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옥수수와 나
한 동안 “김영하”는 한국 문학의 어떤 아이콘이었다. 동인문학상을 비롯한 유수 문학상을 휩쓸던 그는 한국 문학계에 등장한 일종의 외계인이었다. 문학 전공자도 아니었고, 흔히 말하는 문예창작과 스타일의 빼곡한 묘사문을 선보였던 것도 아니다. 치고 나가 달리는 문장의 재미, 그렇게 김영하의 소설은 리드미컬하다. 그런 그가 홀연히 한국을 떠났고, 방송으로 에세이로, 신문이나 주간지 칼럼으로 얼굴을 내밀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랬던 김영하가 아주 오랜 만에 한국 문학계에 소설을 발표했고, 그 소설이 또 우연인지 필연인지 권위 있는 문학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바로 ‘이상문학상’이다.
‘이상문학상’ 역시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일 년에 한 권도 소설을 읽지 않는 독자들에게 ‘일 년에 한 번 쯤’이라는 단서와 함께 곧잘 선택하게 되는 책이니 말이다. 일 년에 한 번 쯤이라는 단서에는, 교양이라는 단어에 부합하고 나 자신의 양식을 위한 의례적 선택이라는 의미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여러 권 읽지는 못해도, 적어도, 이상문학상 수상집만 읽어도 뭔가 한 해에 쌓을 교양과 인문을 갖춘 듯한 자기 만족이 느껴지는 것이다.
김영하식
갑을관계의
변주
<옥수수와 나>는 여러 면에서 흥미로운 작품이다. 독자들에게 이 흥미를 전하자면, 첫 째 빼곡한 묘사문 대신 시야가 확 트인 대화가 더 많다는 것을 들고 싶다. 편집자인 전처와 작가인 전남편의 대화로 시작된 이야기는 흥미진진한 축구 게임처럼 흘러간다. 대화는 마치 루니와 박지성이 주고받는 숏패스처럼 짧고 정확하고 빠르게 오간다. 원고를 넘기라는 편집자의 독촉에 작가는 “원고 안 넘기면 두건 씌워서 관타나모로 데려갈 건가”라고 농을 친다. 편집자와 소설가로서의 대화는 어느 순간 전처와 전남편의 애매모호한 대화로 넘어간다. “이 얘기는 안 하려고 했는데”라고 여자가 말을 꺼내면 “안 하려고 했으면 하지마”라고 말을 끊는 식이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옥수수와 나>는 우리가 계약서상 발견하게 되는 갑을관계의 김영하식 변주이다. 계약서만 쓰고 작품을 넘기지 못한 작가는 분명 불리한 을이다. 그렇다면 애인이 생긴 듯한 전처를 보는 남편은 과연 갑일까 을일까? 계약서에만 등장할 용어 같지만 사실 우리의 일상 생활도 이렇게 복잡다단한, 여러 차원의 갑을관계로 이뤄져 있다. 회사에서 을인 남자가 집에서는 갑처럼 행세할 수도 있고, 회사에서나 집안에서나 심지어 지하철 안에서도 을처럼 움츠리고 다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만일 갑과 을이 그리고 인간 대 인간의 관계라면 옥수수와 나는 저항할 만한 물리적 힘도 의지도 갖지 못한 채 공격당하는 식물과도 같은 관계를 의미한다. 가령, 닭 앞에 모이로 놓여진 옥수수에게는 저항할 의미나 인식이 아예 없다. 소설 <옥수수와 나>가 자신을 옥수수라고 여기며 불안해하는 정신병자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설의 그 인물은 자신을 옥수수라 믿어 병원에 입원했다가 병이 완치되어 퇴원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겁에 질려 다시 병원을 찾아온다. “자꾸 닭들이 쫓아와요” 그러자 의사가 말한다. “이제 모든 병이 완치가 되었잖아요. 당신은 옥수수가 아닙니다.” 그때 남자가 얼굴을 구기며 대답한다. “하지만 아직 닭들은 제가 완치된 걸 모르잖아요.”
가벼운 말 장난 같지만 결국 병도, 완치도 모두 관계 속에서 성립된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전처의 닦달에 못이겨 어떻게든 소설을 쓰기 위해 남자는 뉴욕에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꿈에서나마 한 번 볼 법한 대단한 미녀를 만나고 성욕과 창작욕이 불타는 며칠을 보내게 된다. 어쩌면 다 환상일 수도 있고 혹시 모두다 소설 속에나 등장하는 허구일 지도 모른다.
