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표 속 세상의 영토를 넓히다
우표디자이너 모지원
2000년 4월 20일 발행한 <사랑나누기특별>우표를 통해 처음 이름을 알린 모지원 디자이너는 현재 우체국디자인Lab을 이끌고 있다. 오랜 시간 우표디자인실로 이어온 대한민국 우표디자인의 산실을 지금은 우체국디자인Lab이라 부른다. 모지원 디자이너는 어린 시절부터 우표를 좋아해 취미우표통신판매 회원에 가입하고, 우표디자이너에게 편지를 써 어떻게 하면 우표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지 물었을 정도로 우표와 디자인을 사랑했다. 그녀에게 우표디자이너의 기회는 운명처럼 다가왔다. 대학 4학년 때 우표디자이너 모집공고가 학교에 붙었고, 과 선후배 동기들은 지원을 포기하며 그녀를 지지했다. 결국, 그녀는 합격으로 보답했다. 누구나 슬럼프를 겪듯 우표디자이너에게도 슬럼프는 찾아온다. 모지원 디자이너는 슬럼프를 일을 통해 극복한다. “저희에겐 우표가 일이니까 슬럼프가 오면 우표에 오롯이 빠져들어요. 세계 천문의 해 기념우표를 디자인하고 있었을 때였죠. 한참 동안 끝이 어딘지도 알 수 없는 광활한 우주를 보고 있노라니 이 우주를 작은 우표에 담고 있는 제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내 작은 일이 절대 작지 않구나. 우표 속에 세계를 만드는 일이구나!’ 생각하면서 슬럼프를 빠져나올 수 있었어요.” 모지원 우표디자이너는 좋은 우표를 만들고 싶다. “우표가 작다고 디자인도 작은 건 아니에요. 오히려 작은 물리적 공간에 담아야 할 요소는 너무나 많아요. 기념하는 가치, 의미, 메시지, 환경, 상징 등 어느 하나 그냥 버릴 수 없는 요소들이죠. 이 모든 요소가 빠짐없이 우표에 담긴다고 봐요. 그래서 자세히 오래 보면 우표의 무한한 세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모지원 디자이너와 동시대를 살며 그녀가 만들어가는 새로운 우표 속 세상을 앞으로도 만날 수 있기에 우리는 또 다른 의미의 행복한 시대를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있는 그대로 가장 좋은 모습만 담아
우표디자이너 김창환
2003년부터 우표디자인에 사진작가로 이름을 처음 알렸지만, 김창환 우표디자이너가 우표디자인실의 문을 연 해는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5년이다. 지난 20년간 우표 속 수많은 사진을 찍어온 포토그래퍼이자 우표디자이너로서 우체국디자인Lab을 지켜왔다.
역사나 실존하는 상징을 표현하는 우표는 사실을 정확히 묘사해야 하기 때문에 사진작업이 필수다. 김창환 디자이너에게 지금까지 찍은 사진 수는 무의미했다. 지금의 일이 가장 중요하고 당장 잘해내는 것이 우선할 가치라고 말했다. 워낙 털털한 성격과 긍정 에너지로 만나는 사람을 무장해제 시키는 매력이 있지만, 일에서 만큼은 누구보다 깐깐한 프로였다. 예전에는 지금처럼 디지털카메라가 아니어서 필름을 현상해 사진을 확인했다. 출장을 다녀온 그는 사진을 바로 현상하지는 않았다. 출장지에서 사진을 찍을 때의 감정이 사진을 고르는데 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촬영 당시 감정을 배제하고 오로지 좋은 사진을 고르기 위한 선택이었다. “촬영 할 때 고생했다고 꼭 좋은 사진이 나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고생했던 사진에 애착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으니까, 그런 감정이 어느 정도 빠질 때까지 기다리는 거죠.” 김창환 디자이너는 우표가 사랑받길 바란다. 그래서 오늘도 더 사랑받는 우표를 만들기 위해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그의 손가락은 최고의 순간을 찾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우표, 예술을 말하다
우표디자이너 김소정
김소정 디자이너는 1998년 5월 30일 발행한 <국회개원 50주년> 기념우표를 통해 처음 이름을 알렸다. 대한민국에서 우표디자이너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다. 결원이 생길 때에만 기회가 오기 때문이다. 김소정 디자이너는 그녀에게 돌아온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나의 디자인을 세계로 알릴 수 있는 매력적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그렇게 잡은 우표디자이너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녀는 첫 우표디자인 작업을 소중하게 기억한다. “사실 국회 옥상에 올라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김창환 선배와 국회의사당 사진을 찍기 위해 어두운 밤 국회 옥상에 올랐고, 한 장의 우표를 위해 국회의사당의 불을 밝혔던 경험은 첫 번째 우표작업으로는 강렬했던 것 같아요.”
