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가 저물고 새해가 다가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해가 돋는 풍경이다. 밤새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던 어둠을 몰아내고 붉은 빛깔의 모습을 수평선 너머로 드러 내기 시작할 때의 해돋이의 장관을 다른 무엇에 비길 수 있을 까. 그만큼 새해를 맞이한다는 것은 어둠 같은 묵은 해에 대한 미련과 가슴 아픈 일들을 한꺼 번에 덮어버리고 새롭게 펼쳐지는 시간 앞에 알몸으로 선 듯한 가슴 벅찬 느낌과, 알찬 한 해를 설계해야 한다는 의미도 동시에 느끼게 한다고 할 수 있다.
새해에 걸맞는 문화유적 답사 코스로는 역시 해돋이를 완상할 수 있는 강릉과 양양· 고성 등 동해를 끼고 있는 곳이 최적지라고 할 수 있다. 자녀들과 함께 나선 유적 답사에서 새해를 규모있게 설계하는 지혜와 해돋이의 의미를 동시에 가르칠 수 있다면 그보다 나은 여행도 없올 것이다.
해돋이 유적 답사의 첫번째 코스는 강릉 일대이다. 관동지방의 문화유적이 가장 많이 밀집해 있는 강릉은 유서 깊은 역사도시로 잘 알려져 있는 곳으로 객사문•칠사당•신복사터의 탑과 보살상 등이 유명하다. 또 한 굴산사터의 당간지주는 차라리 현대조각의 설치예술이라는 느낌을 줄 정도로 대담하고 장중한 멋을 풍기는 것으로 유명 하다. 그밖에도 경포대, 방해정, 해운정, 오죽헌, 허균 생가터 등 문화유적이 밀집해 있어 단번에 다 찾아보기에도 벅찰 정도이다.
강릉의 유적 답사가 끝나고 나면 고성과 양양의 유적을 답사하는 것이 좋다. 화진포 쪽으로 길을 잡아 통일전망대를 다녀오다 들러도 좋은 고성은 휴전선 가까이 붙어 있는 작은 마을이지만, 옛날에는 금강산 일대에서 가장 큰 고을이었던 곳으로 관동과 관북지방의 살림집 구조를 잘 보여주는 전통가옥을 볼 수 있다. 또한 고성에서 양양으로 내려오면 청간정이라는 관동팔경의 명소를 지나, 동해에서 가장 이름 높은 절이면서 해돋이로도 유명한 낙산사에 닿게 된다.
강릉 일대
신복사터: 강릉시 내곡동에 위치한 신복사터는 야산이 둘러져 있는 아늑한 절터에 삼층석탑과 석불좌상만이 뚜렷이 남아 있는 곳. 문성왕 12년(850년)에 범일국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 지는 이 절은 주변의 지세로 보아 호시절에도 절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지만, 삼층석탑과 석불 좌상의 형상이 독특해 주목받는 곳이다. 강릉•명주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함, 곧 탑과 석불좌상이 어우러진 형상은 월정 사와 한송사터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기는 하지만 매우 특이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삼층석탑은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안정감과 중후한 멋을 느끼게 하며, 그 앞에 탑을 향해 공양하고 있는 모습의 석불좌상은 세련되고 풍만한 조각으로 인간미가 물씬 풍겨난다. 특히 부드럽고 웃음기가 만면에 가득 한 석불좌상의 표정은 누가 봐도 푸근하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이다.
굴산사터 당간지주: 굴산사 역시 범일국사가 신라말 문성왕 9년(847년)에 창건한 절로 구산 선문의 하나인 사굴산파의 본산으로 유명하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범일은 당나라에 유학했을 때 명주 개국사에서 왼쪽 귀가 떨어져 나간 한 승려를 만났다. 그 승려는 신라 사람으로서 집이 명주 익령현인데, 범일이 귀국하거든 자신의 집을 지어 줄 것을 간청 하였다고 한다. 귀국한 범일이 그의 청에 따라 그가 고향이라 일러준 곳, 사굴산 아래에 지은 것이 굴산사라고 한다. 지금은 폐사터이지만 당시는 강릉 일대에서 가장 큰 절로서, 사찰 당 우의 반경이 300m에 이르렀고, 수도 승려가 200명에 달했으며 쌀 씻은 물이 동해까지 흘렀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당간지주는 굴산사터의 주요 문화재 중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 모가 큰 당간지주로 유명하다. 굴산사 초입에 해당하는 들판 가운데 웬만한 3층 건물은 돼 보이는 크기로 서 있는 이 당간 지주는 현재 높이가 5.4m나 되 지만, 지주의 규모가 엄청나 세워졌을 당시의 당간의 높이가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이다. 일반적으로 당간이 지주의 서너배가 된다고 보면 어림잡아도 10층 건물의 높이 정도는 되었다고 보여진다. 하늘을 찌를 듯한 긴 당간 위에서 깃발이 펄럭거렸다면 아마도 10리 밖에서까지 이 절의 위용을 실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보물 제88호로 지정 되어 있다.