김영하식
단편 미학
<옥수수와 나>에 등장하는 또 다른 이야기는 바로 바람을 피우는 친구들이다. 유부남인 친구들은 각기 자신의 섹스 파트너를 두고 있다. 한 남자는 철학과 출신이고 다른 한 명은 시를 쓰는 친구인데 각기 그럴 듯한 이유로 자신의 불륜을 포장하고 있다. “섹스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섹스를 한다는 관념을 처리한다.”라는 말이 대표적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을 비롯한 주변의 인물들은 소위 386세대라고 불렸던 세대들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정치적 핵심으로 등장한 이들, 사소한 일상의 행위에 조차 정치적 정언 명령을 붙였던 세대들은 이렇게 옥수수처럼 희화화된다. 결국 친구의 전처와 불륜을 저지르면서 친구에게는 그렇지 않은 척 거짓말을 하면서 말이다. 도대체 하는 것과 하는 것을 처리하는 행위 사이의 차별성은 무엇이란 말인가?
대개 문학상 수상 작품집 속에 빼곡히 들어차 있는 단편 소설들은 다 그렇다. 당대의 사회상과 그 사회의 폐부와 상처를 가장 예민한 언어로 끄집어내는 게 바로 단편 소설의 미학인 셈이다. 김영하의 소설 외에도 한국 소설에 새롭게 이름을 등재한 최제훈이나 조현의 글을 읽어 볼 것도 권한다. 권위있는 심사위원들의 심사평도 공부할 기회가 되고 김경욱, 함정임처럼 꽤 낯익은 작가의 최근 작품도 볼 수 있다. 그래도 제일 재미있는 것은 역시 김영하의 <옥수수와 나>이고 그 다음은 “글만 안 쓰면 참 좋은 직업”이라며 작가라는 직업을 냉소하는 작가의 수상 소감이다. 재밌는 개그 프로그램이나 긴장감 넘치는 스포츠 게임이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영화나 공통점은 바로 하나이다. 독자와 관객의 계산 범위를 넘어 치고 빠지는 리듬의 계산, 그렇게 허를 찌르는 고급한 유머가 곧 김영하의 특징이자 개성이다. 오랜 만에 그 개성을 맛 보았으면 싶다.
강유정 / 문학평론가. 독한 농담같은 허구에 관심이 있으며 늦은 밤 홀로 보는 영화를 즐기는 작가이다.
3월의
신작
books
통섭의 식탁
책 읽기를 즐기며, 책 쓰기를 게을리하지 아니하고, 책 모으기에 열심인 우리 시대의 지식인 최재천 교수. 그가 <과학자의 서재>에서 못다 한 ‘책’ 이야기를 모아서 <통섭의 식탁>에 푸짐하게 차려냈다. 21세기 통섭형 인재가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와 지식을 아우르는 기획 독서가 필요하다. 그는 이 책에서 멋진 지식의 만찬을 준비하여 우리에게 자연과학, 인문, 사회 분야를 아우르는 56권의 다양한 책 요리를 선사한다. 이 책은 최재천 교수가 선별한 다양한 분야의 책 읽기를 코스 요리에 빗대어 소개한다. 애피타이저에서 디저트, 퓨전 요리까지, 가벼운 책에서 다소 묵직한 책까지 독자들이 체하지 않고 잘 읽고 소화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어렵고 딱딱한 자연과학이나 인문학 분야의 책들도 최재천 교수의 특제 이야기 소스와 버무려지면서 맛깔나는 책 요리로 변신했다. 또한 요리마다 함께 맛보면 좋은 책들도 소개하고 있어서 지식의 통섭과 확장을 가능하게 했다. 독자들은 책을 통한 최 교수의 통섭적 사고와 인간과 자연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도 엿볼 수 있으며, 이 책에 소개된 책들을 재료로 삼아 자신만의 지적 요리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명진출판 / 최재천
그림동화 라니
문예창작과 교수로 다양한 글쓰기를 해온 박덕규 교수가 아프리카 케냐를 여행하면서 초원에서 살아가는 동물을 직접 보고, 상상한 이야기를 어린이 그림동화책 <라니>로 묶어냈다. 얼룩말, 기린, 코뿔소, 코끼리뿐 아니라 누, 임팔라, 톰슨가젤 또 이러한 초식동물들을 잡아먹고 사는 사자, 표범, 치타, 하이에나와 같은 육식동물까지 아프리카에서 살고 있는 다양한 동물을 <라니>를 통해 만날 수 있다. 습기가 있는 초원에서 사는 누는 건조한 시기가 오면 풀을 찾아 1,600km가 넘는 긴 거리를 떼를 지어 이동한다. 이러한 대이동 중에 낙오하여 죽는 누의 수는 엄청날 정도. 그들은 지치거나 다치거나 육식동물의 먹이가 되어 죽음을 맞이한다. 이 길고 험난한 여정 속에서 낙오된 어린 누 ‘라니’가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 것이 바로 그림동화 <라니>다. 위험한 상황에서도 가족들과 친구들을 도와주며 지켜내는 라니. 라니의 모습을 통해 우리 어린이들이 타인을 배려하고 자신감 있는 미래 주인공으로 성장하길 기대해 볼 만 하다. 더불어 라니의 여정을 섬세하게 묘사한 이기훈 작가의 그림은 어린이 독자들을 아프리카 대자연으로 데려다 줄 것이다.
