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속에 핀 꽃 나주 토화젓
껍질이 단단해 갑각류(甲殼類)라 불리는 새우는 종류가 많은데. 민물에서도 살고 바닷물에서도 산다. 열대에서 한대까지, 그리고 연근해에서 심해까지 널리 분포되어 있다. 민물새우와 바다새우 사이에 가장 두드러진 차이가 있다면 크기가 다르다는 점이다. 바다 새우 중 가장 큰 종류인 대하가 30〜40cm인 데 비해 민물새우에서 작은 종류인 새뱅이는 2〜4cm에 불과하다.
민물새우는 크게 징거미 · 새뱅이 · 가재 등으로 나뉘는데. 그 중에서 새우젓을 담그는 것은 새뱅이류이다. 징거미새우로도 새우젓을 담그지만 그 맛이 떨어진다. 일반적으로 김장용으로 쓰이는 새우젓은 바다새우 중 작은 종류인 젓새우인데, 민물새우로 담그는 토하젓과는 맛에 큰 차이가 있다.
새뱅이라 하는 민물새우는 생이, 애새우, 토하(土蝦)라고도 불리는데, 우리나라 하천 어디에서나 서식한다. 새뱅이새우로 담근 새우젓은 젓새우로 담근 일반 새우젓과는 달리 흙 내음을 곁들인, 새우 특유의 독특한 맛을 지니고 있어 토하젓이라는 이름으로 구분하고 있다.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새우는 전국 어느 하천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흔한 어종이었다. 그런데 각종 공해물질의 유입과 농약의 살포로 수질이 오염된데다 남획까지 겹쳐 웬만한 하천에서는 구경하기조차 어렵게 되었다. 그런데도 새우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아 멸종 위기에 놓여 있었는데, 농촌의 한 이름없는 비전문가가 토하의 양식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우리 전통식품의 맛을 되찾게 되었고, 아울러 지역사회의 소득 증대에도 큰 보탬이 되고 있다.
새우 양식이 소명처럼 느껴져
세지농수산 대표 조율환씨(42세)는 20대 중반까지만 해도「맨발의 청춘」이었다. 중졸 학력에 농사를 지을 땅도 마땅치 않는지라 뚜렷한 인생 설계를 하기 어려웠다. 때문에 그의 말마따나 꿈많은 청춘 시절을 어영부영 보냈다.
나이 27세에 처음으로 손댄 사업이 농업용 지하수 개발사업. 운이 좋았던지 처음 시작한 사업 치고는 벌이가 좋았다. 2년쯤 지나 겸업으로 손댄 사업이 뱀장어 양식이었다. 국민학교 은사가 돈을 대고 그가 양식 업무를 맡는다는 조건으로 동업을 했다.
나주평야의 남쪽 끄트머리에 자리잡은 그의 고향 나주군 세지면에는 만봉천 · 금천천 등 냇물이 흐르고 있어. 붕어 · 메기 · 뱀장어 등 물고기가 많았는데. 그는 어릴 때부터 민물고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20대까지는 틈만 나면 냇물에 가서 천렵하는 것을 일과로 삼다시피 했는데. 냇물의 오염과 남획으로 물고 기의 씨가 말라가자, 이제는 물고기를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그러한 생각에서 뱀장어 양식을 시작했던 것이다.
지하수 개발작업은 농한기인 겨울에 한다. 그런데 그 추운 겨울 날씨에 촌 아낙네들이 체로 개울을 훑고 다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새우를 잡는 것이었다. 새우는 겨울에도 죽지 않고 얼음 속에서 동면을 한다.
그 광경을 보자 호기심이 발동했다. 새우가 일본으로 수출된다는 말을 듣고,유통 경로를 추적해 송정리에 있는 중간상인을 만난데 이 어부산의 수출업체를 찾아갔다. 부산에서는 양어장 시설을 갖춰 놓고 전국 각지에서 수집한 새우를 보관해 두었다 산 채로 일본으로 수출하고 있었다. 낚시 미끼용으로 쓰이는데, 반드시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과정을 지켜보는 동안 섬광처럼 스치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내가 할 일이 바로 이것이다.' 사라져가는 민물새우를 양식하는 것이 자신의 소명처럼 느껴졌다.
