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운을 북돋아주는 영광 굴비
고려 인종 때의 세도가 이자겸(李資謙)은딸을 왕비로 앉히고 온갖 전횡을 일 삼다 측근인 척준경(押俊京)의 배반으로 권력을 잃고 귀양을 가게 되었다. 귀양지가 다름아닌 전라도 영광. 그곳에서 어부들이 독특 하게 말린 조기를 먹어 보니 맛이 기막혔다. 혼자 먹는 것이 아깝고 또 죄스럽기도해 임금에게 진상했는데. 진상하는 조기에 ‘정주굴비(靜州屈非)’라는 글자를 써 보냈다. 신하로 서의 변함없는 충정과 자신의 옳은 뜻을 굴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그렇게 썼던 것인데, 그때부터 말린 조기에 「굴비」라는 이름이 붙게되었다고 한다. ‘정주'는 ‘영광'의 옛이름 이었다.
‘기운을 북돋아 준다’는 뜻에서 조기(助氣)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있는 조기는 석수어(石首魚) 또는 석어(石魚)라고 불리기도 한다. 조기 머리에 돌처럼 단단한 뼈 두 개가 부러진 이빨처럼 뭉쳐 있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4월 초파일이 조기의 환갑
조기는 민어과에 속하는 생선으로 전세계에 160종이 있으며 한국 연해에는 11종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어를 비롯하여 참조기 · 보구치 · 흑조기 · 강달이 · 부세 · 황세기(黃石魚) 등이 조기류에 속한다. 그 중에서 가장 흔하고 맛있는 것이 참조기인데, 노랑조기, 황조기라고 불리기도 한다.
조기는 서해와 중국해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데, 봄철에는 산란을 하기 위해 서해로 북 상하고, 가을철에는 월동을 하기 위해 남하한다 제주도 서남쪽과 중국해에서 월동한 조기 떼는 2월경에 북상하기 시작하여 흑산도 부근의 바다를 거쳐 3월경부터 영광 앞바다인 칠산바다에 올라와 산란을 하면서 연평도쪽으로 북상한다.
전에는 이처럼 3월과 4월에 칠산바다를 거쳐 연평도 쪽으로 떼를 지어 이동하는 조기를 그물로 건져 올렸다. 때문에 조기는 봄에 만나는 생선이었는데. 그때가 되면 전라도 영광과 경기도 인천, 서울 마포에 조기 파시가 섰다고 한다.
참조기를 소금에 절여 말린 것을 굴비라 하는데, 굴비 중에서도 영광에서 나는 것을 제일로 쳤다. 전에는 조기가 칠산바다에서부터 잡히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잡힌 조기는 산란 직전의 알이 꽉찬, 기름진 참조기였다. 속칭 알배기인 것이다. 그러한 조기를 잡아 소금에 절여 독특한 건조법으로 말리면 천하일미의 굴비가 되는 것이다.
생선이 다 그렇듯이 조기도 알을 낳고 나면 맛이 떨어진다. 음력 4월 초파일이 조기의 환갑이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때 잡힌 조기는 파사리 조기라 해서 값이 떨어진다.
그런데 요즘은 영광 앞바다에서 조기를 구경하기 어렵게 되었다. 거기까지 올라가기 전에 잡히기 때문이다. 제주도와 흑산도 부근에서 미리 잡아버리기 때문에 칠산바다로 올라 갈 조기가 없는 것이다. 전에는 조기 떼가 오기를 기다렸다 잡았는데 요즘은 조기 떼를 쫓아다니며 잡는다. 또 전에는 칠산바다에서 봄에만 조기를 잡았는데 요즘은 11월부터 4월까지 잡는다. 10월부터 잡기도 하는데. 그때는 작은 조기만 잡힌다. 때문에 알배기 조기로 완전히 클 때까지 기다렸다 잡는 옛날에 비해 조기의 질이 떨어진다고 하겠다.
그런데도 여전히 영광 굴비는 생산되고 있고 비싼 값으로 팔리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 잡힌 참조기를 사다 영광 바닷가에서 말린 것이 영광 굴비로 행세하는 것이다. 그곳의 건조법이 독특하므로 다른 데서 잡은 조기라 해도 영광 굴비로 내세울만하다는 것이다.
