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섬 강화도. 흔히 ‘지붕없는 박물관’이라고 불린다. 그만큼 역사유적이 많다. 선사시대와 비류백제, 고려시대 항몽유적이 도처에 자리하고 있다. 여행의 시작은 강화읍내에 자리한 강화버스터미널이다. 고려궁지와 용흥궁, 성공회 강화성당 등이 고만고만한 거리에 자리 잡고 있어 대중교통을 이용해 돌아보기에 좋다.
대몽항쟁의 흔적을 더듬다
강화도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유적은 대몽항쟁 당시의 것들이다. 이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고려궁지다. 몽고의 1차 침입 후 고려 고종은 1232년 수도를 송도(개성)에서 강화도로 옮기고 1234년 궁궐과 관아 건축물 공사를 모두 완료한다. 1270년 개경으로 환도할 때까지 고려의 왕들이 머문 곳이 바로 고려궁지다.
하지만 고려 원종이 개경으로 돌아간 이후 강화도의 고려궁궐과 성의 대부분은 무너지거나 불타버렸다. 조선 인조 때 고려궁지에 행궁, 전각, 강화유수부 등을 세웠지만 이는 병자호란 때 함락되어 수난을 당한다. 또한 병인양요 때에도 프랑스군에 의해 소실되는 등 심한 우여곡절을 겪는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고려궁지는 다시 복원한 것으로 고려시대의 건축 기단과 돌계단, 그리고 조선시대의 유수부 동헌과 이방청, 외규장각 등이 남아있다. 프랑스에 반환을 요구하고 있는 국보급 문화재가 바로 이곳 외규장각에 있던 고서들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약탈해 간 것이다. 고려궁지는 당시에도 송도의 궁궐인 만월대와 비슷한 모양을 갖췄다고 한다. 고려궁지에 자리한 야트막한 뒷산의 이름도 송악산인데, 여기에서 나름 개경에서와 비슷한 왕궁의 모습을 갖추려 한 것을 알 수 있다.
고려궁지에서 내려오면 성공회강화성당이다. 1900년 지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성당이다. 고풍스런 성당을 상상하고 찾아간 이들에게 성공회강화성당의 모습은 놀라움 그 자체다. 외관만 보면 성당이라기보다는 사찰건물 같다. 1890년 성공회가 우리나라에 처음 전파된지 3년 후 영국인 왕란도 신부는 강화읍 갑곶리에 회당 겸 사택을 매수해 전도를 시작했고 초대 주교인 존 코르페 신부는 1900년 ‘성공회강화성당’을 세웠다. 성당의 내부는 백두산 나무를 사용한 전형적인 바실리카 양식이지만 외형은 한옥이다. 낯선 서양 종교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 조선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고자 사찰 건축양식을 차용한 것이다. 입구는 솟을대문처럼 선 커다란 나무대문인데 붉은 문 가운데에 태극무늬가 그려져 있고, 문 양옆으로 난 창살에도 태극무늬의 원이 있다. 대문 안쪽에는 사찰에서나 볼 수 있는 커다란 범종도 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십자가 문양이 새겨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성당 주위를 찬찬히 돌아보길. 불교를 상징하는 보리수와 유교의 선비를 의미하는 회화나무가 사이좋게 심어져 있다. 이는 아마도 타 종교와의 화합을 위해 심은 것이리라. 강화성당에 바로 옆이 용흥궁이다. 철종이 왕이 되기 전 살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 초가집이었으나 1853년에 지금과 같은 집을 짓고 용흥궁이라 부르게 됐다. 용흥궁을 나와 갑곶돈대부터 초지진까지 해안도로를 따라갈 수 있다. 길이는 약 17km. 대부분이 바다를 보며 걷는 둑길이다. 이 길은 강화나들길 2코스 호국돈대길이기도 하다. 갑곶돈대, 오두돈대, 광성보, 덕진진, 초지진으로 이어지는 이 길은 염하와 함께 한다. 염하는 강화도와 김포를 구분하는 물길인데 조류가 빠르기로 악명이 높다. 사람만한 바위가 물살에 쓸려 다닐 정도라고 한다.
