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지방의 문화 유적 답사에 이어 찾아갈 곳인 관동 지방은 지금까지 별 주목을 받지 못한 답사 코스이다. 우리나라 국토의 한 귀퉁이에 편재되어 있어 문화적으로는 낙후되었고 교통이 발달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면적에 비하여 역사적 유물들이 그리 많지 않은 것도 이유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다른 지역에 비해 순수한 천연의 멋과 살아 있는 자연의 깊은 맛이 알려지 기 시작하면서 문화유적 답사를 즐기는 사람들의 발길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방치된 모습으로 남아 있긴 하지만 겨울 답사와는 너무나 잘 어울리는 여러 폐사지는 문화유적이 가지고 있는 고색창연함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전해줄 것이고, 설악산과 오대산이 가진 멋스런 겨울 정취도 답사 묘미를 살려줄 것이다.
관동지역에서 먼저 찾아갈 문화유적 답사 코스는 영월과 동해지역이다. 영월은 단종애사가 깃든 한의 고장으로 단종의 능과 유배처인 청령포로 유명한 곳. 쓸쓸하게 불어오는 겨울 바 람과 함께 유적 답사에 나서면 어린 나이에 유배된 단종의 슬픔이 아련하게 전해지는 듯한 느낌이 더할 것이다.
영월이 들과 산으로 둘러싸여 깊은 고적감이 느껴진다고 하면, 동해는 바다와 함께 있어 가슴 이 탁 트이는 시원함으로 반겨 주는 유적 답사 코스. 특히 안인에서 정동진으로 이어지는 국 도는 동해안 드라이브 코스의 일번지로 꼽힐 만큼 해안 경치가 뛰어난 곳이다.
영월 일대
강원도의 가장 남쪽에 길게 누워 있는 영월은 “칼 같은 산들은 얽히고 설켜 있고, 비단길 같은 냇물은 맑고 잔잔한 땅'이라고 고려 때의 이름 높은 학자가 읊은 대로, 산이 높고 골이 깊어 심심산골로 이 름난 정선 못지않게 수려한 경관을 보여준다.
이곳의 문화 유적으로는 단종의 무덤인 장릉을 비롯하여 관풍헌, 자규루, 청령포 등 단종과 관련된 역사 유적과 김삿갓의 묘가 잘 알려져 있다. 또한 동북쪽 언저리에 자리한 구산선문의 하나인 사자산문의 대도량이었던 법흥사도 아름다운 주변 경관과 함께 답사지로 꼽히는 곳이다.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권력 다툼의 희생양이 된 단종이 쫓겨 들어와 결국 죽음을 맞은 슬픈 역사를 간직한 땅, 그리고 조선 후기 봉건적 신분 질서가 무너지는 시기에 양반 관료들의 탐욕과 부패를 조롱하고 풍자하며 방방곡곡을 다니던 김삿갓의 최종 행선지가 된 영월은 두 인 물의 한과 삶이 서로 교차하는 듯한 느낌을 전해주는 곳이다.
청령포: 수려한 절경 때문에 찾는 이가 가장 많은 청령포는 고고하고 애잔한 느낌을 주는 영월 답사 코스의 일번지. 영월 읍내에서 남서쪽으로 약 3km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는 이곳 은 동남북 삼면이 남한강의 지류인 서강의 강줄기로 둘러싸여 있고, 서쪽은 88봉의 험한 산줄 기 절벽으로 막혀 있어 유배지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나룻배가 아니면 드나들 방법이 없는 곳이다.
소나무들이 짙게 우거져 서늘한 그늘을 만들고 있는 이곳은 단종이 죽고 나서도 한참 뒤인 영조 때에 세운 금표비와 단묘 유지비가 남아 단종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서쪽 88봉에 자리한 노산대는 단종이 해질 무렵이면 올라가 한양의 궁궐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고 하는 곳으로 당시 노산군으로 강등된 단종의 이름을 본따 ‘노산대’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나이가 800년이나 된 관음송은 우리나라에 서 자라고 있는 소나무 가운데 가장 키가 큰 소나무로, 단종의 유배를 지켜본 유일한 존재이다.
장릉: 단종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는 장릉은 사적 제196호로 지정된 곳으로, 영월읍 영흥리 동을지산 기슭에 소나무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묘는 서울쪽, 곧 남쪽을 바라보고 있으며, 묘를 둘러싼 소나무는 모두 묘를 향해 절을 하듯 묘하게 틀어진 것이 많아 더 애틋해 보이는 이 곳은, 묘 앞에 칼 든 자에게 왕위를 빼앗겼으므로 무신석 없이 문신석만 서 있어 보는 이의 마 음을 애잔하게 만든다.
원래 단종의 시신은 후환이 두려워 거두는 이가 없었다고 전한다. 그런데 영월 호장인 엄홍도가 한밤중에 몰래 시신을 거두어 산 속으로 도망가다 노루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곳을 발견하고 그곳에 단종의 시신을 묻었는데, 풍수지리가들의 말에 의하면 장릉 자리가 천하의 명당이라고 전해져 사람들로 하여금 놀라움과 찬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장릉에는 그밖에도 박충원 정려각, 엄홍도 정려각, 단종으로 인하여 순절하거나 희생된 충신 · 종친 · 시종들의 위패를 공동으로 모신 총신각 등이 입구에서부터 왕릉이 있는 곳까지 차례 로 늘어서 있다.
법흥사: 영월읍내에서 조금 떨어져 있긴 하지만 법홍사는 꼭 한번 둘러볼 만한 곳이다.
