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처럼 밀려드는 사람들, 사람들
8월 휴가철은 이미 끝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속초로 발걸음을 끊은 것은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속초를 중심으로 한 강원도 여러 곳으로 흩어졌던 사람들이 모두 속초관광수산시장으로 몰려드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시장 근처는 북새통을 이룬다. 때문에 주차를 하는 데만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아직 후끈한 기운이 여전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얼굴에는 짜증보다는 기대가 하나 가득하다. 도대체 어떤 흥미진진한 것들이 있기에 그러는 것일까.
시장으로 바로 들어가기보다는 외곽 쪽으로 나와 한 번 훑어보기 시작한다. 많은 부분이 바뀌었을 중심부와는 달리 시장의 초입은 여전히 예전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오래된 간판들만큼이나 그 자리를 오랫동안 지켜왔을 상인들도, 상당히 오랜 시간 변함이 없었을 얼굴로 가게를, 좌판을 지키고 있다. 다만 달라진 것은 명태의 알인 명란이 생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 여서는(여기서는) 명태 안 잡히니까 명란도 수입산이긴 하지. 러시아에서 가져와요. 그래도 이거 손질하는 건 여전히 속초가 제일 잘하지.”
생선 가게에서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명란이 어디서 왔냐고 묻자 주인아주머니는 조금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대진, 고성, 속초 앞바다에서 잡히던 그 많던 명태들이 모두 사라지면서 이제 더 이상 ‘명태 만선’의 꿈을 꿀 수 없게 된 지 벌써 10년 이상이지났기 때문. 심지어 2008년에는 단 한 마리의 명태도 잡히지않았다. 당연히 명태 멸종의 여파가 시장에까지 미쳐 있던 것이다. 그래도 해양수산부 주도로 진행된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를 통해 명태의 완전양식이 성공을 거둔 것은 정말 반가운 소식이다. 빠르면 2018년부터 양식 명태를 만날 수 있다고 하니, 그때의 시장은 지금과는 또 다른 활력을 보일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시장의 중심에서는 이미 그 변화가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
속초관광수산시장의 ‘선택과 집중’
시장 안쪽에서는 전통적인 속초의 특산물들, 그러니까 명란젓과 오징어젓을 비롯한 각종 젓갈류와 비록 러시아에서 잡은 것이긴 하지만 강원도의 찬바람으로 맛을 들인 황태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재료는 사라졌지만 그것을 다루고 만들던 지역의 노하우는 여전함을 보여주는 증거들. 당연히 ‘때깔’이 좋아 보일 수밖에. 특히 다양한 젓갈들 앞에서는 갓 지은 밥 한 공기가 절로 떠올라 침을 꿀꺽 삼키게 된다.
하지만 이곳은 말 그대로 초입. 조금만 더 걸어 들어가면 ‘향긋한 기름 냄새’를 만나게 된다. 분명히 무엇인가를 튀기고 굽고 부침으로 발생하는 이 냄새는, 속초관광수산시장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것. 하지만 그 트레이드마크가 오래된 것은 아니다.
속초관광수산시장 info
찾아가는 길
속초IC – 교동지하차도 사거리에서 우회전 – 만천사거리에서 좌회전 – 수복로를 따라 1.4km 직진
운영시간 06:00~24:00
문의 033-633-3501
시장 주변 관광지 속초 해수욕장, 영랑호, 설악산, 아바이 마을
속초관광수산시장의 모태라 할 수 있는 속초 중앙시장이 형성된 건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삼팔선이 사라지고 새롭게 휴전선이 그어지면서 속초가 수복되자마자 시장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건어물 시장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1990년대 이후 수산업의 불황과 전통시장에 대한 수요 격감으로 점차 활력을 잃어갔다. 그래서 한때는 전체 점포 중 약 절반가량이 폐업 신고를 했을 정도였다는 게 시장 상인들의 전언. 하지만 그렇게 주저앉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다시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와야 한다는 데에 모든 상인들이 공감을 했고, 시장을 활성화시킬 아이템으로 ‘먹거리’를 꼽았다. 전통적인 상품인 건어물과 TV 등을 통해 유명해진 닭강정, 아바이 순대, 오징어 순대 등을 앞세워 ‘맛있는 시장’이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그리고 그 노림수는 적중했다.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곳은 바로 닭전골목. 말 그대로 닭강정과 전을 파는 골목이라는 뜻이다.
와글와글, 맛있는 북적임 속에서
가게들은 저마다 알록달록한 간판에 불을 밝히고 자신의 메뉴를 한껏 자랑하고 있었는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누가 뭐래도 노릇노릇한 튀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바삭’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잘 튀겨진 새우, 홍게, 고추, 깻잎 등이 노란 산을 이루고 있다. 어쩌면 그렇게 깔끔하게 튀겨냈는지 얼른 하나를 입에 집어넣고 싶어진다.
하지만 튀김 앞에서 전진을 멈출 수는 없는 일. 저 안쪽으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물결이 중심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직접 보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정도로 호기심이 일어난다. 그렇게 만나는 먹거리들은,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다.
