께 들려오는 ‘이크’, ‘에크’ 구호가 재미있다. ‘이크’는 택견의 독특한 기합이다. ‘이(익)’소리를 낼 때 아랫배에 힘이 들어가고 ‘크’할 때는 입에서 숨이 새어 나온다. 기합을 제대로 하면 숨을 들이쉴 때 배에 힘이 들어갔다가 자연스레 빠지는 강한 복식호흡이 되면서 단전호흡으로 이어진다. 발길질처럼 다소 과격한 동작을 하면서도 일정하게 ‘이크’ 소리를 내면 호흡이 고르게 되고 몸의 흐름이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기합마저도 상대에게 심적 부담을 주기보다는 선수 본인의 심신을 평온하게 하여 경기에 충실할 수 있도록 돕는 수단이 되는 셈이다.
주요 동작을 살펴보면 그 몸놀림이 매우 섬세하고 부드러워 유려한 춤사위를 연상케 한다. 손발과 근육의 움직임이 일치하여 자연스럽게 공격하고 방어할 수 있는 택견은 다른 무술에서 볼 수 없는 품밝기와 활갯짓, 발질이라는 동작으로 상대의 중심을 흐트러뜨려 공격의 기세를 둔화시킨다. 품밝기란 택견의 기본적인 발놀림으로서 택견의 몸짓을 익히는 데 가장 중요한 보법이다. 특히 느릿느릿 굼실거리는 몸짓은 상대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을 정도로 충격을 완화시켜 준다. 택견의 공격과 방어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손놀림 활갯짓도 굼뜨고 부드러운 건 마찬가지. 공격의 모체라고 할 수 있는 발질도 곡선으로 연결된 점을 찍어가듯 유연하다. 즉, 이 모든 동작이 ‘계산된 느림’이자 ‘계획된 부드러움’이라는 것이다. 딱딱 끊어지는직선에 동작의 기반을 두어 절도가 넘치는 태권도나 주먹을 쓰고 동작이 길게 흐르는 중국 권법과 달리 굼실대는 곡선에 기반을 둔 택견 동작에서 충분히 짜릿한 명승부가 펼쳐지고 힘이 느껴지는 이유다.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피 튀기며 싸울 필요가 없고 누구 하나 얼굴이 퉁퉁 붓는 상황이 생기지도 않는다. 얼굴 한 번 맞거나 손을 땅에 짚으면 깨끗하게 승복하고 물러서면 그만이다. 타 무술에서 주로 사용하는 ‘급’이나 ‘단’이 아닌 ‘째’나 ‘동’을 사용하여 택견의 위계 표시를 하는 것도 이색적이다. 12번째까지 있고 그 다음 한 동(1단), 두 동(2단) 순으로 올라간다.
상대가 스스로 물러나게 하는 배려심을 발휘하라!
외유내강의 정신이 반영된 상생의 운동
택견은 강자 앞에 약하고 약자 앞에 강한 비열함을 허락하지 않는 운동이다. 부드러운 동작 사이사이에 복식호흡으로 내뱉는 이크 에크 구호에서 강단이 느껴진다. 상대를 무너뜨리지 않고 스스로 물러나게 만드는 전통 무예 택견이 신개념 호신술로 주목받고 있는 것은 이처럼 ‘외유내강’의 정신이 반영된 운동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에 쓸데없는 힘이 넘치고 있다면 택견을 시작해보자. 택견은 인간이 본래 자신의 힘을 찾는 과정이다. 어린이는 어린 힘, 어른은 어른 힘, 노인은 노인의 힘, 여성은 여성의 힘으로 각자 자기 힘에 맞는 택견을 하면 된다. 힘이 넘친다고 우쭐할 필요도 반대로 부족하다고 주눅들 필요도 없으며 넘치면 그저 버릴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화려한 동작과 호쾌한 스코어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택견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 택견의 정립자로 알려진 인간문화재 고 신한승 선생께서 생전에 남긴 말씀으로 택견의 존재 가치를 갈음한다.
“무예란 동작을 통하여 줏대(마음의 중심)와 심대(몸의 중심, 뚝심)를 함께 세우는 것이다.”
한국택견협회 박효순 사무처장에게 듣는 택견 Q&A
택견의 원형을 계승, 보존하며 이를 적극적으로 전수하고 보급함으로써 조상의 얼과 기상을 되살리기 위해 설립된 한국택견협회의 박효순 사무처장에게 택견에 대한 궁금증을 물었다.
01 느릿느릿 춤추는 듯한 택견으로 운동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요?
택견은 힘을 부드럽게 쓰는 운동입니다. 운동 부위에 무리를 주지 않을 뿐이지 힘을 쓰게 되지요. 택견처럼 뱃심(단전: 기의 중심)을 내는 운동은 모든 힘의 시작이고, 허리도 뱃심이 좋아야 합니다. 굼실거리는 동작을 오래 해도 부담이 없으니 관절에 무리를 주지 않고 운동할 수 있습니다. 활갯짓으로 팔 전체를 돌려 모든 견비통을 예방하며 팔심을 키워주기도 합니다. 꾸준히 오래 할 수 있으니 비만에 특히 좋고 인간의 필수 운동인 심폐운동(유산소 운동)으로 근력, 지구력, 유연성, 평행성, 순발력이 고루 발달하는 운동입니다.
02 처음 운동을 시작할 때 유의해야 할 사항이 있을까요?
유연성과 민첩성을 많이 필요로 하는 운동이므로 몸풀기 시간을 다른 운동에 비해 길게 가져야 합니다. 준비운동은 관절 운동을 중심으로 하고 본 운동에서는 택견의 혼자익히기와 마주메기기, 견주기 과정을 강도 높게 수련합니다. 마감운동은 빠른 피로 회복을 위해 이완운동(스트레칭)으로 끝냅니다. 준비물은 도복(한복) 중의적삼과 가죽짚신(미투리)만 준비하면 됩니다.
03 택견에 대해 관심을 가질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해주세요.
택견은 참(眞) 정신을 계승해나가는 정신적인 수련이자 강인한 몸을 길러 나라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육체적인 수련이므로 정신과 육체가 일치되는 참된 무예인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심신을 차분히 하고 기본적인 호신이 필요한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택견을 즐길 수 있으니 많은 관심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