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동업을 해야하는 인제 황태
설악산 가는 길은 그 날도 눈이 내리고 있었다. 설악산에 폭설이 내리고 있다는 뉴스를 이틀 전부터 들었고, 그 날도 전국에 눈이 내릴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접하고 있었 지만 예정된 출장길이라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목적지인 백담사 입구까지 차가 가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을 안은 채.
다행히도 하늘만 잔뜩 찌푸릴 뿐 홍천까지는 눈발이 비치지 않았다. 인제군의 초입인 신남까지도 멀쩡했다. 그런데 소양강을 지나 인제읍으로 향하는 고갯길로 접어들자 갑자기 시야가 흐려지더니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고, 고개를 넘자 하얀 눈꽃송이로 변했다.
인제읍내는 온통 눈의 세상이었다. 고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세상은 그렇게 달랐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 물론 눈길의 어려움을 빗댄 말은 아니지만, 은근히 빙판길이 두려워진다.
인제우체국에 도착하자 뜻밖의 사람이 기 다리고 있었다. 설악산구조대장이라는 묵직한 전력을 지닌 임용길씨가 듬직한 체구로 나를 맞았다. 그가 원통우체국에 근무할 때 취재차 만나 사귀어온 15년 벗이다. 더구나 그는 코란도라는 튼튼한 지프차를 끌고와 빙판의 산길 운행에 알레르기성 두려움증을 갖고 있는 서울촌놈을 안심시켰다.
지프를 몰고 인제에서 진부령으로 향하는 눈 속의 드라이브는 환상 속의 여행이었다. 주변의 산과 들은 이미 내린 눈으로 하얗게 덮여 있는데, 희뿌연 하늘에서는 하얀 눈가루가 쉴새없이 뿌려지고 있었다. 왕복 2차선인 도로 곳곳에는 때늦게 체인을 감고 있는 차가 있는가 하면, 더 이상의 전진을 포기하고 버려둔 차도 있었으나. 전직 설악산구조대장이 모는 차는 눈길을 가르며 쉼없이 달렸다. 길은 생각보다 평탄했다. 든든한 운전기사 덕분인지 빙판길에 대한 두려움이 가신 것도 벌써 오래였다. 쏟아지는 눈으로 하여 시야가 좁아진, 하얀 세상을 뚫고 나가자니 마치 동화 속의 세계로 잠입하는 기분이었다. 그 속에서는 인간이 지니고 있는 어떤 욕심, 취재라는 이름의 남의 집 엿보기도 부질없는 것으로만 느껴졌다.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우편주문판매로 인제 황태를 공급하고 있는 북설악영농조 합법인이 자리잡은 그 지역은 바로 진부령 중턱에 놓여 있었다. 백담사 입구를 지나 진 부령과 미시령이 갈라지는 지점으로 가는 도중에 있었다.
설악산 북서쪽 자락에 자리잡은 그곳은 눈의 고장이다 걸핏 하면 눈이 내린다.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계속 내린다. 이삼일 동안 내리는 것은 보통이고 많을 때는 일 주일도 내린다. 그렇게 눈이 내릴 때는 처마까지 쌓이고 심하면 초가집을 덮는다. 그럴 때 옆집을 가거나 관사에서 우체국으로 가려면 눈 속에 터널을 뚫어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
바닷가에서 말리면 북어, 덕장에서 말리면 황태
명태는 예로부터 우리 민족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온 물고기로서 관혼상제에는 빠뜨릴 수 없는 것이었다. 비린내가 안나 제사상에도 올랐던이 생선에 명태라는 이름이 붙여진 데는 그럴듯한 전설이 있다.
조선시대에 함경도관찰사로 부임한 민 모씨가 조도순시차 함북 명천군에 들렀는데, 태 씨 성을 가진 어부가 잡은 이상한 물고기를 그에게 바쳤다. 맛있게 먹고 나서 그 물고기의 이름을 묻자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어부 자신도 몰랐다. 그러자 관찰사는 명천(明川)에 사는 태(太)서방이 잡았으므로 명태(明太)라 하자고 해서 그러한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이름이 없는 생선은 못먹는 것으로 생각해 명태를 먹지 않았는데, 그처럼 이름을 붙여 먹게 되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그 시기를 고려시대라 하기도 하고, 또 관찰사가 아닌 왕에게 진상했다고 하는데, 동국여지승람에 명태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 초기인듯 싶다.
