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명사에 대변혁을 가져올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됐다. 핵심 근간은 빅데이터 기반 인공지능(AI)이다. 1800년대 증기기관으로 촉발된 1차 산업혁명은 이제 소프트웨어(SW)와 지능기술을 응용한 새로운 사회로의 진입에 속도를 붙이고 있다. 육체노동의 자동화를 넘어 정신 혹은 지식노동의 자동화로 전이되고 있는 셈이다. 이른바 디지털 혁명이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은 과연 새로운 산업혁명일까. 이 혁명의 핵심 기술은 무엇인가.
4차 산업혁명은 허구다?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 경제 혁명 100년의 회고와 인공지능 시대의 전망>이라는 책을 펴낸 로버트 J. 고든 미국 노스웨스턴대 석좌교수는 최근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4차 산업혁명은 허구다”
공장자동화(FA)는 이미 20년 전에 시작됐고,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은 기존 디지털 산업의 진화로 봐야 한다는 것이 AI 혁명의 주된 의견이다. 단지 디지털 산업의 핵심 기술 중 하나가 바로 AI라는 규정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AI는 현재에 많은 부분 침투해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시작점이 어떻든 AI가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 AI란 인간의 지능을 인공으로 구현한 것을 의미한다. 학자들은 크게 AI를 ‘강(强) AI’와 ‘약(弱) AI’로 구분한다. 이 또한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굳이 따지자면 현재는 약에서 강 AI로 진화하는 상황 정도로 인식하면 된다.
AI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기능은 ① 스스로 학습하는 기능 ② 판단하고 사고하는 기능 ③ 인간의 언어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능력이다. 그 근간에는 기계학습, 자연어 처리, 음성 인식이라는 기술이 자리한다. 왜 4차 산업혁명의 근간은 AI일까.
고리타분한 로봇의 잠재성 분석은 차치하더라도 AI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주는 SW(소프트웨어)’ 정도로 정의할 수 있다. 이 SW를 통해 AI는 기계로 하여금 지능화된 동작을 하게 한다. 사람과 상호작용하고 최적화된 문제 해결 능력을 보여 준다.
이는 기술의 민주화, 사회 자산화되는 ‘공유’의 가치를 지닌다. 또 공동 작업으로 다양한 아이디어를 융합하거나 다수의 눈으로 오류를 검출하는 ‘참여’의 속성도 띠고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가 전망한 AI의 응용 분야는 그야말로 모든 산업을 포함한다. 교통, 홈서비스, 의료·건강, 예술·공연, 교육, 노동·고용, 안전·보안, 공공복지 등이 응용 분야로 꼽힌다. 특히 금융 산업과 AI 접목은 간과할 수 없다. 이상금융거래탐지시스템(FDS)에 AI를 접목, 카드 사용과 주식 등 금융 거래를 실시간 모니터링하거나 특이한 패턴이 발견되면 거래 중단 등의 조치를 취한다. IP주소, 구매 이력, 최근 거래 이력, 브라우저 쿠키 정보 등 수천 가지 데이터를 수집·분석해서 이상 거래와 비정상 거래 등을 잡아낸다. 고객 신용도 평가에도 활용한다. 대출 심사나 주택 융자 변화 예측, 로보어드바이저 투자도 이미 낯설지 않은 영역이다.
글로벌 기업, AI 전쟁은 이미 시작
구글은 2001년부터 AI 연구개발(R&D)을 시작했다. 딥러닝, 음성인식 기술, 자연어 처리 기술에 약 33조 원의 인수합병(M&A) 자금을 투입했다. 2013년 토론토의 딥러닝 스타트업 DNN리서치를 인수하며 딥러닝 기술 R&D를 본격화했다. 이후 딥 마인드, 무드스톡, 카글 등 다양한 AI 관련 기업 인수를 진행했다. 또 구글은 AI 핵심 기술과 이를 활용한 바이오, 자율주행차, 로봇 등 다양한 영역 투자를 확대했다. 지난해 1분기 구글의 R&D 투자비용은 39억 5천만 달러에 달했다. 역대 최대 규모다.