신라의 자장율사가 당나라에 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석가모 니의 진신사리와 가사를 전수받 아 선덕여왕 12년에 귀국한 뒤 오대산 상원사, 태백산 정암사, 양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에 사리를 봉안하고 마지막으로 진 신사리를 봉안한 곳으로 전해지 는 이곳은 처음에는 흥녕사로 불려졌던 곳이다. 그 뒤 중효대 사 절중은 신라말에 쌍봉사를 창건하여 선문을 크게 일으킨 철감선사 도윤에게 가르침을 받 아 이 절을 사자산문의 근본 도 량으로 삼았다. 진신사리를 봉 안한 사리탑의 주변에서는 자장 율사가 수도하던 곳으로 알려진 토굴을 볼 수도 있다.
찾아가는 길: 원주 · 제천 · 평창 · 정선 · 단양 등 여러 지역에서 찾아가는 길이 있으나, 제천에서 38번 국도를 타고 들어가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다. 원주에서 5번 국도를 타고 제천 방향으로 남하하다가 신림에서 402번 지방도로로 좌회전해 주천을 지나 영월로 가면 이 지역의 여러 문화 유산과 만날 수 있다.
숙박 및 별미: 그랜드파크장 (0373 -73 - 9108), 경원여관 (0373-374-3255) 등 비교적 깨끗한 숙박시설이 영월읍내에 있다.
영월의 별미로는 전국적으로 이름난 장릉보리밥집 (0373-374-3988)의 보리밥이 꼽힌다. 10여가지의 산나물, 무공해 야채와 함께 내놓는 보리밥의 맛이 일품이다.
동해일대
동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동해고속도로가 생기면서 관광도시로서의 이점이 매우 커진 동해는 삼한시대 진한의 실직국이었다가 신라에 속하게 된 이래 고구려와 늘상 세력 다툼이 벌어지던 격전장이었던 역사 깊은 고장이다.
삼척군과는 청옥산과 두타산, 그리고 추암을 경계로 하고 있으며, 명주군과 가까운 북쪽은 망상해수욕장이 경계가 되고 있다. 이곳의 문화 유적으로는, 동해바다를 정원으로 삼아 집안으로 끌어들인 듯한 '해암정’과, 무릉계곡의 초입에 자리잡고 있는 삼화사가 꼽힌다. 또한 안인 에서 가까운 낙가사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임해 사찰로, 확 트인 바다를 바라보는 전망이 매우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추암과 해암정: 추암은 파도와 비바람에 씻긴 기암괴석이 해안을 막아서듯 절벽을 이루고 있고, 그다지 넓지는 않지만 백사장이 있는 한적한 해수욕장이 있는 곳으로 겨울 문화유적 답 사에서는 보기 드문 곳이다. 겨울 바다와 함께 유적 답사를 할 수 있는 행운을 누릴 수 있는 이곳은 특히 바다에 일부러 꽂아 놓은 듯 뾰족하게 솟아 있는 촛대바위가 제1의 경치로 꼽힌 다.
조선 세조 때 한명회가 강원도 체찰사로 있으면서 추암에 와 보고는 그 경숭에 취해 ‘능파대’라 부르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이곳의 겨울 정취와 풍광은 일품이다.
추암의 주변에는 바다를 정원으로 삼은 ‘해암정’이라는 정자가 자리잡고 있다. 고려 공민왕 때 높은 벼슬을 지낸 심동로가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내려와 살며 세운 정자인 이곳은, 공민 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낙향해 내려온 선비의 마음이 담겨져 있는 듯 한 곳이다.
무릉계곡과 삼화사: 천여명이 앉아도 너끈할 만큼 횐 너럭바 위가 계곡 초입에 들어앉아 있 어 이채로운 무릉계곡은 넓적한 자연암반을 씻어내리며 흐르는 물이 찬 겨울 날씨에 어울릴 정 도로 맑은 곳이다.
이 너럭바위를 지나 봉긋이 선 무지개다리를 지나면 두타산의 대표적인 고찰 삼화사가 모 습을 드러낸다.
삼화사는 1,300여년의 긴 역사를 갖고 있다. 신라 선덕여왕 11년 자장율사가 이곳 두타산에 이르러 절을 짓고 후연대라 한 것이 그 효시라고 하지만, 경문왕 4년에 구산선문 중 사굴산파 의 개조인 범일국사가 ‘삼공정’ 에다 삼공암을 지었을 때부터 뚜렷한 내력을 갖는다고 알려져 있다. 그 뒤 고려 태조 때에 와서 삼화사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고려를 세운 왕건이 삼공암에서 후삼국 통일을 빌었으며, ‘세 나라를 하나로 화합시킨 영험한 절’이라는 뜻에서 붙여졌다고 한다.
계곡에 바짝 붙어 서 있는 천 왕문으로 들어서면 정면에 대응 전이 자리잡고 있으며, 대웅전 앞에 두 삼충석탑이 부처를 지 키듯 서 있다. 또한 대웅전 안 에 모셔진 1m 크기의 철불좌상 은 비록 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조각이 우수하고 역 사도 오래 된 것이다.
찾아가는 길: 동해시로 가려 면 강릉에서 동해고속도로를 타는 것이 가장 빠르다. 강릉시내에서 7번 국도를 따라갈 수도 있으며, 정선에서 임계를 넘어 오는 42번 국도를 이용할 수도 있다. 삼척 · 울진 쪽으로 7번 국도가 연결되어 있다.
숙박 및 별미: 호텔로는 뉴동해호텔(0394-33-9215), 장급여관으로는 동양장 · 삼보장 등 깨 끗한 숙박시설이 많이 있어 숙박하는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
이곳의 별미는 역시 동해에서 갓 잡아 올린 해물요리. 그 중에서도 오징어회가 특히 유명하 다. 욕쟁이할머니집으로 불리는 대구식당이 깔끔하고 푸짐하다. 동해시 강원은행 뒤 중앙시장에서 물어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