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선도는 그의 저서「가장유사」에서 보길도 생활에 대해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아침이면 경옥주를 한 잔 마시고 몸을 단정히 한 후 자제들을 가르쳤다. 조반 후에는 사륜거를 타고 악공을 거느리고 회수당이나 석실에 올라가 놀았다. 날씨 좋은 날은 반드시 세연정에 나갔다. 그때는 술과 안주를 충분히 준비시켜 조그만 수레에 싣고 그 뒤를 따르는 것이 관례였다. 세연정에 이르면 자제를 곁에 앉히고 앞못에 조그만 배를 띄워 미희들을 줄지어 앉히고 그 찬란한 복색과 어여쁜 용모가 물 위에 비치는 것을 바라보면서 「어부사시가」를 부르게 했다. 때로는 정자 위에 올라가 악공에게 풍악을 울리게 하고, 때로는 동 · 서대에 사람을 나누어 서로 마주보고 춤추게 하고, 더러는 무희로 하여금 못 가운데 있는 옥소 암에서 긴 소매를 나부끼며 춤추게 하여 못에 어리는 그림자를 즐겼다.”
굳이 윤선도가 아닐지라도 보길도에 한번 가본 사람이라면 색다른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 유산들이 산재해 있는 보길도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섬이다. 구수한 남도 사투리, 반들반들한 까만 깻돌, 울창 한 동백나무숲이 에워싸고 있는 예송리해수욕장, 고산이「어부사시가」를 썼던 세 연정과 동천석실을 비롯한 윤선도 유적지, 송시열 글씐 바위. 열녀 숙인김씨비각 등 자연 경관과 문화 유산이 어우러져 있는 보길도는 옛 고향에 온 느낌을 주며 자녀들의 산 교육 현장으로도 최적지이다.
보길도를 품고 있는 완도 군은 유인도 55개, 무인도 146개 등 총 201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쪽으로는 해남반도를, 동쪽으로는 고흥반도를 감싸안고 있는데. 완도는 오랜 세월 맏형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1969년 군외면 원동리에서 달도를 거쳐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 바다 사이에 완도교가 놓임으로써 완도는 뭍과 좀더 가까워졌다.
예송리해수욕장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상록수림과 깻돌밭이 어우러져 살풋한 정취를 자아낸다. 물이 유난히 맑은 것도 이곳의 자랑거리. 상록수림은 남쪽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을 막는 방풍림으로 상록수 15종, 낙엽 수 8종이 길게 이어져 있다.
‘고금도에서 족보 자랑 말고, 보길도에서 경치 자랑 말아라.' 라는 옛말이 있을 정도로 이 섬은 풍광이 절묘하다. 완도군의 역사는 다소 짧지만 선조들의 흔적은 곳곳에 깔려 있다. 조선시대 중기부터 당파 싸움 끝에 밀려난 선비들이 완도에서 귀양살이를 하였다. 고산 윤선도는 보길도의 자연 경관에 넋을 빼앗겨 그대로 눌러앉았는데, 여기에서 우리 국문 학사의 큰 줄기를 이룬「오우가」와「어부사시가」를 짓기도 하였다.
특히 詩仙 윤선도가 시름을 달랬던 보길도 부용동원림은 담양 소쇄원과 더불어 자연을 잘 이용한 조선시대 별서(別墅: 농장이나 들에 따로 지은 집) 정원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숲 · 돌 · 물들을 자연에 가장 가까운 모습으로 되살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윤선도는 포구가 바라보이는 자리에 세연정을 짓고 마음 심(心)자 모양으로 3개의 연못을 팠다. 그곳에는 야외 무대인 동 · 서대를 두고 입석과 판석에 구멍을 뚫어 굴뚝다리를 걸었다. 연못 뱃놀이가 싫증나면 활을 쏘기 위해 사투암도 마련했다. 그곳에서 5리 남짓 산쪽으로 들어간 곳에는 낙서재를 지어 거처로 삼았다.