순다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미래는 모바일 퍼스트 세계에서 AI 퍼스트 세계로 전환이 이뤄질 것”이라며 AI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대표 솔루션은 구글 AI 비서인 ‘구글 어시스턴트’ 서비스의 확장이다. 기존 스마트폰 외에도 웨어러블 기기와 AI 스피커(구글홈)에서 활용 가능하다. 집에서는 구글 홈을 통해 일정을 잡고, 여러 명이 사는 집에서 목소리를 구분하고 명령을 수행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페이스북은 챗봇을 통한 전자상거래 플랫폼 진화에 착수했다. 2015년 이후 매 분기 약 10억 달러 이상의 R&D 투자를 집행했다. 지난해 1분기에만 18억 5천만 달러를 쏟아부었다. 페이스북은 AI를 통해 자체 생성되는 다양한 콘텐츠의 분류, 이를 기반으로 이용자에게 더욱 정확한 콘텐츠를 추천해 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용자를 분석, 주 수익원인 광고를 강화하자는 것이다. 페이스북은 이미 2016년부터 이용자 활동을 분석하는 딥 텍스트라는 서비스를 내놨다. 이용자들이 올리는 포스트, 메시지를 이해하고 유저에게 관심 있는 콘텐츠를 선정해 제공한다. 쓸모없는 스팸을 걸러 주기도 한다. 딥 텍스트가 적용되면 수천만 개의 포스트 가운데 원하는 정보를 찾기가 쉬워진다. 최근에는 AI를 적용한 챗봇 시스템 강화에 나섰다. 페이스북 메신저 내에 존재하는 챗봇을 통해 이용자가 광고주들에게 정보를 문의하거나 요구 사항을 이야기하는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 챗봇과의 대화 도중에 결제까지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구축, 전자상거래 활성화를 추진한다. 마이크로소프트(MS)도 AI 비서를 기반으로 한 MS 서비스 융합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2015년 이후 매 분기 3조 원 이상의 비용을 R&D에 투자하며 AI, 클라우드서비스 증강현실(AR)과 같은 다양한 신기술 R&D를 지속하고 있다. AI 비서 코타나의 고도화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코타나는 윈도, iOS, 안드로이드에서 사용이 가능하다. MS의 검색 엔진 빙을 기반으로 이용자에게 검색, 애플리케이션(앱) 실행, 알림, 우버 연동 등 다양한 기능을 추가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미 국내도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일반인도 통신사나 포털의 다양한 인공지능 스피커를 통해 일정 수준 이상의 서비스 경험이 가능하다. 네이버는 AI 콘텐츠 추천 시스템인 AiRS를 통해 사용자 콘텐츠 소비 패턴을 분석해서 보여 준다. 구글 어시스턴트, 애플 시리와 동일한 네이버 AI 비서 클로바도 관심을 끈다. 클로바는 정보 검색, 음악 추천, 번역, 영어 회화 및 대화 등이 가능한 서비스다. 이와 함께 네이버는 AI 스피커 및 자율주행차 등 AI 기반의 다양한 신산업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카카오 또한 지난해 2월 AI 기술 개발 자회사인 카카오브레인을 설립하고 AI 플랫폼과 전용 앱 개발에 뛰어들었다. 이미 지난해부터 모든 뉴스 콘텐츠에 이용자 반응형 추천 시스템인 루빅스를 적용하고 있다.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 금융사들도 AI 시스템을 적용하고 자산 관리부터 금융 서비스 판매, 소비자 응대에 활용하고 있다. 그 대표 사례가 로보어드바이저다. 로보어드바이저는 고도화된 알고리즘과 빅데이터를 통해 인간의 프라이빗 뱅커(PB) 대신 모바일 기기나 PC를 통해 포트폴리오 관리를 수행하는 온라인 자산관리 서비스다. 어려운 개념일 수 있지만, 기존의 기술적(차트) 분석과는 다른 접근이다. 로보어드바이저는 알고리즘을 사용해 더 효과적으로 자산배분을 하는 것이 핵심이다. 미국에서는 로보어드바이저가 2016년 0.3조 달러이던 것이 2020년에는 2.2조 달러까지 성장하여 미국 전체 자산관리시장의 7%까지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한국도 2020년 50조 원, 2030년 830조 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2030년에는 자산관리 시장의 81%에 해당한다. 로보어드바이저의 핵심은 머신러닝 기술이다. 이미 금융위원회 테스트베드 등을 통해 성과를 인정받은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 엠폴리오(신한은행), 우리로보알파(우리은행), 케이봇쌤(KB국민은행), 하이로보(KEB하나은행), NH로보프로(NH농협은행) 등이 대표적이다.
은행들의 다양한 뱅킹 서비스 시도도 눈길을 끈다. 소리(우리은행)는 AI기술을 이용해 음성을 텍스트로 변환하고 금융거래를 실행하는 국내 은행 최초의 음성인식 AI뱅킹이다. 하이뱅킹(KEB하나)은 문자 메시지로 송금과 계좌 잔액 조회, 송금, 지방세 자동납부가 가능하다. 금융봇(NH농협)은 카카오톡 채팅을 통해 금융 상담을 진행한다. 상품안내, 자주 묻는 질문, 이벤트 안내, 올원뱅크 바로 가기 등의 기능을 갖췄다. 쏠메이트(신한은행)는 음성인식이 가능한 자체 개발 AI 상담과 조회, 이체 등 뱅킹 서비스를 제공한다. 콜봇(케이뱅크)은 문자를 입력하면 바로 자동화된 답변을 제공하는 AI서비스를 한다. 물론 소비자가 직접 느끼지 못하는 숨겨진 분야에서 다양한 신용정보 분석과 사고 예방부분에서 좀 더 고차원적인 활용이 이뤄지고 있다.
인간과 AI, 공생의 딜레마
4차 산업혁명의 근간으로 AI를 활용하려는 움직임은 이미 전 세계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그만큼 해결 과제도 남아 있다. AI는 노동 인력 급감을 촉발한다. 우리나라도 10년 안에 노동자의 70%인 약 1,800만 명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결국 노동시장 기회의 양극화를 가져오고 한국의 노동 유연성을 떨어뜨리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직업과 노동 형태를 디지털 플랫폼 위에서 독립해 근로할 수 있도록 노동시장 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소득 양극화, 국가 간 격차도 AI로 인해 심화될 것이 분명하다. AI를 활용해 고소득을 올리는 극소수 계층이 형성되고, 패권주의와 사회주의 체제에서 AI를 악용할 가능성도 매우 짙다. 김진형 지능정보기술연구원장은 “AI는 글로벌 차원에서 국가 간 분업 및 경쟁을 심화시킬 수 있다”면서 “AI 시대를 향한 전환의 복잡성을 이해하고 인간의 가치, 민주주의의 가치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AI를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