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으로 승부하는 의령조청
음식에 단맛을 내는데는 설탕이 으뜸이다. 그렇다면 설탕이 없는 옛날에는 무엇으로 단맛을 냈을까? 열대지방에서 나는 설탕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고려시대였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설탕은 너무 귀한 물건이어서 일반 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단맛을 내는 식품으로 자연이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이 벌꿀이었다. 그런데 벌꿀 역시 서민들이 친근감을 느끼기에는 너무 비싼 물건이었다.
이러한 설탕이나 꿀 대용품으로 우리 조상들이 개발해 놓은 것이 조청이다. 물엿이라 불리기도 하는 조청은 떡이나 과자 등의 음식물에 단맛을 내게 하는 감미료로서 오랫동안 애용되어 왔다.
수의사에서 엿기름 장수로 전업
만나식품 대표 최성대씨(44세)가 조청사업에 뛰어든 것은 어떻게 보면 운명적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원래 수의사였다. 서울에서 신구전문대 축산학과를 졸업하고 나서 맨 처음 얻은 직장이 삼성에서 운영하는 용인자연농원 그 곳에서 산돼지 사육사로 2년쯤 근무하고 나자 월급은 좋지만 상당히 고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로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면 차라리 고향으로 내려가 고향을 지키며 직장 생활을 하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따라서 남들은 고향을 버리고 서울로 올라가는 시절에 그는 서울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고향인 의령으로 내려가 두번째로 얻은 직장이 축협, 가축의 인공수정이 그의 담당 업무였다. 그 무렵 시골에서는 가축의 인공수정이 붐을 일으키고 있어 돈도 짭짤하게 벌 수 있었다.
축협 생활 2년만에 그는 수의사로 독립했다. 그리고 수의사 생활을 하는 동안 여유가 생기는 대로 의령의 명산인 자굴산 자락에 있는 논밭 5천여평을 샀다. 노후생활 대책으로 목장을 만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동네 입구에 목장이 생기면 마을이 지저분해진다며 마을 사람들이 목장 건립을 반대했다. 그때 마침 그가 사 놓은 땅 옆에서는 주민 전홍수씨가 전통식품인 엿기름을 생산하고 있었는데, 전씨는 혼자 하기 심심하다며 그에게 엿 기름 장수를 같이 하자고 권했다. 땅을 놀릴 수 없어 고민하던 참인지라 솔깃하게 들렸다 그는 깊은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빈 땅에 건물을 짓고 엿기름 생산을 시작했다. 옆집에서 생산하고 있고, 판로도 확보된 셈이어서 깊이 따질 필요가 없었다. 물론 수의사 생활은 그대로 하고 있었다.
만나식품에서 생산하는 엿기름은 한 달에 1천 가마니 정도, 이웃에 동종 업자가 한 집 더 늘어 세 집에서 생산하고 있는 것이 3,000가마니 가까이 되는데, 이는 전국 생산량의 10분의 1이나 되는 많은 양이다. 그 전까지는 서울 경동시장에서 김천 엿기름을 제일로 쳤는데, 의령 엿기름이 공급되면서 인기 순위가 바뀌고 있다고 한다. 의령산이 급부상하고 있는 이유는 엿기름의 원료인 겉보리의 주산지가 경남지역이므로 질 좋은 원료를 쉽게 구입할 수 있고 수질이 좋기 때문이라 한다.
덕분에 만나식품의 엿기름은 꾸준히 팔렸다. 4년쯤 지나자 캔음료로 개발된 식혜가 인기를 끌면서 엿기름 시장이 넓어졌으나. 그대신 신식혜 생산업체가 엿기름을 직접 생산하기 때문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윽고 식혜를 본딴 대추 · 토마토 등 대체 음료가 개발되면서 식혜 판매가 줄어들었고, 따라서 엿기름 시장도 위축되었다.
그 무렵 만나식품은 여의도에서 열린 전국 농수산물식품박람회에 출품했는데, 다른 업체의 출품작을 둘러보는 동안 하나의 아이디어가 반짝 떠올랐다. 엿기름만 생산할 게 아니라 엿기름을 원료로 하는 조청을 만들어 같이 팔자는 생각이었다 같이 출품된 창평 조청과 쌀엿을 보는 동안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조청사업을 시작하기로 해놓고 보니 제조 시설을 갖추는 것이 큰 일이었다. 재래식으로 솥을 걸어 놓고 불을 때가며 소량으로 생산 하는 방식으로는 우편주문판매의 수요에 부응하기 어렵기 때문에 시설을 현대화할 필요성을 느꼈다. 견학차 창평쌀엿을 만드는 호정 식품을 찾아갔더니 거기에서는 재래식으로 생산하고 있었다. 따라서 생산 과정이나 맛은 전통적이어야 하지만, 시설은 현대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한국식품개발연구원에 조청 제조시설을 해줄 업체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현대적인 시설을 갖추고 조청을 만들어 보니 기대한 만큼의 양이 나오지 않는데다 맛도 제 맛이 아니었다. 조청 제조 과정에서 핵심적인 요소가 되는 것은 온도 관리인데, 그 기능이 자동화되지 않았다. 때문에 온도계를 꽂아 놓고 밤을 새워가며 지켜 보아야만 했다. 그렇게 1년 동안 고생을 하다 나중에는 도리없이 시설을 교체해야만 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최성대씨 혼자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워 군청에 다니는 부인이 사표를 내고 조청사업에 동참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만나 식품의 식품사업은 안주인인 김현의씨가 주도해 나갔다.