조기를 잡으면 오래 보관하기 위해 소금에 절여 두었다 염도가 낮은 염수에 다섯번 정도 세척한 다음 크기에 따라 10마리나 20마리씩 엮어 햇볕에 말린다. 한 두름에 10인 큰 조기를 오가재비. 20마리인 작은 조기를 역거리라 한다. 이처럼 소금질을 하고 건조시키는 과정에 영광 굴비 특유의 비법이 담겨 있다.
영광에서는 소금에 절이되 섶간을 한다. 섶간이란 소금에 절어 있는 가마니에 소금질이 된 생선을 얹어 두는 것이다. 조기는 생각보다 많은 기름기를 품고 있는데, 섶간을 하면 기름기가 저절로 빠진다고 한다. 소금질을 하기에 앞서 배 밑부분의 비늘을 칼로 벗기는 데, 그것은 소금의 침투가 잘되게 하기 위한 것이며, 아가미와 주둥이에도 소금을 집어넣는다. 내장이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이다. 이때 쓰는 소금은 1년 이상 저장해 간수가 완전히 빠진 것이라는 점이 영광 굴비의 또 하나의 자랑거리이다. 간수가 빠졌다는 것은 소금의 쓴맛이 빠지고 짠맛만이 남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금질이 된 조기는 법성포 바닷가에서 말린다. 한 두름씩 엮어 3미터 높이의 걸대에 걸어놓는데. 날씨에 따라 1〜2주 동안 말린다. 이때 햇볕과 해풍이 작용해 먹기 좋은 굴비로 익혀 주는 것이다.
“같은 조기를 내륙으로 가져가 말리면 이상한 냄새가 납니다. 상한 냄새죠. 그런데 영 광 굴비의 본고장인 법성포에서 말리면 향긋한 냄새가 납니다. 마르기도 잘하고 상품의 질도 좋죠. 확실히 바닷바람이 다른가봐요.”
우편주문판매로 영광 굴비를 공급하고 있는 (주)은해 대표 백순기씨의 말이다.
요즘은 건조작업을 마친 대로 저온창고에 보관하지만, 냉동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던 옛 날에는 건조된 굴비를 통보리 속에 넣어 두었다. 그러면 굴비는 습기가 차지 않아 좋았고 통보리는 바구미가 생기지 않는 이점이 있었다.
농협 직판행사 참여로 기반 다져
(주)은해 대표 백순기씨(39세)는 굴비의 본 고장인 영광 법성포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 랐고 그쪽 지방에서 대학을 다녔다. 군대를 마치고 나서 서울에서 맨처음 시작한 일이 택시 운전사. 3개월의 택시 운전사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시작한 일이 굴비 장사였다. 고향인 법성포에서 굴비를 떼다 서울의 백화점에 납품했다. 1년 동안 열심히 뛰어다닌 결과 미도파 · 현대 · 한양 등 3개 백화점과 거래를 틀 수 있었다.
제법 장사가 되어가자 그 동안 물건을 대주던 고향의 거래처 주인이 백화점을 찾아다니며 실제 주인은 자신이라고 소개했다. 백화 점직원들의 반응이 금세 달라졌다. “당신 진 짜 사장 아니죠? ” 그 말 한 마디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그의 가슴을 찔렀다 화끈한 성 격인 만큼 자존심도 강했던지라 창피함을 견디기 어려웠다. 곧바로 법성포로 내려가 가게를 얻고 회사를 차렸다. 가진 돈이 1천만원에 불과했기 때문에 신용거래로 장사를 시작하기로 했다. 1987년의 일이었다.
다시 굴비 장사를 시작했지만, 창피를 당한 바 있던 백화점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 때 그의 관심을 끄는 것이 바로 전해부터 시작된 우편주문판매제도였다. 그러한 제도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바로 이것이다'라는 가슴 설레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우체국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생선은 운송 도중에 상하기 때문에 우편주문판 매용 상품으로 부적합하다는 것이었다. 특히 전남체신청의 반대는 완강했다.