명태는 가공 형태에 따라 그 이름이 달라 진다. 바다에서 갓 잡아온 것은 생태 또는 물 태라 하며, 그러한 명태를 꽁꽁 얼린 것을 동태라 한다. 또한 바닷가에 걸어놓고 해풍에 말린 것을 북어 또는 건태라 하며, 고랭지에 있는 덕장으로 옮겨 누렇게 말린 것을 황태라 한다. 북어의 경우 해풍에 말리므로 한 달이면 되지만 황태는 3〜4개월 이상 얼었다 녹았다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오랜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황태 중에서도 잘 얼부풀려 더덕처럼 말린 것을 더덕북어라 하는데, 명태 중에서는 상품으로 친다. 또 어쩌다 봄에 잡히는 것을 춘태라 한다.
황태의 상품화에 성공해
우편주문판매를 통해 인제 황태를 공급하고 있는 북설악 대표 김성룡씨(42세)는 원래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가 고향인 거진을 등지고 진부령 고개를 넘어 용대리라는 화전민터에 정착하게 되자 그는 도리없이 용대리 촌놈이 되었다. 9살 때의 일이었다.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밤에 공부를 가르치는 재건중학교를 5년 동안 다녔다. 그리고 군대는 보충역으로 때웠다.
집안 형편에 따라 12살 때부터 황태 덕장에서 일했다. 재건중학교를 마치자 덕장 주인인 덕주 밑에서 12년 동안 고용인 생활을 했다. 나이 30을 훌쩍 뛰어넘자 큰 마음을 먹고 남의 명태를 받아다 황태로 말려주고 삯을 받는 삭덕거리 덕장을 운영해 보았다. 4년 동안 전력투구를 했다. 그러나 결산은 1억 2천 만원의 빚으로 마감되었다. 날씨 변덕이 심해 황태다운 황태를 생산하지 못했고. 따라서 삯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하늘은 그를 외면했던 것이다.
그대로 주저앉을 수 없었다. 재기의 몸부림으로 약초 장사를 시작했다. 친구에게 빌린 돈 20만원이 재산의 전부였다. 설악산 일대에 자생하는 당귀나 영지버섯 · 운지버섯 · 백출 · 곰취 · 얼레지 · 더덕 따위를 닥치는 대로 채취하고 또 사들였다. 그리하여 부인과 함께 좁은 방에서 약초는 썰고 산나물을 다듬으며 열심히 손질했다. 그리고 그것을 비닐 봉지에 담고 안내문까지 인쇄하여 휴게소나 농협 직판장에 내다 팔았다. 그때는 약초나 산나물을 짚이나 칡 넌출로 엮어 시장에 내놓던 때인 데, 비닐 포장을 한 산뜻한 제품으로 내놓자 불티나게 팔렸다. 미처 포장을 할 틈이 없을 정도로 팔렸다. 그때 마침 서울 양재동에서는 MBC가 주관하는, 전국 특산품을 판매하는 주말장터가 열리고 있었는데, 그가 참가해 판매고 1위를 달성했다. 1991년의 일이었다.
그때부터 장사에 자신이 붙었다. 그는 덕장 사업에 다시 도전했다. 약초 장사로 재미를 보았다 해도 빚을 갚을 정도는 안되었으므로 빚을 얻어 시작했다. 하늘이 도운 덕분인지 이듬 해부터는 날씨가 순조로워 명태가 잘 말랐다.