조청에 이어 한과까지 손대
조청을 만드는 원료는 쌀 · 현미 · 호박 · 수수 · 조 따위의 곡식과 엿기름이다. 찹쌀로 만든 것을 찹쌀조청, 호박으로 만든 것을 호박 조청, 조 · 수수 · 현미 · 율무 · 보리쌀을 섞어 만든 것을 오곡조청이라 한다. 또 조청을 만드는데 필수적인 엿기름은 겉보리를 물에 담가 발아시킨 것이므로 결국 원료는 겉보리인 셈이다.
조청을 만드는 과정은 상당히 복잡하다. 쌀이나 수수 · 조 등으로 고두밥을 짓고 거기에 엿기름물을 부어 일정한 온도하에 당화시킨 후 그 국물을 짜내 일정한 시간 다리면 걸죽한 액체가 되는데, 그것을 수분율 18% 정도로 만든 것이 조청이다. 그리고 그 조청을 더 달여 식힌 것이 엿이다. 따라서 당화를 하는 과정에서 일정한 온도를 일정한 시간 동안 유지시키는 것이 맛있는 조청을 만드는 비법이라 하는데, 보통 60〜65℃에서 8〜10시간을 유지시켜야 한다고 한다.
만나식품은 그렇게 해서 만든 조청을 선물 세트로 포장해 경남 일대의 농협이나 고속도로 휴게소, 수퍼마켓, 백화점에 내다 팔았다. 그러나 식품박람회나 백화점의 토산품 세일 기간 등 행사 기간에만 팔릴 뿐 평상시에는 잘 팔리지 않았다. 1년치의 판매물량이 고작 2개월 동안의 생산량에 불과했다. 시중에서 팔고 있는 물엿에 비해 5배나 비쌌으므로 어떻게 보면 당연한 귀결이라 할 것이다.
‘물엿’은 원래 조청과 같은 의미로 쓰였는데,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물엿은 수입 옥수수로부터 전분을 분리하여 화학적으로 당화시킨 것이므로 값이 싸고 그 맛 역시 조청과는 비교가 안된다. 그러나 아무리 맛에 차이가 있다 해도 용도는 비슷하므로 값이 비싼 조청은 물엿과는 경쟁하기 어려운 것이다.
재고도 처분하고 사업도 다각화할 겸 해서 이번에는 조청을 많이 쓰는 한과사업을 시작 했다. 그런데 한과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현대적인 시설과 재래식 제조 방법이 서로 잘 맞지 않았던 것이다. 우편주문판매로 해남한과를 공급하고 있는 송화병과를 찾아 가자 주인 류순자씨가 “기왕에 하고 있는 사람도 그만두고 싶은데, 이 힘든 것을 무엇 때문에 할려고 하느냐?” 면서도 제조 기술은 친절히 알려 주었다.
5〜6개월에 걸친 시행착오 끝에 한과 다운 한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맛을 본 사람들이 “여태까지 나온 한과와는 맛이 다르다”고 하는 말이 큰 위안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다른 집에서는 물엿으로 한과를 만드는데, 만나 식품에서는 자기 집에서 생산한 조청으로 만들고 있으니 맛이 다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저는 생산원가를 따지지 않아요
만나식품이 우편주문판매를 시작한 것은 1995년, 처음에는 조청과 엿기름을 농협 마크를 붙여 농협을 통해 팔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농협에서 직접 생산하지 않는 상품은 농협에서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이 만들어졌다. 농민을 위한 농협인지 농협을 위한 농협인지를 알 수 없는 이 규정 때문에 농협을 통한 판매가 중단되었다.
농협을 통한 판로가 막혔을 때 그것을 뚫어준 것이 우편주문판매였다. 우편주문판매의 길을 열어놓자 의령 조청과 쌀엿 · 엿기름 그리고 한과가 불티나게 팔렸다. 첫해의 판매고는 1,200만원에 불과했으나 둘째해인 1996년에는 1억 6천만원으로 훌쩍 뛰어올랐고 이듬해인 1997년에는 2억 6천만원으로 치솟았다. 우편주문판매를 시작한지 3년이 채 못되어 판매고 상위 랭킹 30위 권으로 치솟았던 것이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만나식품의 실질적인 주인인 김현의씨는 그 이유를 맛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만큼 품질 관리를 철저히 하기 때문이다. 만나식품의 엿기름이나 조청을 먹다가 다른 회사 제품은 못먹는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고 한다. 만나식품 조청으로 만든 멸치볶음이나 오징어볶음을 도시락 반찬으로 가져 가면 금세 동이 난다고 한다.
“저는 생산 원가를 따지지 않습니다. 생산 원가를 따지면 원료부터 싸구려를 써야 하기 때문에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죠.”