그는 직접 체신부 우정국을 찾아가 하소연 했다. “운송 도중에 조기가 상하지 않게끔 하는 방안을 연구해 보세요. 그러면 도와 주겠소.” 우편주문판매제도 개발의 실무 책임자였 던 김동선 국내우편과장이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 말에 힘입어 백방으로 노력한결과 진공포장기술을 익힐 수 있었고, 우편주문 판매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우체국을 통한 통신판매를 시작함과 동시에 각종 행사장을 돌기 시작했다. 주로 농협이 주관하는 각 지역 특산품 판매장이었다. 우편주문판매를 시작하자 농협조합장이 농협의 각종 행사에도 참여해 달라고 주문해왔다. 그러면 그는 물건을 차에 싣고 밤새워 서울로 올라가 직판행사에 참여한 다음 밤을 새워 내려오곤 했다 젊다는 것. 그리고 부지런 하다는 것이 그의 장기이자 재산이었던 것이다.
“그 당시 법성포에서 굴비장사를 하는 가게가 20군데쯤 됐는데, 나이 많은 사람이 대부 분이었고 젊은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그러니까 서울에서 큰 행사가 있어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죠. 그런데 저는 젊으니까 기동성있게 움직일 수 있었죠. 그래서 양재동이나 용산 · 창동농협 물류센터를 다 먹을 수 있었죠.'
그의 활동무대는 서울만이 아니었다. 전북 지역의 단위농협도 그의 공략 대상이었다.
“시골에서는 농협 부녀부장이 장사를 합니다. 가게에서 팔지 않는 제수용품을 미리 사 두었다 직판행사를 하기도 하죠. 그래서 농협에 10%의 마진을 주고 2만원짜리 굴비를 500두름. 1천두름씩 맡기고 팔아달라고 했어요. 그렇게 해서 전북 농협을 싹 쓸었어요. 한꺼번에 5억원어치나 팔았으니까요.'
실속으로 따지면 10만원짜리가 최고
조기는 옛날부터 제사상에는 반드시 올리는 고급 생선이었다. 조기 중에서도 가장 맛 있는 것은 노르스름한 색깔이 도는 참조기인데, 영광 굴비는 바로 참조기를 말린 것이다. 이러한 조기는 우리 한국인의 전유물이었다.
'이상하게도 조기는 우리나라 사람만 먹었어요. 지금은 중국이나 일본 사람들도 조금씩 먹지만 전에는 전혀 안먹었어요. 또 회로도 안먹었지요.”
기운을 복돋아준다는 뜻에서 조기(助氣)라는 이름이 붙었듯이 조기의 주성분은 단백질이다. 비타민 A · B군과 무기질도 골고루 들어있다. 또한 필수아미노산이 고루 들어있고 단백질의 질이 우수하므로 어린이의 발육과 허약한 사람의 원기 회복에도 좋다. 옛날부터 소화를 돕는 식품으로 알려져 왔는데, 지방의 함량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한방에서는 배탈이나 설사, 또는 배가 부글부글 끓는 소화불량에 순채와 함께 끓여 먹였다.
생조기는 구워 먹어도 좋고 찌개로 끓여 먹어도 좋으나 굴비는 찌개로 끓여서는 안된다. 쪄서 먹어도 좋지 않다. 굴비는 구워 먹거나 찢어서 고추장에 찍어 먹어야 한다. 구울 때는 약한 불로 은근히 구워야 한다.
조기는 1월에 알집이 생기기 시작하므로 그 전에는 알이 없다. 2월에는 알집이 절반 가량 차고, 3월이면 꽉 차 그때부터 4월 사이에 산란을 한다. 그런데 알이 찰 때면 고기의 맛은 떨어진다고 한다. 알을 배면 모든 에너지가 거기로 모이기 때문이다. 알배기 조기가 더 맛있다고 하는 것은 실상은 알의 맛인 셈이다.