리젬 / 박덕규·이기훈
classic
요요마 & 실크로드 앙상블
세계적인 첼리스트 요요 마(Yo-Yo MA)가 실크로드 앙상블과 함께 2년 만에 다시 내한한다. 2012년 3월 1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개최되는 이번 공연에서는 산은 멀고(Mountais are far away), 미도산 민요 모음(Folk Song from Mido Mountain), 타란타 프로젝트(Taranta Project), 북 오브 엔젤스 모음곡(Suite from Book of Angels) 등 민족음악과 창작음악을 연주한다. 요요마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몽골, 이란, 인도, 터키, 우즈베키스탄 등 옛 실크로드 지역에 위치한 국가의 음악가들을 모아 1998년 ‘실크로드 앙상블’을 구성하였고, 서양의 클래식과 팝, 동양의 민속음악을 접목시키는 새로운 시도를 하며 음악을 통한 동서 교류에 앞장서 왔다. 음악을 통해 전 세계의 연주자와 관객이 화합하고 소통하며 이웃이 되는 것이 그들의 목표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는 한국 작곡가 김대성이 경주의 한 여인 조각상에서 감명을 받아 완성한 곡 ‘돌에 새겨진 사랑’과 요요마와 케이한 캘로에게 헌정 된 카시다(Kasida), 실크로드 앙상블이 편곡하고, 아방가르드 미국 작곡가인 존 존에 의해 작곡된 ‘북 오브 엔젤스(Book of Angels)’ 모음곡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3월 12일
문의 : 1577-5266
play
리턴 투 햄릿
세계 최초로 연간 라인업을 갖추고 연극 대중화의 가능성을 열며 매 시즌 문화계의 핫 이슈로 떠오른 <연극열전>이 네 번째 시리즈로 장진 작·연출의 <리턴 투 햄릿, Return to Hamlet>을 확정하고 화려한 막을 올렸다. 2004 <연극열전>의 프로그래머이자 관객 점유율 100%를 기록한 <택시드리벌> 작·연출, 2008 <연극열전2> 전회, 전석 매진의 <서툰 사람들>의 작·연출로 활약하며 놀라운 흥행 신화를 써 온 장진의 <리턴 투 햄릿>은 연극 ‘햄릿’의 마지막 공연을 앞둔 배우들의 무대에 대한 꿈과 열정, 갈등을 그리며 누구나 한번쯤 상상해보는 무대 뒤 배우들의 삶을 통해 우리 모두의 삶을 이야기하며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연출 스스로 ‘흥행 밀도가 굉장히 높은 작품’이라 말할 만큼 코미디적 요소가 가득 담긴 연극으로 평범한 이야기에, 훅치고 들어오는 장진식 웃음이 가득 담긴 재기 발랄한 대본과 언제 튈지 모르는 코믹한 상황 속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의 향연이 빛난다. 역사상 가장 재미있는 ‘햄릿’으로 대학로를 발칵 뒤집을 장진의 <리턴 투 햄릿, Return to Hamlet>으로 눈물 나게 웃어보자.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4월 8일까지
장진 작·연출 / 02-766-6007
festival
영덕대게축제
풍성한 먹을거리와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오감만족 ‘제15회 영덕대게축제’가 3월 8일부터 12일까지 5일간 삼사해상공원과 강구항, 대게원조마을 일원에서 열린다. 영덕대게축제는 동해안의 대표명품 지역축제다. 영덕대게는 2010년 ‘천년의 맛! 세계의 자랑’!으로 G20세계정상회의 만찬 식탁에 올랐으며 2011년 농업진흥청 151개 시군인지도 조사결과 특산물 부분에서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영덕군은 이번 대게축제의 주제를 ‘영덕대게이야기’로 선정하고 영덕대게의 일생과 역사, 동해안 어부들의 삶과 애환을 느낄 수 있는 전시공연, 황금영덕대게 낚시, 영덕박달대게 깜짝경매, 영덕대게손질의 달인선발, 영덕대게잡이 그물 손질하기 등 다양한 체험행사도 연다. 더불어 영덕풍력발전단지와 해맞이공원, 대게원조마을, 죽도산, 동해 일출을 바라보는 영덕블루로드 도보여행도 함께 개최한다. 이 밖에도 영덕대게라면과 대게수제비, 대게비빔밥, 대게파전 등 대게로 만든 맛있는 음식을 푸짐하고 저렴하게 맛볼 수 있다.
2012년 3월 8일부터 12일까지 5일간
영덕군 일원(주행사:삼사해상공원)
053-730-66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