나주에서 부산을 수차례 왕래하며 새우의 주요 산지 · 수요 · 공급 현황 · 수출 전망 등을 따졌다. 낚시 미끼로 일본으로 수출되는 새우는 1년에 700톤쯤 되었다. 그 당시 토하를 양식하는 데는 한 군데도 없어 전부가 민물산인데, 전라도보다 경상도에서 많이 났다. 경상도 중에서도 창녕의 우포늪과 이방늪에서 많이 났으며. 안면도에서도 많이 났다. 수출 가격은 높은 편이었다. 따라서 국내 수요도 중요하지만,수출을 위해서도 새우 양식은 반드시 해야겠다고 작심했다.
토하의 먹이는 바로 클로렐라
새우 양식에 관한 기초조사를 마친 조율환 씨는 1986년 뱀장어양식장 한 면을 빌려 새우의 시험 양식에 돌입했다. 종자 새우는 해남에 있는 한 저수지에서 잡아 왔다.
양식작업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새우는 1급수 수질에서만 서식할 만큼 환경에 민감한 어류이므로 산성비만 내려도 죽어 버렸다. 적정 수온인 22〜27도의 유지도 힘들었다. 그러다 보니 번식률이 10%에도 못미치는데다 개구리 등의 천적이나 잡새우 등에 잡혀먹히는 바람에 새우 숫자가 오히려 줄어들었다.
그러나 적당한 수질이나 수온, 천적으로부터의 보호 따위는 어느 정도의 노력을 쏟아 부으면 풀릴 수 있는 문제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새우의 먹이였다. 새우는 잡식성이라 하지만. 새뱅이가 무엇을 먹고 사는지 알 길이 없었다. 이끼도 넣어주고 배추잎도 갈아 넣어 주었으나 소용이 없었다. 뱀장어 사료 등 사료라는 사료는 다 넣어주었으나 백약이 무효였다. 주위에는 새우를 양식하는 데도 없었고, 전문가도 없었다. 따라서 먹이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조율환씨 자신뿐이었다.
조율환씨는 집념의 사나이였다. 그는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밤잠을 자지 않고 고민하고 연구했다. 원래 민물고기 양식은 한번에 성공한 예가 드물다. 어떤 민물고기건 마찬가지이다. 때문에 몇차례의 시행착오는 불가피하지만. 새우 양식의 경우 도를 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자 새우를 사다 넣어주며 먹이 실험을 계속했으나 1년이 지나도 먹이 문제는 풀리지 않았다.
그런데 아주 우연한 기회에 그 문제가 해결되었다.
'뱀장어를 양식하자면 물에 배설물이 많이 쌓이고 또 식물성 플랑크톤이 많이 생기기 때문에 하루에 한번씩 물을 갈아 줍니다. 그런데 새우는 아무리 사료를 바꿔줘도 안먹기 때문에 어느 날은 포기하는 심정에서 새우 양식장 물을 안갈아 줬어요. 그 후로는 성질이 나서 그 곁을 지나면서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3〜4일 후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 쳐다 보니 물이 맑아져 있었어요. 며칠 전에 넣어 준 물은 장어 양식장에서 나온 퍼런 물이었는데. 그 물이 깨끗해진데다 자세히 보니 바닥에 새우 똥이 쫙 깔려있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이것이로구나 하고 용기를 얻었죠.'
그것은 바로 장어 양식장에서 생성된 클로렐라(Chlorella) 였다. 시험 삼아 양어장에서 채집한 파란 이끼를 말려 새우가 들어있는 어항에 집어넣었더니 시도 때도 없이 먹어치 웠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새우의 먹이가 클로렐라라는 것을 알았고. 그때부터 클로렐라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클로렐라 생산의 3요소는 적당한 온도와 광선, 그리고 먹이인 유기질인데. 먹이로서 가장 좋은 것은 완숙된 퇴비에다 미네랄 성분이 많이 포함된 황토를 섞은 겁니다. 유기질을 너무 많이 뿌려주면 클로렐라가 너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물에 산소가 부족한게문제가 되는데 그럴 때는 타닌 성분이 많이 들어있는 솔가지를 넣어줘야 합니다.'
