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순창에는 가볼만한 산이 둘 있는데, 하나는 강천산이요 또 하나는 회문산이다. 해발 837미터인 회문산은 6 · 25 때 빨치산의 아지트였으며, 소설「남부군」으로 하여 그 사실이 널리 알려졌는데, 그 산 중턱에 만일사라는 조그만 절이 하나 있다. 백제 무왕 때 세워졌고, 고려말에 무학대사에 의해 중건 된 만일사(萬日寺)는 무학대사가 이성계를 임금의 자리에 오르게 하고자 1만일 동안 그 곳에서 기도를 하였다는 사실에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어느 날 이성계가 스승인 무학대사를 찾아 만일사로 가던 중 어느 농가에 들러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그 집에서 내놓은 고추장 맛이 기막히게 좋았다. 그 후 조선을 건국한 이 성계는 순창의 고추장 맛을 잊지 못해 순창 현감에게 고추장을 진상하도록 했는데, 그때 부터 순창 고추장이 궁중 진상품으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만일사에는 그러한 사실을 적은 것으로 전해지는 비석이 서 있어 그러한 전설이 사실인 양 믿게 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비석이 너무 닳아 글씨를 알아볼 수 없다. 그러나 순창 사람들은 그러한 전설을 틀림없는 사실로 믿고 있다.
전통고추장을 만드는 집이 100개나 돼
동서로 대구와 광주를 잇는 88고속도로가 개통된 것은 1986년이었다. 그해 4월 88고속 도로 개통식에 참석했던 전두환 대통령이 순창에 들러 순창의 특산품인 고추장을 잘 개발해 널리 보급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군청에서 서둘러 전통 고추장을 만들고 있는 기능 보유자들을 모아 순창전통고추장보존협 의회라는 단체를 구성했다.
그해 6월에 협의회는 구성되었지만, 회원 14명이 모여 고추장을 공동으로 생산할 건물도, 시설도 없었다. 따라서 처음에는 생산은 각자 집에서 하고 판매는 공동으로 하는 방식으로 운영했다. 운때가 맞아떨어졌음인지 바로 그해 12월에 우편주문판매제도가 실시 되었고. 그들이 상표로 내놓은「순창전통고추장」은 우체국 직원들의 열성으로 당연하다는 듯 판매 목록에 올랐다.
순창 고추장은 첫해부터 예상외로 많이 팔렸다. 두번째 해인 1988년에는 우편주문판매에 참여한 업체 중 울릉도 오징어에 이어 전국 2위를 기록했다. 순창 고추장의 명성 덕을 톡톡히 본 셈이라고나 할까?
그때부터 녹색시대 등 전국의 특산품을 판매하는 행사에는 빠짐없이 참여했다. 도청이나 군청에서도 각종 행사의 개최 사실을 알려주며 적극적인 참여를 권유했다.「순창전통 고추장」이라는 상표 때문인지 행사장에서도 잘 팔렸다. 같이 참여한 순창 자수나 남원 목기, 전주 이강주 등이 파리를 날리고 있는데, 순창 고추장은 연일 손님을 끌었다.
회원들이 같이 참여해 고추장을 만드는 공동 생산은 1987년부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회원의 땅을 빌려 작업장을 마련했는데, 1992년부터 공동 투자로 마련한 반듯한 건물에서 생산도 하고 판매도 했다. 생산 공장을 지을 때는 군청에서 지원한 보조금이나 융자금이 큰 도움이 되었다.
협의회 회원들은 판매 방식을 공동 판매와 개인 판매로 이원화했다. 우편주문판매나 녹색시대에서의 판매 등 협의회로 직접 주문이 들어오는 것은 공동 판매로 하고, 개인적으로 받게 되는 주문은 각자 집에서 만든 고추장으로 공급하고 있다. 회원들은 고추장으로 오랜 연륜을 쌓아온 기능 보유자이므로 많은 단골을 확보하고 있다. 때문에 전화로 주문해 오기도 하고 직접 찾아와 사가기도 한다. 백화점에서 다량으로 주문해오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공동 판매보다는 개인 판매 쪽이 오히려 비중이 더 크다고 한다.