한편, 송시열이 상소를 올린 것이 화근이 되어 제주도로 귀양가던 중 풍랑을 만나 상륙하였던 곳으로 섬 동쪽 끝의 백도리 해변 석벽에 자신의 심경을 한시로 새겨놓은 글씐바위가 있다. 가는 길이 비포장인데다 도로의 폭이 좁아 차가 들어가기 어렵다. 배도리까지 버스를 타고 간 뒤 동백나무가 울울한 길을 30분쯤 걸어가면 파란 남해 바다와 기암절벽이 솟아 있는 곳을 만나게 된다. 일출을 보기에도 적합하고 낚시하기에도 안성맞춤.
윤선도가 말년에 머물렀던 곳으로 정자 동천석실도 볼 만하다. 동천석실로 올라가 다 보면 석문 · 석담 · 석천 · 석폭 · 석대 및 희황(복희씨)의 유적이 있다. 아슬아슬한 벽 위에 세운 한 칸짜리 정자는 여유롭게 책을 읽으며 신선처럼 소요하는 은자의 처소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고산이 다도를 즐기던 오목하게 패인 차바위, 바위 사이에서 솟아나는 석산수를 받는 작은 석지와 연지. 암벽 사이에서 자생하는 석란, 한 사람이 거닐 수 있는 돌 계단 등 자연 그대로의 모양에 따라 여러 바위에 상징적인 이름을 붙인 유적들을 볼 수 있다. 올라가는 길은 경사가 가파르긴 하지만 그리 험하지는 않다. 입구에서 맞은편으로 가면 윤선도가 살았던 집터인 낙서재터와 윤선도의 아들이 기거했던 곡수당터를 볼 수 있다.
청별 선착장에서 세연정 쪽으로 가다 보면 삼거리 못 미처 왼편에 작은 비각이 있다. 강대의의 부인인 김씨비각이 그것이다. 화강암으로 만든 비각과 금줄을 걸기 위해 세워놓은 둥그런 기둥이 이채롭다.
보길도에는 유일한 산신당이 있는데, 매년 정월 초하룻날 마을에서 제주를 뽑아 마을의 안녕을 위하여 제사를 모신다. 주위에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고 예송리 민박집 뒤편 약국집 골목으로 가다 보면 나온다.
정동리 오른편에 소나무가 심어져 있는 작은 섬이 보인다. 이곳이 바로 낚시터로 유명한 솔섬이다. 육지와 연결되어 있어 쉽게 갈 수 있으며 황홀한 일몰도 감상할 수 있다.
보옥리 쪽으로 난 포장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맨 끝에 뾰족하게 솟은 보족산을 만나게 된다. 사계절 장관을 이루는 곳으로 봄에는 산철쭉과 산벚꽃이 피고 여름에는 시원한 해풍이,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동백꽃이 피어 난다. 보는 이의 위치에 따라 산의 모양이 바뀌고 날씨가 맑은 날 정상에 서면 추자도와 제주도가 바라보인다.
보길도의 특산물로는 김과 미역, 멸치, 톳을 꼽을 수 있다. 특히 보옥리 멸치는 청정해역에서 잡힌만큼 최고의 맛을 자랑한다. 또 보길도산 톳은 영양가가 풍부하고 일본에 전량 수출되며 1년에 50억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화장품 재료로도 쓰이는 톳은 삶아서 고추장에 무쳐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한때는 군민의 70% 이상이 해조류, 특히 김 양식에 매달렸을 만큼 김의 주산지 였다. 지금도 ‘다도해 해조류 양식 1번지’라는 명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가는 길
완도항에서 소안도를 거쳐 보길도까지 가는 철부선이 하루에 네 번 떠난다(08:00, 10:00, 12:10, 14:00). 보길도→완도(07:00, 09:30, 12:00, 13:40, 15:30). 일반 요금 6,100 원, 중고생 요금 3,050원, 승용차 18,000원, 1시간 20분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