철판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감자전과 수수부꾸미 같은 전통 음식부터 노릇한 계란옷을 입은 오징어 순대와 아바이 순대, 그리고 시장의 얼굴이 된 닭강정과 새우 튀김, 새우 강정 같은 것들은 때늦은 더위를 잊게 할 만큼 매력적이다. 게다가 소량으로도 판매를 하고 있어 혼자 혹은 둘이 온 여행자들도 부담 없이 구입할 수 있는 것도 큰 이점. 게다가 맛있다.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뜨내기 장사’라고도 할 수도 있지만 상인들의 마음가짐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타지에서 온 손님이라 해서 다시 안 오는 게 아녜요. 게다가 요즘
은 SNS다 뭐다 해서 여기저기 소문낼 게 얼마나 많아요. 한 분이라도 허투루 하면 큰일 나요.”
한창 오징어 순대를 손질하던 상인은 “그래서 더 신경 써서 만들고 한 번이라도 더 웃으려고 노력한다”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바뀐 시장에 어울리는 밝고 활기찬 미소였다. 그리고 그 미소는 비단 상인들만의 것은 아니었다. 저마다 손에 먹을 것을 들고 있는 사람들 역시 환한 표정이긴 마찬가지였다. 그러고 보니 시장은 참 밝았다. 지붕을 씌워 햇볕을 차단했음에도 말이다.
지하에 펼쳐진 바다 마을 속으로
속초는 누가 뭐래도 항구 도시. 시장에서 싱싱한 활어를 만나는 게 당연한 일이겠지만, 어쩐 일인지 수조를 전면에 내세운 상점은 보이지 않는다. 안내판을 찬찬히 둘러보니 활어를 비롯한 각종 해산물은 지하에서 만날 수 있다고 한다. 내려가 보지 않을 수 없는 일. 구획 정리가 반듯하게 된 지하공간은, 상당히 쾌적했다. 통로에는 짐을 적재해 놓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고 수산시장 특유의 비린내 같은 것도 없었다.
“파이프 묻어서 저 멀리서부터 바닷물을 끌어오고 있거든요. 3.7km짜리 파이프라던가. 아무튼 시장으로 들어오는 물이 얼마나 깨끗한지 몰라요. 그래서 이런 애들도 이렇게 싱싱하게 살아있는 거예요.”
상인이 가리킨 곳에는 꽃새우들이 활기찬 모습으로 모여 있었다. 깊고 차갑고 맑은 바닷속에서만 산다는 그 꽃새우가 말이다. 하지만 동해를 대표하는 게 어디 새우뿐일까. 성인 손바닥만큼 커다란 섭은, 진주담치가 빌려 쓰고 있는 ‘홍합’이라는 이름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온몸으로 웅변하고 있었고, 미끈한 문어들은 마치 꽃처럼 활짝 피어 있었다. 깨끗한 바다에서 티 없이 자란 가리비와 대합도 말끔한 얼굴로 여름을 이겨낸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제야 왜 사람들이 이곳 속초관광수산시장으로 파도처럼 밀려드는지 이해가 됐다. 맛있는 음식들, 친절한 상인들, 싱싱한 해산물들. 이 모든 것이 삼위일체가 되어 발걸음을 끌어당기는데도 참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저 저 멀리서부터, 누가 먼저 도착하는지 경쟁이라도 하듯 달려가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다.
Mini Interview
더 좋은, 더 쾌적한 시장으로 발돋움하겠습니다
한두삼 | 상인회장
“속초관광수산시장은 이제 전국에서 손님이 찾아오시는 시장입니다. 저희가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오고 계시는 터라, 그로 인한 불편함을 드리는 것 같아 그게 가장 마음이 쓰이는 부분입니다.” 한두삼 상인회장은 “무엇보다 주차장 문제를 해결하는 게 급선무”라고 했다. 이미 부지선정은 끝났고 곧 착공을 앞두고 있기에 지금과 같은 주차난은 한결 덜 할 것이라는 설명도 이어졌다. 그런 그의 눈에는 진한 감회가 어렸다.
“정말 많이 변했습니다. 그동안 시와 정부, 그리고 지역 대학의 도움을 받아 이만큼이나 성장할 수 있었거든요.”
달라진 속초관광수산시장의 가장 큰 장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한두삼 상인회장은 “원스톱 쇼핑”을 꼽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튀김과 닭강정부터 어른들이 좋아하는 각종 해산물, 게다가 대형 마트까지 시장에 있어서 모든 것을 이곳에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즐거운 휴가를 위한 모든 것이 준비된 셈이죠.”
인터뷰를 서둘러 마치고 다시 시장 주차장의 교통정리를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던 한두삼 상인회장이 문득 뒤돌아섰다.
“앞으로 고객들이 더 편하게, 더 즐겁게 찾을 수 있는 시장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이든 마다하지 않을 테니, 계속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