순창 고추장을 판매 하고 있는 사람은 그들 만이 아니다. 1994년부터 순창군은 지역의 특산품인 고추장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 전통 고추장만을 만드는 민속마을을 별도로 조성 하고 있는데, 현재 54가구가 입주해 있다.
민속마을 입주자만이 순창 고추장을 생산 · 판매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처럼 정식으로 허가를 받아 장사를 하는 사람 외에도 비공식적으로 고추장을 만들어 팔고 있는 숫자가 그들만큼은 된다. 정식 허가를 받지 않고 음성적으로 장사를 하되 전통 고추장을 만든 다는 점에서는 그들과 다를 바 없다.
순창에는 그밖에도 전통 고추장이 아닌 일반 고추장을 만드는 공장이 여럿 있다. 겉으로 볼 때는 같은 고추장으로 보이지만 전통 고추장과 일반 고추장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우선 원료가 다르다. 한쪽은 찹쌀과 재래식 메주를 주원료로 하고 엿기름을 넣는 데 다른 한쪽은 소맥분과 일반 메주를 주원료로 하고 물엿을 쓴다. 고추가루의 비율도 2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또한 후자는 방부제를 사용하고 있는데 비해 전자는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다. 또 하나의 큰 차이는 발효 기간이다. 전자는 장독에서 6개월 이상 숙성시킨 자연 발효식품임에 비해 후자는 4〜5일 동안에 발효를 시키고 있다. 때문에 양자 사이에는 맛에 큰 차이가 나는데. 반면에 후자는 값이 절반 이하로 싸다.
10개월 가량 숙성시켜야 깊은 맛이 나
전통 고추장을 담그려면 메주와 찹쌀 · 고추 가루 · 소금 등이 필요하다. 요즘은 단맛을 내기 위해 엿기름을 쓰기도 한다.
고추장을 담그려면 우선 메주부터 만들어야 하는데. 순창에서는 다른 지방보다 빨라 처서 전후인 음력 7월에 메주를 쑨다. 메주는 콩과 멥쌀로 만드는데 콩 한 말에 멥쌀 여섯 되의 비율로 섞는다. 먼저 콩을 삶고 멥쌀을 빻아 가루로 만든 다음 콩과 멥쌀가루를 시루떡 앉히듯 층층으로 쌓아 푹 익히고 나서 절구통에 넣고 친다. 그것을 둥그스름한 도너츠형의 떡으로 만들어 처마 끝에 매달아 놓으면 한 달쯤 후에 노르스름한 곰팡이가 피어난다. 그러한 메주를 조약돌만하게 쪼개 3〜4일 가량 햇볕에 말린 후 가루로 만들어 다시 말린 다음 건조한 곳에 보관해 둔다.
순창전통고추장보존협의회는 10월부터 이듬해 3월 사이에 고추장을 담근다. 옛날에는 주로 음력 동짓달 중순에서 섣달 중순 사이에 담갔다. 고추장을 담그려면 찹쌀을 쪄고 두밥을 만든 다음 반죽해 놓은 메주와 섞어 메로 친다. 메주가루를 반죽할 때는 펄펄 끓여 식힌 물을 써야 한다. 일종의 살균법인 셈이다. 거기에 고추가루와 물, 간장, 소금 등을 섞어 젓는데, 간을 맞출 때는 3년 이상 묵은 간장을 사용한다. 소금은 한꺼번에 넣지 않고, 매일 조금씩 넣고 저어야 고추장 맛이 좋다. 이렇게 담근 고추장을 질그릇에 담아 햇볕에 내놓고 나무 주걱으로 저으면 고루 삭으며 불그스레한 색깔이 나오는데, 그것을 독에 담아 10개월 가량 숙성시키면 맛있는 전통 고추장이 된다.