고려궁지와
성공회강화성당.
강화도 역사여행의
시작점으로
잡기에 좋다.
용흥궁과 갑곶돈대.
용흥궁은 철종이
왕이 되기 전에
살았던 곳이다.
갑곶돈대는 강화도
5진 7보 53돈대
가운데 하나다.
광성보와 초지진.
강화나들길 2코스
호국돈대길로
걷기 좋은 길이다.
한양을 지키는 요새 강화도
갑곶돈대는 강화도에 자리한 5진 7보 53돈대 가운데 하나다. 조선 조정은 병자호란 이후 강화도의 방비를 강화하기 위해 5개의 진과 7개의 보, 153개의 돈대(평지보다 높은 곳에 설치한 관측소)를 설치했다. 섬 전체가 하나의 요새가 된 것이다. ‘돈대’란 경사면을 자르거나 흙을 다져 평평한 지대를 만들고 옹벽을 쌓은 곳을 말하는데, 진과 보는 요즘으로 치면 각각 대대와 중대로, 돈대는 진과 보에 소속된 그보다 작은 규모의 요새로 보면 된다. 이들 돈대 덕택에 강화도는 나라에 변란이 있을 때마다 수도인 한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 역할을 했고 외적이 침입했을 때 왕실이 피난하는 제일의 후보지기도 했다.
돈대 자체가 적군의 침입을 잘 살피기 위해 마련한 곳이라 전망도 좋다. 갑곶돈대에서도 서해의 기름진 개펄이 한눈에 들어온다. 소포, 대포 등 무기만 없다면 전망대로 오해할 정도다. 갑곶돈대에서 나와 용당돈대, 오두돈대를 차례로 지나면 광성보다. 강화도에 자리한 진과 보, 돈대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신미양요의 격전지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양요(洋擾)는 말 그대로 서양인들이 일으킨 난리다. 19세기 중엽 조선의 바다에는 통상을 요구하는 서양 선박이 빈번하게 출몰했다. 당시 흥선대원군은 대대적인 천주교 탄압을 행했고 병인년(1866년)의 박해로 프랑스 선교사 9명을 비롯해 수천 명의 천주교인이 처형됐다. 프랑스 함대가 이를 구실로 조선을 침입하는데 이를 병인양요라 한다. 그리고 5년 뒤 신미년(1871년)에는 미국 함대가 쳐들어온다. 대동강에 정박했던 제너럴셔먼호가 조선 군민의 공격에 불탄 것을 따지며 통상을 강요했고 강화도에서 싸우게 된다. 당시 미군은 3명이 전사했지만 조선군은 350명이 목숨을 잃었다.
초지진은 1866년 병인양요 때와 1871년 신미양요 그리고 1875년 운양호 사건 때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학창시절 국사 교과서에서 배웠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성곽의 길이는 500m가 채 되지 않는다. 한눈에 돈대가 다 들어온다. 돈대 가운데는 포각(砲閣)이 하나 있고 이 포각에 홍이포가 전시되어 있다. 조선시대 때에 만들어진 대포다. 초지진에 올라 바라보는 강화도의 풍광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 있고 바다에는 초록색 등대가 우두커니 서 있다. 개펄에는 아이들이 조개를 캐고 누군가가 캔버스를 세우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전등사. 아늑한 숲길과
풍경소리가 아름다운
고찰이다.