영광 굴비는 크기에 따라 값이 다르다. 우편주문판매로 공급되는 굴비는 20〜30cm의 크기인데, 10마리를 기준으로 하여 6만원에서 35만원까지 가격의 차이가 매우 크다. 2〜3cm 크기의 차이에 따라 5〜10만원의 가격 차이가 나는 것이다.
그러나 맛은 크기와는 상관이 없다. 맛을 결정하는 것은 생선의 선도(鮮度)이다. 선도가 좋을 경우 어떻게 말리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굴비를 보관해 두고 여름내내 먹으려면 햇볕에 잘 말려야 하지만, 그것도 봄 햇볕에 말려야지 5월의 강렬한 햇볕에 쬐면 생선이 익어버린다. 익은 생선은 구우면 냄새가 나 역겹다. 손가락으로 누를 때 딱딱한 느낌을 주는 것은 상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크기의 굴비를 고르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까?
“굴비는 1〜 2cm의 크기에 따라 가격 차이가 크기 때문에 실속으로 따지면 10마리에 10만원짜리가 최고죠.”
백순기 사장의 귀띔이다.
아직도 어음 · 수표가 뭔지 몰라
(주)은해가 생산하고 있는 굴비는「은해」라는 상호보다 주인의 이름을 붙인「백순기 영광굴비」라는 상표로 판매되고 있다. 이미 10여년 전부터 자신의 이름을 상표화하여 판매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또한 그것을 굴비 자체로만 판매하지 않고 통보리굴비나 고추 장굴비로 가공해 팔고 있다. 굴비를 통보리 속에 묻은 통보리굴비나 굴비를 찢어 고추장에 절인 고추장굴비는 어머니의 아이디어를 빌려 그가 개발했던 것이다.
(주)은해의 19所년도 굴비 판매액은 60억원 정도. 그 중 농협을 통한 판매가 20억원. 우체국을 통한 판매가 8억원쯤 되며, 나머지는 시장이나 백화점을 통해 팔고 있다. 백화점을 통한 판매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으나「백순기영광굴비」의 명성이 높아지자 그쪽에서 찾아와 거래가 트였던 것이다.
법성포의 연간 조기시장 규모는 1천억원 가량. 230개 업체가 모여 그만한 시장을 형성 하고 있으나, 대부분은 영세업체이고 10여개 업체가 선두다툼을 벌이고 있는데, (주)은해가 매출액 규모에 있어 2위를 달리고 있다.
백순기 사장의 장사 스타일에는 특이한 점이 있다. 그는 신용거래를 원칙으로 하며, 그 대신 신용을 잘 지킨다. 그러다 보니 어음이나 수표가 뭔지를 모르며 장사하고 있다.
“저는 주위 사람들 덕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특히 중매인들이 많이 밀어 줍니다. 보통 2〜3억원 정도는 깔고 들어가요. 그 대신 신용을 잘 지킵니다. 반드시 이자를 붙여 계산 해 줍니다. 이제까지 어음은 물론 가계수표도 안써 봤어요. 그런 것은 종이 자체를 모릅니다. 현금 박치기 아니면 외상이죠. 얼굴을 보고 외상을 주는 거죠.”
또 하나의 장기는 부지런하다는 것, 그리고 계산에 밝다는 것이다. 현재 바다에서 잡아올린 조기를 경매에 부치는 공판장이 있는 곳은 인천 · 군산 · 법성포 · 목포 · 여수 · 삼천 포. 마산. 부산. 추자도 · 제주도 등 10군데나 된다. 그 많은 곳의 조기 어황과 시세에 밝아야 하며, 그 많은 곳을 열심히 쫓아다녀야 한다.
“장사의 요체는 물건을 잘 사고 잘 파는 겁니다. 물건을 잘 사야 잘 팔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망을 많이 합니다. 어느 지역은 사람들이 물건을 많이 사갔으니까 물 건 값이 떨어지겠다, 혹은 물건이 적게 나왔으니까 앞으로 물건 값이 오르겠다는 예측을 정확히 해야 합니다. 이익을 많이 내려면 사는 데서 50% 벌어야 하고 파는 데서 50% 벌 어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