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지난 한식 날 내려갔을 때 어머니께서 하셨던 말씀이 내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부엌에서 한창 음식을 하는데 어머니께서 그러시더군요. 동네 온 할망구들이 손전화를 가지고 다니면서 자랑하는데 가만 보니 손전화가 없는 사람은 당신뿐인 듯하다고. 어머니 말씀을 들은 남편이“그럼 어머니도 하나 사드릴까요?”여쭙자 어머닌 손사래를 치며 그만두라 하십니다. 늙은이가 무슨 용건이 그리 많아 손 전화를 갖고 댕기면서 전화질을 하겠냐고, 집에 전화기 한 대면 족하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제겐 어머니 속내가 훤히 보이는 듯했어요. 행여 자식들에게 부담이 될 새라 말씀은 그렇게 하시지만 은근히 손전화를 탐내시는 게 분명해 보였거든요. 그래서 색깔도 어머니 좋아하시는 빨간색으로 예쁜 걸로 골라 생신 선물로 사드렸지요. 일전에 남편이 여쭸을 땐 그렇게 마다하시더니 막상 휴대폰을 선물로 받으시곤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휴대폰이 생긴 이후, 하루에도 몇 번씩 어머니로부터의 전화가 이어졌지요. 물론 저뿐 아니라 모든 자식들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전화를 하시는 어머니. 별다른 용건이 있는 게 아니라 동네 할머니들 앞에서 새로 산 휴대폰을 자랑하고픈 당신 마음을 모를 리 없지요.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께서 아주 다급한 음성으로 전화를 해오셨어요. 말씀인즉 들일을 나가시거나 주무실때도 휴대폰을 소지하고 계신 어머니, 그만 빨래를 하시던 중에 휴대폰을 물에 빠뜨리셨단 거예요. 멀쩡한 새 휴대폰을 아주 버렸다고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신 어머니를 한참 설명 끝에 겨우 안심시켜 드렸지요. 물에 빠뜨린 휴대폰을 마른 수건으로 잘 닦아 볕에 말리면 멀쩡하니 다시 사용할 수 있다는 말에 어머니는 얼마나 좋아하시던지요.
얼마 전엔 동네 뒷산으로 밤을 주우러 가셨다가 그만 숲에 휴대폰을 잃어버리고 왔다며 얼마나 애통해 하시던지요. 이번에도 휴대폰을 찾을 방법을 상세히 알려드렸지요. 동네 친구분 휴대폰을 빌려 밤 주우러 가셨던 곳으로 가신 다음 계속 어머니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라고요. 다행히 동네 친구분들을 전부 동원해 숲을 뒤진 끝에 휴대폰을 찾으신 어머니, 이후엔 아예 휴대폰을 목에 걸고 다니며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겠다고 각오가 여간 아니십니다.
오늘도 우리 집전화기엔 어김없이 어머니의 휴대폰 번호가 여러 차례 뜹니다. “에미야, 내 오늘 고춧가루 좀 부쳤는디 김치냉장고에 넣어두고 애껴 먹어라 잉?”용건을 끝내기 무섭게 전화세 많이 나온다고 뚝 전화를 끊는 어머니. 빨간색 휴대폰을 목걸이 마냥 걸고 틈틈이 자식들에게 안부를 전하시는 환한 얼굴이 보이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