다향 가득한 절,
전등사
강화도에는 전등사라는 예쁜 절이 있다. 절을 향해 흘러가는 아늑한 숲길이 좋고 풍경 소리가 좋고 차 맛이 좋은 절이다. 초지진에서 20여 분 거리다. 입구 격인 삼랑산성문을 지나면 울창한 소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길을 밟는 느낌이 딱딱하지 않고 보드랍다. 싱그러운 숲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숲길이 끝나는 곳에 윤장대가 있다. 윤장대는 내부에 불교의 경전을 넣어놓은 경통(經桶)으로 이를 한 번 돌릴 때마다 경문을 한 번 읽는 것과 같다고 여긴다. 윤장대는 티베트 불교의 상징이지만 월정사 등 우리나라 사찰 몇몇 곳에서도 볼 수 있다. 전등사는 고구려 아도화상이 세웠다는 고찰이다. 원래 이름이 진종사(眞宗寺)였으나 고려 충렬왕의 아내 정화공주가 나라를 빼앗긴데 이어 원나라의 제국공주에게 남편마저 빼앗긴 슬픔을 달래려 즐겨 찾다가 옥등과 청동수조를 시주했다 하여 ‘(왕비가) 등을 전달한 절’이란 뜻의 전등사로 바뀌었다. 전등사는 대웅전의 처마 밑에 있는 신기한 나무 조각상으로 유명하다. 여인이 네 귀퉁이에서 지붕을 인 형상이다. 전설에 따르면 절을 짓던 목수가 자신의 사랑을 배반하고 도망친 여인에게 벌을 주기 위해 조각해 넣은 것이다. 얼마 사랑했길래 자기를 두고 떠났다고 긴 긴 세월의 저주를 내린 것일까. 절이 지어진 때가 조선 광해군 13년(1621)이니 벌써 385년째 저러고 있는 셈이다. 절 입구에 자리한 죽림다원 역시 전등사를 찾는 이들이 꼭 찾는 명소가 됐다. 사람들은 경내를 오르내리며 다원에 들른다. 차를 마신 후 전등사 경내를 둘러보면 더욱 깊은 운치를 감상할 수 있다. 반대로 경내를 둘러본 뒤 차를 마시면 차의 맛과 향이 훨씬 깊어진다. 중생들의 애틋한 발길 때문에 대웅전 문지방이 닳아버린 것처럼 죽림다원의 문지방도 작은 만남과 인연으로 조금씩 닳고 있다. 산사에서 내려온 풍경 소리가 다원 마당에 내려앉는다. 이런 정취 속에 깃들어 본지가 얼마 만인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탁 트인 바다를 볼 수
있는 동막해수욕장은
강화도 본섬의 유일한
해수욕장이다.
넓은 바다 그리고
바다를 물들이는 일몰,
동막해수욕장
전등사에서 나와 동막해수욕장으로 간다. 탁 트인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다. 동막해수욕장은 강화도 본섬의 유일한 해수욕장. 밀물 때는 잔잔한 물결이 일고 썰물 때는 1800만 평 규모, 직선거리 4km의 갯벌이 펼쳐진다. 세계 4대 갯벌의 하나다. 광활한 갯벌 위로 쏟아지는 초가을의 태양이 눈부시다. 해수욕장 동쪽 끝에 있는 분오리돈대에 오르면 갯벌의 장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동막해수욕장의 물은 갑자기 깊어지지 않는다. 한참을 걸어가도 무릎 높이밖에 차지 않는다. 왜 사람들은 바다를 찾는 것일까. 아마도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이 아닐까. 서해의 황톳빛 바다는, 괜히 마음을 들뜨게 하는 동해의 바다와 달리 보는 이를 차분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해수욕장에서 시간을 보내다 해가 서쪽으로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장화리로 가보길. 장화리 해양탐구수련원 앞 바닷가에 서서 떠나보내는 일몰이 빼어나다.
여행정보
★ 교통편 신촌역에서 3000번, 3100번을 타면 강화도에 갈 수 있다. 영등포에서 88번, 일산에서 96번을 타면 강화도로 간다.
강화군청 문화관광홈페이지(tour.ganghwa.incheon.kr)에서 자세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 먹거리 강화도는 ‘갯벌 장어구이’로 유명하다.
민물 장어를 강화도 갯벌에 ‘방목’ 시켜 기른 것이다.
바닷장어와 육질이 비슷하지만 쫄깃하고 기름기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더리미포구에 장어구이마을이 조성되어 있다.
강화읍내 신아리랑식당(032-933-2025)에 가면
젓국갈비라는 독특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각종 채소와 돼지갈비를 넣어 끓이는 전골이다.
새우젓을 간을 해 짭조름하면서도 담백하다.
★ 묵을 곳 전등사와 동막해수욕장 주변에 펜션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