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노사관계가 새롭게 정립되어야 한다는데는 누구나 공감하고 있다. 말하자면, 지금까지와 같은 한국식 노사관계는 일대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는 무한경쟁시대에 국가와 국민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노사관계가 긴요하다는 현실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실제 앞으로 다가올 21세기의 정보화•세계화시대에는 근로자의 창의와 열정이 경쟁력의 핵심이고, 이들에게 이러한 창의와 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국가의 주요 기능이 아닐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사관계가 지금까지의 갈등과 대립이라는 구도에서 벗어나 참여와 협력적인 관계로 바뀌어야 한다. 그 동안 우리 노사관계를 주도해온 제도•관행 의식으로는 정보화시대•세계화시대에서의 경쟁에 이겨 나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근래에 들어 일부 사업장을 중심으로 노사 협력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노사관계의 바탕은 여전히 대립과 갈등이라는 굴레를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측면에서 노사 관련법과 제도는 물론 관행과 의식에 이르기까지 노사관계의 기본틀을 새롭게 짜기 위해 관련법을 개편해 보겠다는 정부의 시도는 적절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관계를 참여와 협력, 共同善의 극대화라는 원칙 아래 모색하려고 한 기본 방향도 시대의 흐름으로 보아 불가피하다 하겠다. 이제 노사관계는 노사 모두에게 이익을 주는 관계가 되어야 하며, 노사 어느 쪽에도 일방적인 힘이 쏠리는 것이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노사가 협력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시대이며, 노사 공동의 몫을 추구하는 생산주의적 노사만이 분배의 형평과 생산의 효율을 동시에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개선하고 바꿀 것이냐 할 때 부딪치게 되는 현실의 벽은 너무나 높았다. 이번 노사관계 제도 개선을 위한 노동관계법 개정 과정에서 보여준 노사간의 첨예한 대립은 이러한 현실의 벽이 얼마나 두텁고 단단한가를 확인시켜 주었다. 노동계가 주장하는 제3자 개입금지 폐지, 복수노조 허용에 대한 재계의 반대나 기업측이 주장하는 정리해고제, 代替근로제, 파견근로제, 변형근로시간제 도입에 대한 노동계의 불신은 총파업 선언에 직장 폐쇄와 대체인력의 투입으로 맞서는 상황에 이를 정도였다.
물론 정부가 마련한 새 노동관계법은 법과 제도를 국제기준과 관행에 부합하고 세계화시대에 걸맞게 유연하고 탄력성있게 바꾸기 위한 장치를 도입한 것으로 이해된다. 실제 OECD 가입으로 이제 국제기준에 맞지 않는 제도와 관행을 고집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복수노조 허용, 제3자 개입 허용, 정치활동 허용 등 3禁을 풀어버린 것은 이러한 고려의 산물인 셈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업에 부담을 주고 국제경쟁력 차원에서 불합리한 것들을 일제 정비한 것도 기업의 생존과 국가 경제의 희생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할 수 있다. 변형근로시간제를 포함한 이른바 3가지 제도의 도입이 그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논란이 빚어지고 있는 복수노조와 정리해고제를 보면, 나름대로의 주장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복수노조의 경우 특히 그렇다. 비록 사업장 노조의 경우 2002년부터 허용하고 교섭창구를 단일화하며 노조 전임자의 임금을 5년 후 노조가 부담한다는 조건부이기는 하다. 그리고 복수노조 금지가 근로자의 단결권을 제한해 왔다는 점에서 조건없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노측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된다. 또 바로 이 부분이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노동 후진국의 일원으로 분류되어온 주요 요인이었다는 점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재계의 우려가 아니더라도 복수노조가 기업에 커다란 부담을 줄 것임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복수노조의 허용이 한국적 노사 풍토에서 노조간의 선명성 경쟁으로 勞勞간의 대립을 심화시켜 사실상 정상 경영을 어렵게 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 사업장에 노조가 한두 개도 아니고 4~5개, 심지어 10여 개까지 생길 경우 중소기업은 물론이고 대기업도 대처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인 것이다. 지금 노조가 한 개뿐인데도 집행부의 임금협상이나 단체협상 결과가 반대측에 의해 거부되는 풍토에, 노조가 여러 개 생겼을 경우 그 혼란은 예측하기 힘들 것이라는 재계의 주장은 단순히 엄살만은 아닌 것이다.
정리해고제도 마찬가지이다. 정리해고제의 인정으로 근로자 삶의 핵심인 일터를 잃게 될 가능성이 그만큼 커졌다는 점에서 노측의 반대가 격렬했던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 않아도 불황이라는 이유로 30~40대 직원까지 비록 명예퇴직 형태이기는 하지만 내보내는 판에 정리해고제의 도입으로 해고 바람이 본격화될 가능성은 한층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떻든 이제 노사관계가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노사가 이제 대립과 대결의 관계가 아니라 共存의 파트너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한때 미국병•영국병으로 고전하던 미국 경제, 영국 경제가 노사관계의 개혁으로 회생된 것은 우리에게 또 다른 교훈을 주고 있다. 어느 나라든 합리적•협력적 노사관계가 아니면 생존할 수 없다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노사 관계를 개선해 나간 것이다. 우리라고 예외일 수가 없다. 노사관계가 발전적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노사 양측의 인식 전환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열린 경영도 중요하고 동반자 의식도 중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노사 문제는 노사 스스로가 양보하며 자율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