고추장의 맛은 달콤하면서도 톡 쏘는 매운 맛에 있다. 그러면서도 뒷맛이 개운해야 한다. 전통 고추장은 발효 기간을 6개월 이상으로 잡는다. 그러나 10개월 정도 충분히 숙성 시켜야 고추장 특유의 깊은 맛이 난다. 알싸한 맛이 바로 그것이다. 발효가 덜된 것은 고추장 특유의 깊은 맛이 나지 않는다.
고추 · 콩 · 찹쌀 등 원료는 그 지방에서 나는 것을 쓴다. 순창의 고추 주산지는 해발 350미터인 쌍치면 산중인데, 그곳에서 생산되는 고추는 잘고 매운 토종 고추이다. 너무 큰 고추는 고추장용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한다.
고추는 임진왜란 직후 도입되었다는 게 정설
고추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임진 왜란 이후라는 것이 정설처럼 되어 있다.
중남미가 원산지인 고추는 콜룸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그 후 1559년 포르투갈 상선을 타고 일본에 전래됨으로써 동양에는 맨처음 전해졌으며, 일본을 거쳐 한국과 중국으로 퍼졌다고 한다.
이수광의 지봉유설(芸峰類說)은 “고추는 왜국에서 처음 온 것이며 속칭 왜개초(f委茶 草)라 부른다고 적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일 본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조선 원정에서 갖고 왔다고 기록한 문헌도 있다. 아무튼 임진왜란을 전후해 우리나라에 도입 되었고, 중국에 건너간 것도 임진왜란에 참전 한 명나라 군사들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옛날에 우리 조상들은 배추나무 · 순무 · 외 · 죽순 따위를 재료로 하여 김치를 담갔는 데, 그것들을 소금으로 절이거나 끓는 물에 데쳐 식초에 담그기도 했다. 소금으로 절인것은 밥이나 죽 같은 익힌 곡물이나 술지게 미 · 누룩 등을 넣어 삭혔다. 산초나 후주 · 마늘 · 생강 같은 향신료를 섞기도 했다.
그런데 고추가 들어오면서 우리 김치문화에 일대 혁명이 일어났다. 고추는 기호성이 큰데다 우리 풍토에도 맞아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졌다. 그 후 300여년밖에 안되는 지금 몇천년을 함께 해온 고유 식품의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쉽게 뜨거워지는 우리 국민성 때문일까, 아니면 역사의 기록을 소홀히하는 우리 국민성 때문에 역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탓일까?
비타민 A와 C를 많이 포함하고 있는 고추의 성분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캡사이신 (Capsaicin)이다. 고추가 매운 것은 캡사이 신때문인데. 그것은 매운 맛을 낼 뿐 아니라 붉은 색소의 퇴색을 방지하고, 채소의 발효와 젓갈의 산화를 억제하는 기능까지 한다 이러한 기능 때문에 우리가 신선한 김치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고추는 김치를 위해 내려진 자연의 선물인 셈이다.
고추장이 처음으로 문헌에 나타난 것은 1766년 류중림이 쓴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 經濟)로서 만초장(蠻椒醬)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그 책에서 고추장은 메주가루 1말에 고추가루 3홉, 찹쌀가루 1되의 비율로 담근다고 했다. 그보다 50년 후의 기록인 규합 총서(閨合叢書)에서는 팔도의 명물 가운데 고추장은 순창과 천안 · 함양의 것을 최고로 꼽았다.
그렇다면 만일사에 얽힌 순창 고추장의 전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단순한 전설에 불과할까. 아니면 기록된 문헌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감추어진 역사가 따로 있는 것일까?
좋은 고추장을 만드는 게 판매전략
고추장의 주원료는 찹쌀 · 멥쌀 · 콩 등 곡 물이다. 따라서 고추장은 전분의 분해로 생성된 당분의 단맛과 단백질의 분해로 생긴 아미노산의 구수한 맛, 그리고 고추가루의 매운 맛이 잘 어우러져 있는 전통 발효식품이다.