객사문, 칠사당: 고려시대 관청 건물의 일부였던 객사문과 칠사당은 현재 강릉시청에 인접해 있어 이채롭다.
고려시대 관청 건물의 일부였던 객사는 중앙에서 파견된 사신들이 이용하던 숙박시설이다. 객사본전에는 국왕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고 관리들이 각종 의식과 더불어 유흥을 즐기기도 했던 곳이다. 이러한 기능 때문에 객사는 통치 건물인 관아 건축과 주택 건축의 결합형이게 마련이었고, 중앙에서 오는 사신과 관리를 위한 건물이었기에 그 지방에서 제일 경치 좋은 곳에 세워졌다.
강릉 객사의 일부인 객사문은 규모는 작지만 고려 주심포 건축의 정수로서 전연하고 아름다운 비례와 구조를 지니고 있어 한국 건축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강릉 향교: 지방 향교로서는 거의 완벽한 건축인 강릉 향교는 강릉시 교동에 자리잡고 있다.
나주•장수의 것과 더불어 3대 향교를 이루고 있는 이곳은 평지에 세워진 여느 향교와는 달리 경사 지형을 이용한 전학후묘의 영역 형성 방법이 독창적인 곳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객사문, 칠사당이 현재의 관공서와 나란히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조선시대의 학교와 현재의 고등학교가 한 영역내에 위치하고 있는 점도 이채롭다.
강릉 향교는 특히 규율이 엄격하고 면학 분위기가 높아 대무관이라는 칭호를 받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여러 건물들은 대개의 불교 건축들과는 달리 붉은 벽과 녹색을 주제로 전체적으로 비교적 검소하고 단정하게 처리되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자연석 위에 세운 기둥도 흰색과 검은색, 황토색을 짙게 발라 매우 엄숙한 분위기를 돋우고 있다. 명륜당 옆의 은행나무는 마치 학교의 교목처럼 성균관이나 향교 등에서 반드시 볼 수 있는 것으로,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찾아가는 길: 광동의 중신인 강릉. 명주로 찾아갈 때는 영동 고속도로를 타고 대관령을 넘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다. 부산•울진 등 남쪽 지역에서는 7번 국도와 동해고속도로를 이용해 강릉으로 갈 수 있으며 강의 북쪽인 설악, 속초지역에서도 7번 국도를 이용해 강릉으로 갈 수 있다.
숙박 및 맛집: 경포비치관광호텔(0391-44-2277), 코리아나관광호텔(0391-44-2701), 동해관광호텔(0391-44-2181)등의 호텔과 로얄장(0391-848-2057) 등의 장급 여관들이 잘 정비되어 있어 불편이 없다.
강릉 경포의 별미로는 회를 들 수 있다. 경포대의 수많은 횟집 가운데서도 부산처녀횟집(0391-44-2828)이 유명하다.
고성•양양 일대
청간정: 고성군 남쪽 동해안에 자리잡은 청간정은 예로부터 관동팔경의 하나로 손꼽혀 온 곳으로 북녘땅에 있는 고성 삼일포와 통천 총석정을 제외한다면 남한땅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관동팔경이다.
창건 연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조선 중종 15년(1520년)에 고쳐 지었다는 역사 기록으로 보아 적어도 그 이전에 지은, 꽤 오래된 정자임을 알 수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 명필인 양사언과 문장가 정철의 글씨, 숙종의 어제시를 비롯한 전직 대통령들의 글씨가 남아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현재 걸려 있는 청간정의 현판은 1953년 이승만 대통령이 쓴 것이다. 채 1년이 못되는 재임기간 동안 최규하 전 대통령도 어느 틈엔가 청간정을 방문해 친필을 남겼을 정도로 그 주변 풍광이 빼어나다.