장사에 어느 정도 눈이 뜨였기 때문에 황태의 상품화에 신경을 썼다. 그때까지도 다른 업자들은 황태를 싸리나무에 꿰고 새끼줄로 묶어 재래시장에서 유통시켰는데, 그는 황태를 포와 채의 형태로 가공하고 그것을 비닐 봉지에 넣어 산뜻하게 포장한 다음 선물 세트로 내놓았다. 주로 농협을 통해 판매했다. 그가 생산한 황태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인근 업자들이 생산한 것을 수집해 같이 판매했다. 그때 비로소 수집상을 겸하면서 본격적인 장사 세계로 나섰던 것이다.
농협을 통한 판매는 생각보다 잘되었다. 덕장사업을 재개한 지 3년만에 기반을 다짐은 물론 급성장할 수 있었다. 그는 덕장도 늘리고 수매량도 늘리며 사업 규모를 키워 나갔다. 1994년에는 우편주문판매를 시작했으나 아직까지도 농협을 통한 판매 비중이 75%로 상당히 높은 편이기 때문에 매출액에 있어서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편 주문판매는 자금 결제가 빠른데다 방송 효과도 크기 때문에 다른 어떤 판매망보다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용대리 황태, 전국의 75% 차지
대구과에 속하는 명태는 수온이 1~10℃, 수심이 200〜300m인 찬 바다에서 사는 한대 성 물고기로 베링해와 오츠크해 연안, 일본 북쪽에 이어 우리나라 동해에 많이 서식하고 있다. 명태는 찬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연안에서 자란 것도 크면 찬 데를 찾아 먼 바다로 나간다. 11월부터 3월 사이에 많이 잡히는데, 그 중에서도 12월과 1월이 성어기로 제철에 잡히는 것이 맛이 좋다. 요즘은 원양어업으로 잡기 때문에 연중 생산된다.
요즘 국내에서 유통되는 명태는 대부분 원양산이다. 김성룡씨도 부산항으로 들어오는 원양산을 경매를 통해 구입한다. 부산에서 냉동차로 수송한 원양 명태는 속초 바닷가에서 배를 갈라 명란 · 창란 · 곤지 · 애 따위의 내장을 골라내고 지하수로 씻은 다음 두 마리씩 코를 꿰어 진부령에 있는 덕장으로 옮긴다.
대관령이나 진부령 등 고랭지에 덕장을 세운 것은 이북의 피란민들이었다. 6 · 25동란으로 함경도 지방에서 내려온 그들은 처음에는 속조 · 거진, 주문진 등 부둣가에서 명태를 말렸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기온이 상승하자 고랭지를 찾아 올라간 것이 대관령이나 진부령이었던 것이다. 덕장사업은 대관령에서 먼저 시작했으나 현재는 대부분의 덕장이 진부령 쪽에 몰려 있다. 특히 백담사 입구에서 시작해 진부령 중턱에 이르는 용대리에는 40개의 덕장이 있는데, 이곳에서 생산하는 황태가 전국 생산량의 75%를 차지한다.
그곳의 기후 조건이 좋기 때문이다. 덕장은 눈이 많고 일교차가 심하면서도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을 적지로 치는데. 용대리는 그런 점에서 최적지로 꼽힌다.
김성룡 사장의 말을 들어보자.
“대관령이 진부령보다 더 높으니까 기온은 더 낮은데, 바람이 적고 안개가 많은 게 흠입니다. 황태 덕장은 일교차가 심하면서도 건조 시기에는 바람이 잘 불어줘야 하는데, 대관령은 바람이 잘 안 부니까 겉은 마른데 속이 곪아 버립니다. 안개만 끼었다 하면 바람이 안 붑니다.'
덕장으로 옮긴 명태는 시렁처럼 생긴 덕대에 걸어놓는데, 한 달 동안은 비가 오나 눈이으나 그대로 걸어 둔다. 다만 건조시키는 과정에서 명태끼리 맞붙어 상할 염려가 있으므로 이따금 손질을 해야 한다. 한 달쯤 지나 어느 정도 황태로 익어가면 눈이 오면 쓸어 주고 비가 오면 가마니로 덮어준다. 70%쯤 건조된 명태는 비닐로 싸 덕장에 덮어둔다. 그렇게 해서 잘 건조된 명태를 밀봉해 두면 붉은 색이 나는 황태로 변신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날씨가 도와주어야 보기 좋고 맛 있는 황태가 된다.
