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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항복으로 갑작스럽게 찾아온 8 • 15 광복은 전기통신 분야에 상당한 혼란과 공백을 가져왔다. 핵심 기술 분야를 장악하고 있던 일본 관리가 물러간 공백을 채 메우기도 전에 한국전쟁이라는 파천황(破天荒)의 전란이 닥쳐 이 땅의 통신 시설은 초토화되고 말았다.
체신부 청사(1953~1977년)
이승만 대통령 영등포분국 시찰 (1960. 2. 28.)
서울중앙전화국 서분국 개통식(1958. 1. 7.)
국립체신고등학교 모표와 배지
정부 재정을 비롯하여 절대 빈곤 속에서도 전기통신 관계자들은 UNKRA 및 ICA 차관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전기통신 시설을 복구하는 한편, 세계 기술 발전 추세에 맞춰 새로운 음향전신기 • 자동인쇄 전신기 • 모사전신기 등을 받아들여 통신 영역을 확대했다.
서울 • 부산 • 춘천 • 수원에 처음으로 자동식 전화를 설치 • 운용했으며, 시내 • 외 교환 시설과 무선전화 시설을 대폭 확충하는 등 국가 경제 발전 규모에 걸맞게 통신 환경을 개선해 나갔다.
자료 제공 : 한국정보통신20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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