그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하여 사료 개발에 박차를 가한 결과. 바다에서 채취한 녹조류인 감태에 미네랄이 함유된 몇가지 효소를 섞은 특수 사료를 개발했다. 사료 문제가 해결되자 3천여평의 논에 비닐하우스 양식장을 만들어 본격적인 새우 양식에 나섰다. 그러나 그가 새우의 대량 생산에 성공한 것은 시작으로부터 6년 후인 1992년이었다.
토하젓은 소화젓
나주토화젓 대표 조율환씨는 중졸이라는 학력에 비해 매우 학구적인 사람이다. 그는 황무지 상태인 토하 양식기술을 실험과 시험을 통해 터득했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그는 토하젓에서 흙냄새가 나는 이유를 밝히기 위해 여러가지 실험을 했다.
'토하는 식욕이 아주 왕성합니다. 시멘트블록을 물 속에 넣어주면 뜯어 먹습니다. 그냥 녹아버리죠. 한번은 화강암을 넣어주었더니 석영 · 운모 · 장석 등 화강암의 3요소 중에서 장석만 파먹는 것 같았어요. 돌이 모래로 변하더라구요 그러니까 흙을 먹는 게 아니고 흙 속에 들어있는 어떤 성분을 먹는 것 같습니다.
새우의 천적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토종개구리와 외래종인 황소개구리를 해부해 보기도 했다. 토종 개구리 배에서는 새우가 15 마리나 나왔는데. 황소개구리에서는 한 마리도 나오지 않았다.
이처럼 조율환씨는 새우의 양식에 관심을 가졌을 뿐 새우젓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런데 주위에서 양식한 새우를 그냥 팔지 말고 새우젓으로 가공하여 팔라고 권했다. 그래야 부가가치가 높아지며 농촌 소득 증대에 보탬이 된다는 것이었다. 특히 농촌지도소나 군청 등 행정기관에서 그렇게 권하며 자금 지원도 약속했다.
토하젓을 담그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원래 나주는 영산강을 끼고있어 토하젓을 잘 담갔다.
가을이나 봄에 잡은 새우는 우선 소금에 절여 놓는다. 최소한 3개월 동안은 염장(鹽 藏)해 숙성 과정을 거쳐야 식품으로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일정한 숙성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비린내가 나 먹기 어렵다.
토하젓을 담그려면 우선 찹쌀을 찌고 그것을 간 찹쌀밥 반죽을 준비해야 한다. 그와 동시에 염장처리된 새우에서 소금과 물기를 빼고 마늘 · 생강 · 참깨 · 고주가루와 버무린 다음 다시 찹쌀밥 반죽과 함께 잘 버무린다. 그렇게 해서 2〜3일 지나면 먹을 수 있다. 3 개월동안 염장처리를 하면 디스토마 등의 기생충은 완전히 제거된다.
일부 업체에서는 새뱅이새우에 징거미새우를 섞어 담그기도 하는데. 몸길이가 10cm나 되는 징거미는 토하젓용으로 적합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뱅이가 워낙 비싸기 때문에 섞고 있는데, 토하젓의 진미는 기대하기 어렵다.
토하젓은 예로부터 소화젓이라 불렸다. 꽁 보리밥을 먹고 체했을 때 토하 한 숟갈만 먹으면 낫는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던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돼지고기를 먹을 때 토하젓을 필수품으로 챙겼다. 그만큼 소화가 잘 되기 때문이다. 조사장은 그 이유를 토하젓에 소화를 돕는 효소가 들어있기 때문이라 분석 하고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토하젓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별미식품으로서의 색다른 맛이라 하겠다. 완성된 토하젓은 흙내음이 약간 섞인 토하 특유의 담백하고도 상큼한 맛과 향을 풍기는데. 그것이 바로 젓갈 중에서도 최상품으로 치는 토하젓의 진미인 것이다.