“낮에는 영상 기온이다가 밤이면 영하 10도까지 내려가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낮에는 녹았다 밤에는 얼었다 하는 과정이 한 달이 상 지속돼야 누르스름한 빛깔의 황태가 됩니다. 기온이 낮아 항상 얼어 있으면 황태가 푸석푸석해져 상품 가치가 없습니다. 날이 너무 추우면 명태 껍질이 하얗게 돼 백태가 되고, 날씨가 따뜻하면 명태가 딱딱해져 깡태가 되고, 갑자기 따뜻한 바람을 맞으면 껍질이 꺼멓게 되는 먹태가 됩니다.'
이처럼 황태사업은 일종의 투기사업이다. 날씨가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덕장사업은 하늘과 동업을 해야 안전하다는 말이 전해져 오고 있다.
덕장에서 4〜5개월 동안의 가공 과정을 거쳐 탄생한 황태는 열 마리 한 쾌에 1만 5천원 내지 2만원에 도매상으로 넘겨진다. 입찰 당 시 한 마리당 250원 꼴이던 것이 그 정도로 팔리니 6〜8배의 부가가치를 낳는다고 하겠다. 그러나 그것도 하늘과 동업을 잘해 제 빛깔의 황태를 생산할 때의 일이고, 날씨가 도와주지 않으면 본전을 건지지 못할 때도 있다. 실패할 경우 사료로 팔리기 때문에 인건비도 건지지 못한다고 한다.
현재 북설악 대표 김성룡씨가 운영하고 있는 덕장은 1만 2천여평 규모, 그 넓은 덕장을 다 채우면 300만 마리의 황태를 생산할 수 있다. 황태 외에도 인진쑥 · 영지 · 운지 · 뽕잎청 · 치커리 등도 취급하고 있는데, 매출액으로 따지면 황태가 60%, 인진쑥이 30%, 그리고 나머지가 10% 가량 된다.
황태는 고단백 · 저지방 식품
명태는 다른 생선보다 지방 함량이 적어 비린내가 안나고 맛이 담백하다. 말리기 전인 명태는 단백질이 20%로 많은 편이며, 지방 함량은 1% 이내로 매우 적다. 그러나 말린 북어는 단백질이 51%. 지방이 6%로 높아진다.
명태에는 메티오닌, 라이신, 트립토판 같은 필수 아미노산이 많기 때문에 영양학적으로도 뛰어나다. 우리가 매일 섭취해야 하는 필수 아미노산은 8종인데, 그 비율이 쇠고기보다 우수한 것이 북어이다. 때문에 명태나 북어는 간장병이나 당뇨병 환자의 식이요법에 필요한 고단백식품으로 이용되고 있다.
북어는 해장국으로도 널리 애용되고 있다. 북어에 많이 들어 있는 메티오닌 성분이 간의 알콜 분해를 도와주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간에 부담을 주는 지방이 적어 과음에서 오는 피해를 줄이는 효과도 크다.
마른 명태는 연탄가스 중독이나 독사 독의 해독 작용을 한다는 것이 그곳 사람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민간요법으로 쓰였다는 것이다.
다시 김성룡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명태는 해독 작용이 없는데 황태는 해독 작용이 있습니다. 숙취 제거는 물론 연탄가스 중독이나 독사 물린 데, 기타 화공약품에 의한 중독에 효험이 있답니다.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이 떨어졌을 때 어느 한국인 피해자가 속초산 마른 명태를 달여 먹고 효험을 본 예도 있답니다. 요즘 도시 사람들이 각종 공해에 시달리고 있는데, 인체의 노폐물을 제거시키는데도 북어가 최고랍니다. 북어국을 끓여 국물을 먹는 겁니다. 임산부들의 산후 조리에도 좋구요.”
명태는 국 외에 무침으로도 애용되었다. 북어를 잘게 뜯어 만든 북어무침은 우리 고유의 전통 음식이다. 그밖에 명태는 찌개, 구이, 찜, 조림, 포 등으로 요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