김소정 디자이너는 우표디자인이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을 만드는 일이고 남다른 소재를 다루면서 전하고자 하는 바를 살려야 하는 특수성이 있어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어렵지만 가치 있는 우표디자이너로서의 삶을 사랑한다. 그녀는 여전히 우표가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관심이 예전 같지 않다는 점에서 부담과 책임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어젠가 교수님과 우표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교수님께서 ‘우표가 기능을 잃으면 예술이 된다.’고 한말이 기억에 남아요. 결국 우표디자이너는 우표의 예술적 가치를 생각하고 콘텐츠로 사랑 받는 우표를 계속해서 만들어 내야 한다는 책임감을 더욱 깊이 느끼게 했던 말이었어요.” 오늘도 우표가 우표로서 가치를 잃지 않기 위해 보다 큰 사명감으로 예술적 가치를 더하는 그녀의 손길이 우표에 묻어난다.
아름다운 우표만 만들고 싶어요
우표디자이너 박은경
박은경 디자이너가 처음 디자인한 우표는 1997년 5월 10일 발행한 <제2회 부산동아시아 경기대회> 기념우표다. 당시 30년간 우표디자인실에 몸담아 온 전희한 디자이너가 공직에서 물러나며 입사한 박은경 디자이너는 입사 6개월 만에 첫 우표를 냈다. 보통은 1년은 지난 후에 나온다고.
”우표디자이너로서의 삶이 다른 일반적인 디자이너보다 물질적인 안정을 보장하는 건 아니겠죠. 대신 우표디자인에는 큰 사명감이 있어요. 부담스럽지는 않지만, 또 다른 의미로 힘든 일이긴 합니다.(웃음)” 우표디자인은 국가를 대표하는 우표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에 그 안에 담기는 모든 내용에 대한 고증과 검증 과정이 까다롭다. 그 과정은 분명 쉽지 않고 실수에 대한 부담감도 늘 따른다. 모든 기록과 디자인 재료가 준비된 후 디자인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조사와 분석부터 고증과 검증까지 디자인을 시작하기 전의 모든 단계가 우표디자인의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소한 실수에 대한 책임도 우표디자이너의 몫으로 돌아온다. 그런 책임감을 가졌기에 지금까지 실수 없이 대한민국 우표를 세상에 내놓고 있다. 박은경 디자이너에게 기억에 남는 우표는 2004년 10월 18일 발행한 한국의 명산 특별(한라산)우표다. 그녀는 이 우표디자인을 위해 김창환 디자이너와 함께 한라산 백록담까지 올랐다. 좋은 구도를 잡으려고 백록담을 돌고 있던 중 반대편 등산객들이 손을 흔드는 것을 보고 열심히 손을 흔들어 답했는데, 나중에 하산 길에 만난 등산객이 ‘한걸음만 더 뒤로 가면 낭떠러지라 큰일 날 뻔 했다’고 해준 말을 듣고 식은땀을 흘렸다고. 끝으로 아름다운 우표만 만들어 우표가 꾸준히 국민의 사랑을 받기 바란다는 맘을 전했다.
우표 한 장 붙일 수 있는 여유 찾기를
우표디자이너 신재용
신재용 디자이너는 2003년 우표디자인을 시작해 2005년 2월 23일 발행한 <국제로타리창립 100주년> 기념우표를 통해 처음으로 이름을 알렸다. 지금은 대부분 컴퓨터로 디자인 작업을 하지만 당시만 해도 직접 원화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첫 번째 우표도 수채화 작업으로 원화를 그리고 우표를 디자인했다. 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신재용 디자이너는 본인의 이러한 전공을 모두 만족시키는 직업이 우표디자이너라고 말했다. 우표의 소재가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주제를 표현하기 위한 여러 가지 기법이 필요하고 본인의 한국화 전공이 꼭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신재용 디자이너는 기억에 남는 우표로 <한국-독일 수교 130주년> 기념우표를 뽑았다. 보통 이와 같은 수교 기념우표는 두 국가에서 동시 발행하기 때문에 디자인을 어느 국가에서 할 것 인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묘한 경쟁 기류가 생긴다. 보통 선진국에서는 직접 디자인을 하겠다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이 경우 두 국가가 디자인을 내 놓고 좋은 디자인을 선택하거나 각 나라의 디자인만을 취하는데 <한국-독일 수교 130주년> 기념우표도 독일에서 직접 디자인을 하겠다고 나섰다. 이런 경우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 결국 독일에서 신재용 디자이너의 작품을 선택해 최종 발행했다. “경쟁에서 이겼다는 기쁨 같은 건 없습니다. 단지 알아주는 사람이 없더라도 나의 디자인이 독일에서 우표로 발행됐다는데 의미가 큰 것이죠.” 우표에 대한 신재용 디자이너의 생각은 명료했다. 다시 한 번 우표의 르네상스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모두의 마음에, 편지에 우표 한 장 붙일 수 있는 여유가 생길 수 있기를 바란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여유를 심어 가는 일. 이 또한 아름다운 르네상스가 아닐까.
우표, 더 큰 사랑 받기를
디자이너 손유진
손유진 디자이너는 우체국디자인Lab에 갓 들어온 새내기 디자이너다.
“우표를 디자인 한다는 사실 만으로 큰 자부심을 느낄 자격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직 우표를 디자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표에 관심 갖고 지켜보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우표가 잊히지 않고 더 큰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라고 말하며 우표처럼 사람의 마음에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진실한 사람으로 우표와 함께 하겠다는 의지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