12개의 돌기둥이 정명 3칸, 측면 2칸의 누정을 받치고 있는 모습인데, 누정에 올라서면 탁트인 동해의 맑고 푸른 물이 한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물론,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합수머리를 목격하게 된다. 또한 해안선 쪽으로는 거침없는 동적인 맛이 흐르는 반면, 대나무와 소나무 숲속에 자리잡은 누정은 정적인 분위기를 풍겨 서로 대비를 이룬다.
어명기 정통가옥: 고성군 죽왕면 삼포리에 위치한 어명기 전통가옥은 강원도 일대의 사류주택이 주로 강릉에 밀집해 있고, 대개 홑집 구조에 ㅁ자형을 이루는 것이 대부분인 것과는 달리 상류 주택에서는 보기 드문 겹집 구조를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와 같은 독특한 구조는 이 지방 민가의 일반적 형태인 북부형 겹집 구조, 곧 양통집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둥근 돌담 뒤에 있는 동산에 올라서면 집의 전체적인 구조가 한 눈에 들어오는데, 지방의 특색을 살려 잘 지어 놓은 어명기 가옥과 주변 민가의 정감 어린 모습, 그리고 드나드는 길 양쪽에 펼쳐진 솔밭의 분위기를 한데 엮어 옛 모습을 그려보는 것도 재밌을 듯하다.
송지호: 송지호는 강릉의 경포호, 속초의 청초호와 영량호, 고성의 삼일포 등과 같은 석호이다. 강물에 실려온 모래가 바다 물결에 맞부딪혀 강 하구에 쌓이기를 거듭하여 이룬 모래톱이 길게 바다를 가로막아 생긴 호수가 석호이다. 특히 송지호는 그 규모가 사방 10리에 이르고, 물색이 맑은데다 울창한 소나무 숲과 잘 어우러져 강원을 대표하는 자연호수로 꼽히는 곳이다.
또한 이곳은 옛부터 전해져오는 재미있는 전설로도 잘 알려져 있다. 부자였던 정거새라는 사람이 시주를 부탁한 스님에게 똥을 퍼줘 내쫓았는데, 스님이 문간 옆에 놓여 있던 쇠절구를 집어 땅바닥에 내던지니 쇠절구가 떨어진 곳에서 물기둥이 치솟기 시작하여 정부자의 집과 논이 순식간에 잠기고 호수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전설은 강릉 경포호, 화진포를 비롯한 동해안의 자연호수들이 이와 비슷한 전설을 갖고 있어 더욱 흥미롭게 느껴지는 전설이기도 하다.
통일전망대: 고성군 현내면 명호리, 북위 38도 35분, 비무장지대와 남방한계선이 바다와 만나는 해발 70m의 고지에 세워진 통일전망대에 서면, 망원경을 이용해 북녘의 금강산과 해금강을 또렷이 볼 수 있다. 통일전망대 본관 1층에서는 북한 관련 자료들과 금강산 사진을 전시하고 있으며, 2층에는 전망시설을 갖추어 놓았다. 또한 통일전망대 옆에 세워진 미륵불상과 성모상이 통일을 기원하며 북녘땅을 응시하고 있다. 자녀들에게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과 의미에 대해 현장학습을 시켜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찾아가는 길: 동해안 최북단 지역인 고성은 강릉에서 7번 국도를 따라 속초를 지나 고성에 닿는 방법이 있고, 44번 국도를 타고 한계령을 넘은 후 양양에서 7번 국도로 길을 바꿔 찾아갈 수도 있다. 48번 국도를 따라 진부령을 넘으면 고성의 중심인 간성읍으로 직접 갈 수가 있다.
숙박 및 맛집: 고성 일대의 해수욕장 주변 숙박시설을 이용하는 것도 좋고, 불편하면 속초의 숙박시설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
별미로는 초당 순두부가 유명하다. 속초에서 잼버리대회장으로 향하다 보면 일성콘도 바로 밑에 있는 초당 순두부집(0392-835-8812)의 순두부 맛이 일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