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현재의 거울이자 미래의 거울
외도 여부가 어떻든, 대민 관계의 일상적인 업무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관공서에서 100년사를 만들고 40년사를 만든 다는 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선 자신들이 걸어온 발자취를 역사책으로 정리하겠다는 발상 자체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자 미래의 거울이니까.
전통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정보통신부(옛 체신부)는 우리나라 정부 부처 중 맨 처음으로 자신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자랑스러운 전통을 지니고 있다. 전란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인 1950년대 후반에는 <대한체신사업연혁사>라 는 두툼한 책을 발간했고, 1960년대 후반에는 <한국우정사> 라는 2천 쪽이 넘은 두 권짜리 역사책과 한 손으로 들기 힘들만큼 무거운 <전기통신80년사>를 펴냈다. 1980년대 중반에는 <우정100년사>와 <전기통신100년사>도 만들었다. 또한 매년 백서 펴내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다. 선배 체신인들은 해방이 되자마자 '체신문화협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체신부 기관지인 <체신문화>(본지의 전신)를 발간했다. 남북 분단과 좌우의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혼란스럽기 그지없던 시절임에도 그들은 한눈팔지 않고 잡지 발간하는 일부터 서둘렀다. 그들의 역사 인식과 문화 의식이 얼마나 투철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라 하겠다. 정보통신부는 우리나라 정부 부처 중 역사가 가장 깊다. 우편사업은 이미 1984년에, 그리고 전기통신사업은 1985년에 사업 개시 100년을 맞았다. 그러다 보니 기술과 관련된 업무는 대부분 체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전기'가 그렇고, '해운' 이며 '항공'이 그렇다.
'빨리빨리' 문화의 어두운 그림자
그처럼 자랑스러운 전통을 이어받아 산하기관에서 100년사를 펴내고 40년사를 펴냄은 환영해 마지않을 일이다. 하지만 거기에도 함정은 있었다. 소위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가 거기서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100년사 발간 작업은 불과 1년 안에 끝났다. 좋게 표현해서 1년이다. 출판사가 발간 기관과 계약을 맺고, 중간 중간 보고하러 다니다 보면, 실제로 집필 작업을 할 수 있는 기간은 6개월 정도밖에 안 된다. 보다 솔직히 털어놓으면 3~4개월에 600여 쪽에 이르는 책의 원고를 쓴 경우도 있었다.
역사책이 뭔지 아는 사람이라면 언감생심 발상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뭐든 하면 된다는 풍조가 만연해 있는 게 우리 사회다. 역사책이라 해서 6개월 동안에 못 만들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용이 잘되고 못되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겉으로 볼 때 번듯하게 보이기만 하면 된다. 책을 내는 것도 기관장이나 사장의 입장에서 볼 땐 하나의 업적이다. 다시 말해 낯을 낼 수 있는 기회다. 내용이 어떻든, 겉으로 볼 때 화려하게 보이는 책을 만들어, 출판기념회를 한답시고 많은 사람을 모아놓고 축배를 들면서 생색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상대방의 요구가 그렇기에 출판사는 제 때에 맞춰 책을 내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날림 공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책의 집필은 뼈를 깎는 작업임에도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후다닥 해치운다. 아이를 낳으려면 적어도 열 달은 채워야 함에도 그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다. 열 달을 채우지 못한 아이가 미숙아일 수밖에 없듯 날림 공사로 만든 책이 제대로일 리 없다.
'빨리빨리' 문화를 공무원의 적당주의라 탓할 수도 없다. 보다 충실 한 책을 만들기 위해 역사책 발간을 다음해까지 연장하고 싶어도 연장할 수 없다. 그 해에 책정된 예산은 그 해에 다 써야 하니까. 또 전 해부터 서둘러 준비하고 싶어도 마음뿐이다. 예산의 뒷받침이 없으면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으니까.
그러다 보니 화려하게 치장한 책치고 영양가 있는 책은 별로 없다. 글 쓰는데 참고하고자 이 책 저 책 뒤져봐도 눈길을 끄는 대목은 별로 없다. 화려한 책일수록 내용은 보잘 것 없다. 빈 수레가 요란할 뿐이다. 수수하지만 가을배추처럼 속이 꽉 찬 문고판이 그래서 그리 운지도 모른다.
'먼 앞날을 걱정하지 않으면 반드시 가까운 시일에 근심이 생긴다(人無遠慮 必有近憂)'라는 말이 있다. 역사책 감수 작업을 하면서 논어에 나오는 이 말을 되뇌게 됨은 왜일까?
요즘 중국에서는 왕중추(王中求)가 쓴 <디테일의 힘>이라는 책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한다. 책에서 왕중추는 100-1=0이라 주장한다. 1%의 실수가 100%의 실패를 낳을 수 있다는 말이다. 경쟁사의 제품에 비해 1% 못 미칠 경우, 그 회사 제품은 설 땅을 잃을 수 있음을 경계하는 말이다.
'만만디' 문화에 젖어 있던 중국인들이 드디어 섬세함과 치밀함의 중요함을 깨닫기 시작하나 보다. 자원 강국인 중국이 '적당주 의'에서 벗어나 '디테일'까지 갖추게 된다면 우리가 설 땅은 어딜까? 몸이 오싹해지는 질문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