고추장의 주성분은 당분이지만, 주원료인 고추의 영향인지 비타민 C의 함량이 높다. 또한 콩을 원료로 한 된장과 고추장은 단백 질 함량도 높아 백미를 주식으로 한 채식 위주의 한국인에게 단백질의 주요 공급원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고추장의 생명은 음식물의 맛을 돋구는 조미식품이라는데 있다고 하겠다. 채소나 생선 등 다른 반찬과 어우러질 때 그것들의 맛을 돋구는 것. 바로 거기에 고추장의 사명이 있는 것이다.
선홍색이라 할 순창 고추장은 빛깔부터 다르다. 붉다 못해 윤기가 흐른다. 맛 또한 다르다. 달콤하면서도 톡 쏘며, 그러면서도 뒤 끝이 개운하다. 그러한 맛을 그 지역 사람들은 ‘알싸하다’는 낱말로 표현한다.
그러한 표현이 정확한지의 여부를 떠나 순창 고추장이 손님을 끌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1997년 1년 동안에 순창에서 생산 · 판매 한 고추장은 줄잡아 28억원. 우리의 전통 농산물인 쌀과 콩 · 고추를 원료로 한 제품이 그만큼 팔리고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처럼 독특한 맛이 나는 고추장을 만들어 내는 비결은 뭘까?
그곳 사람들은 순창의 물과 기후가 좋기 때문이라 한다. 순창은 옛부터 옥천(玉泉 · 玉川) 고을로 불릴만큼 물이 좋은 고장이며 실제로 분석해본 결과 철분이 많이 들어있다고 한다.
“순창은 확실히 물맛이 달라요. 제가 전주에 가서 5년 살았는데, 똑같은 재료를 가지고 제 손으로 담가도 순창 고추장 맛이 안나요. 참 묘해요.”
협의회 회장 안인용씨의 말이다.
또 하나의 이유로 고추장을 담그는 시기가 다르다는 점을 내세운다. 다른 지역에서는 음력 10월에 메주를 쑤어 이듬해 봄에 담그는 데, 순창에서는 처서 무렵에 메주를 쑤어 음력 동짓달에서 섣달 사이에 담근다. 고추장을 담글 때도 옹기나 주걱, 돌확 등 재래식 기구를 사용한다. 가장 중요한 재료인 고추가 잘고 매운 토종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사람도 있다.
아무튼 우편주문판매를 통해 공급하고 있는 순창전통고추장은 잘 팔리고 있다. 1997년도의 판매액은 2억 6,300만원 물론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화려한 명성에 비해 판매액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다른 업체들의 판매액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다. 현재 우체국을 통해 고추장을 팔고 있는 업체는 순창외에 5개나 되지만 그들의 판매액은 기백만원에 불과하다.
게다가 현재 13명의 회원으로 구성돼 있는 협의회는 장사에 관한 한 초보자라 할 만큼 순진한 아마추어의 집단이다. 그들은 연간 매 출액이 어느 정도이며, 실제로 얼마나 벌고 있는지 따지지도 않는다. 그 동안 군청에서 어느 정도의 지원을 받았는지도 잘 모른다. 그러다 보니 상품에 대한 연구도 전혀 안되어 있어 홍보용 책자 하나 변변한 게 없다. 또한 판매전략이란 게 따로 있을 수 없다. 그 저 주문이 들어오는 대로 팔고 있을 뿐이다.
“판매전략이란 게 따로 있겠어요. 좋은 제 품을 만드는 것이 판매전략이죠. 질을 좋게 만들어야 팔릴 것 아닙니까.”
초대 회장 문정희씨의 말이다.
이와 같은 아마추어 장사꾼들이 모여 연간 2억 6천만원 어치를 팔고 있으며. 또 각자 집에서 그 이상을 팔고 있으니 역시 맛이 있으면 팔리는 모양이다. 때문에 그들이 자랑으로 삼는 일은 여태까지 반품이 한 건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1986년부터 지금까지 판매하고 있는데, 파손이 됐다고 해서 재발송해준 일은 있지만, 물건이 나쁘다고 해서 반품돼온 일은 한번도 없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