최성대 사장의 말이다.
그러한 최성대씨를 부인 김현의씨는 “돈을 벌려는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고 못박았다. 실제로 거래처 사람들이 찾아와 “이 좋은 제품을 가지고 왜 장사를 못하느냐. 우리가 팔아줄 테니 적당히 만들어 달라”고 해도 그는 거절한다. 얼마 안가서 들통날 일을 무엇 때문에 하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의 소유자인지라 우편주문판매 이용자로부터 민원이 제기되면 즉각 해결해 준다. 민원이 제기되면 확인 과정을 거쳐 변상해 주는 것이 관례이다시피 한데, 그는 전화가 걸려 오면 즉시 교환품을 보내 준다. 즉, 우체국장이 우체국에 보관해 두고 있는 상품으로 교환해 주도록 하고 있다. 원가를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제가 머리를 굴려 돈을 벌려고 했으면 지금처럼 발전하지 못했을 겁니다. 경상남도에 전통식품업체가 200여개 되는데 그 중에서 연중 정상적으로 가동하는 업체는 20〜30개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제대로 운영이 안돼 계절성 작업을 하고 있죠.
우리 같은 전통식품업체가 꾸준히 살아 남으려면 소비자가 다시 찾게끔 품질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결국 맛으로 승부를 해야 합니다. 그 길밖에는 없어요.”
그러한 자세로 품질 관리를 철저히 한결과 만나식품은 1993년 전통식품업체로 지정을 받았고, 다시 농수산부장관이 우수한 전통 식품에 그 품질을 인증해 준다는 표시로 수여하고 있는 물레방아 마크의 전통식품 품질 인증서를 따냈다. 1994년 엿기름을 시작으로 하여 1996년까지 쌀엿 · 조청 · 한과 등 네개 분야에서 차례로 따냈다. 또 경남지사로부터는 네개 분야에서 QC 마크도 따냈다.
조청은 설탕 대용의 훌륭한 감미료
엿기름류는 소화를 돕는 식품이다. 엿기름에는 녹말을 당분으로 바꾸는 효소가 많이 들어 있어 당분이 많은 음식물의 소화를 촉진시킨다. 중국의 의약서인 중국약학대전(中國藥學大典)은 “엿기름은 위를 튼튼히 하고 소화를 돕는 효능이 있는 약물로서 당질 식품의 소화를 잘 시키고 각종 소화불량의 증상에 사용한다. 엿기름에 함유된 소화 효소와 비타민B는 소화액의 분비를 촉진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때문에 만성 위염이나 소화기궤양, 위하수 등의 질환을 치료하는 작용도 한다고 한다.
엿기름으로 만드는 조청도 소화를 촉진하는 효소를 지니고 있다. 조청은 곡물에서 추출한 순수한 맥아당이므로 음식물의 소화를 돕고 오장육부를 튼튼히 한다. 또한 조청은 저혈당 체질에 자주 나타나는 증상인 빈혈이나 정신분열, 간질 등에 효과가 있다. 당뇨병 환자는 저혈당이 되기 쉬우므로 조청을 상용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구수할 뿐 설탕처럼 그렇게 달지 않은 조청이 지니고 있는 또 하나의 특성은 쉽게 굳어 지지 않는 점성(特性)에 있다. 시중에서 팔고 있는 물엿이 쉽게 굳어지는데 비해 조청은 점성이 강해 쉽게 굳어지지 않으며, 또 쉽게 상하지도 않는다. 때문에 전에는 주로 한과를 만들거나 떡을 먹을 때 단맛을 내는 감미료로 쓰였으나, 한과나 떡과 멀어져 가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 생활에서 조청은 멸치볶음이나 야채 절임에 설탕 대신 쓰이고 있다. 당뇨병 이나 고혈압 등 각종 성인병이나 비만증에 시달리고 있어 주방에서 설탕을 추방하자는 주장까지 하고 있는 현대인에게 조청은 설탕 대신 권장할 만한 감미료라 할 수 있겠다.
“화학적인 공정을 거친 설탕과는 달리 조청은 엿기름으로 당화시킨 거니까 자연식품과 다를 바 없어요. 때문에 비만증이다 당뇨다 해서 가급적 설탕을 피하려는 현대인들에게 조청은 설탕 대용으로 쓸 수 있는 훌륭한 감미료 내지 조미료라 할 수 있죠.”
경상대 식품공학과 허종화 교수의 말이다. 또한 그는 인스턴트 식품에서 자연식품으로의 회귀를 강조하는 오늘날의 식생활 양상으로 볼 때 자연식품 위주로 되어 있는 전통식품의 현대화가 우리에게 주어진 시급한 과제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한국전통식품협회 경남지회장을 맡고 있는 만나식품 대표 최성대씨는 이러한 포부를 밝혔다.
“앞으로도 돈을 번다기보다 전통의 맛을 살리는 일에 힘쓰겠습니다. 사업을 더 늘릴 생각도 없습니다. 그 동안 우리가 너무 과소비를 했는데, 이제는 거품을 뺄 때 아닙니까. 이제 전통식품업체들이 전통의 맛을 살려 싼 값으로 보급함으로써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