그밖에 새우의 껍질에는 상처를 쉽게 아물게하는 키틴(Chitin)이란 성분이 많이 함유 돼 있다. 최근에는 토하젓이 암을 억제하는 키틴 올리고당을 다량 함유한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또한 토하젓에는 어린이 지능 개발에 좋은 DHA 성분이나 성인병 예방에 효과가 있는 키토산 등이 들어있다고 하는데, 이들에 대한 연구는 현재 진행중이다.
판매보다 양식에 관심이 많아
1992년의 일이지만, 조율환씨가 민물새우 양식에 성공했다는 사실은 대단한 뉴스 거리가 되었다. 각종 신문과 방송이 다투어 그 소식을 보도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찾아왔고, 새우는 없어 못팔 지경이 되었다. 찾아오는 이유도 갖가지였다. 어떤 사람은 토하젓 맛이 그립다는 것이었고. 어떤 사람은 새우 양식을 하기 위해. 또 낚시 미끼를 구하기위해 찾아왔다.
처음에는 토하젓을 방문객을 상대로 낱개로 팔았다. 그 벌이도 짭짤했다. 이듬해부터 농협을 통해 판매했다. 그러자 우체국에서 우편주문판매에 참여하라고 권유했다. 그가 신청하기에 앞서 해남의 한 업체가 징거미새우로 만든 토하젓을 우편주문판매를 통해 공급하고 있었는데, 그의 제품이 선보이자 진품을 알아본 전남체신청에서 해남 업체를 취소시키고 그의 제품을 받아들였다.
세지농수산의 연간 매출액은 4억원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그것은 남도의 맛을 대표하는 토하젓이라는 전통식품의 매출액으로 볼 때 결코 많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조사장은 토하젓의 매출액에 대해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그의 관심사는 아직도 담수어의 양식이다. 지금까지 그는 새우뿐만 아니라 미꾸라지 · 메기 · 가물치 · 참게의 양식에 성공했다 그런가 하면 바가사리 · 산천어 · 식용 개구리 양식에는 실패했다. 그러니까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는 쌓여 있는 셈이다.
조율환씨는 과학자 기질이 다분한 사람이다. 연구 · 개발을 좋아하는 것은 그의 천성이자 취미이다 실제로 그는 토하젓과 관련해 몇가지 특허출원을 했으며. 유압펌프를 회전식에서 왕복식으로 바꾸어 실용신안특허를 따내기도 했다.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연구개발 과제를 찾아 노력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풀리지 않는 과제가 있으면 며칠이고 밤 잠을 설쳐가며 해결하는 집요함도 보이고 있다.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조박사'라 부르고 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러한 연구 개발 과정을 이론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실력이 모자라 남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점이라 하겠다.
아무튼 그의 집념과 노력 덕분에 토하 양식은 성공을 거두어 전남 각지로 번지고 있다. 그의 고향인 나주는 물론 영암 · 진도 · 곡성 등지에서 토하 양식에 열을 올리고 있다.
새뱅이 또는 생이라 부르는 민물새우는 원래 토하(土蝦)라 한다. 그런데 세지농수산에서 생산한 토하젓은 '토화'라는 상표로 팔고 있다.
'원래 ‘토하젓'으로 상표등록을 해서 시판했는데. 타 업체에서 징거미새우로 만든 새우 젓을 ‘토하젓'이라 해서 팔기 때문에. 그것과 차별화하기 위해 '토화젓'이라 다시 상표등록을 해서 진짜 토하젓만을 팔고 있습니다. 동의보감에서 민물새우젓을 '흙에서 핀 꽃'이라는 뜻에서 토화(土花)라 한데서 힌트를 얻었죠. 그만큼 좋은 상품이라는 뜻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