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소리를 멀리 보내는 방법을 고안하여 언어와 상호 보완적인 통신수단으로 사용하여 왔다. 인류의 문자 발명은 통신발달의 획기적인 계기가 되어 우역 등과 같이 서신을 멀리 전달하는 방법이 발전해 왔으며 적의 침입이나 긴급한 상황을 알리는 깃발, 봉화, 신호연 등의 시각신호와 북, 나팔, 징, 종과 같은 소리신호 등의 간접적인 통신수단 등이 활용되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봉화는 기원전부터 사용하였던 것으로 문헌에 나타나고 있으며 고려 의종3년(1149년) 때 봉수제도로서 확실히 정착되었다. 또한 오늘날 우편의 전신인 우역제도는 신라 소지왕(487) 때부터 기록에 나타나고 있다.
솟대
새를 상징하는 조각목을 나무로 만들어 마을 입구에 세워놓은 것으로, 이를 중심으로 정월 대보름날 마을의 제관이나 무당이 통신의 중계자가 되어 마을 사람들의 기원을 솟대를 통하여 하늘에 전하고 그 뜻을 받아 마을 사람들에게 전달했다. 인간의 통신역사 중 가장 원초적 형태의 하나인 솟대는 인간과 하늘과의 통신을 위한 안테나였다.
봉수
고대 통신방식 중 가장 과학적이며 체계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이 봉수제도이다. 이는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꽃에 정보의 내용을 변화시켜 원거리까지 신속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한 제도로 산악국가였던 우리나라는 남해안에서 함경도 종성까지 전국을 연결하는 완벽한 봉화통신망이 존재하였다.
파발
파발제도는 긴급한 군사정보와 변경(邊境)의 급보, 화급한 공문서를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하고자 시행되었다. 이 제도는 운영상 경비가 많이 들고 봉수보다 전달속도가 느리지만, 문서로 전달되어 보안유지가 쉽기 때문에 군사정보 전달이나 행정 전용수단으로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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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소리를 멀리 보내는 방법을 고안하여 언어와 상호 보완적인 통신수단으로 사용하여 왔다. 인류의 문자 발명은 통신발달의 획기적인 계기가 되어 우역 등과 같이 서신을 멀리 전달하는 방법이 발전해 왔으며 적의 침입이나 긴급한 상황을 알리는 깃발, 봉화, 신호연 등의 시각신호와 북, 나팔, 징, 종과 같은 소리신호 등의 간접적인 통신수단 등이 활용되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봉화는 기원전부터 사용하였던 것으로 문헌에 나타나고 있으며 고려 의종3년(1149년) 때 봉수제도로서 확실히 정착되었다. 또한 오늘날 우편의 전신인 우역제도는 신라 소지왕(487) 때부터 기록에 나타나고 있다.
솟대
새를 상징하는 조각목을 나무로 만들어 마을 입구에 세워놓은 것으로, 이를 중심으로 정월 대보름날 마을의 제관이나 무당이 통신의 중계자가 되어 마을 사람들의 기원을 솟대를 통하여 하늘에 전하고 그 뜻을 받아 마을 사람들에게 전달했다. 인간의 통신역사 중 가장 원초적 형태의 하나인 솟대는 인간과 하늘과의 통신을 위한 안테나였다.
봉수
고대 통신방식 중 가장 과학적이며 체계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이 봉수제도이다. 이는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꽃에 정보의 내용을 변화시켜 원거리까지 신속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한 제도로 산악국가였던 우리나라는 남해안에서 함경도 종성까지 전국을 연결하는 완벽한 봉화통신망이 존재하였다.
파발
파발제도는 긴급한 군사정보와 변경(邊境)의 급보, 화급한 공문서를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하고자 시행되었다. 이 제도는 운영상 경비가 많이 들고 봉수보다 전달속도가 느리지만, 문서로 전달되어 보안유지가 쉽기 때문에 군사정보 전달이나 행정 전용수단으로활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