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개시일이냐 청사 준공일이냐
체신부 내에서‘체신의 날’제정을 공식적으로 제기한 부서는 우정국이었다. 우정국에서 처음 내놓은 아이디어는‘체신의 날’이아닌‘우정기념일’이었다. 1956년, 체신부 간부회의에서 우정기념일 제정 문제가 공식적으로 논의되었다. 기념일을 정하자는 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우정기념일로 국한하자는 데는 다들 반대했다. 체신사업 전체로 범위를 넓혀‘체신의 날’로 정하자고 했다. 그리고 신식 우편제도를 실시한 날을 기념일로 정하자는 데까지 쉽게 합의했다. 신식 우편제도를 실시한 날이 언제냐로부터 헤매기 시작했다. 당초 우정국에서 제시한 안은 우정총국 개국식을 거행한 날로 갑신정변이 발생한 10월 17일(양력 12월 4일)을 기념일로 삼자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 안에 대해 별 이의가 없었다. 그런데 누군가“갑신정변은 우정총국 청사인 옛 전의감(典醫監) 건물의 개수공사가 끝나 그 낙성을 축하하는 연회가 베풀어 졌을때 일어난 것인데, 그 날 개국식을 거행한 게 맞느냐”며 이의를제기하자, 혼란에 빠졌다. 개국식인지 낙성식인지 분명치 않았던 것이다. 업무 개시일이냐 청사 준공일이냐를 놓고 의견이 양분되자, 신식 우편제도를 도입할 당시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 다시 고찰했다. 그 결과 기념일로 삼을만한 네 가지 사실이 밝혀졌다.
첫째는 우정사(郵程司)의 설치였다. 우편과 전보를 담당할 기관으로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 소속하에 우정사를 설치했는데,그 날이 바로 1882년 12월 4일(양력 1883년 1월 12일)이었다. 그때 홍영식이 우정사 협판으로 임명돼 통신과 인연을 맺었다.
둘째는 우정총국(郵征總局)의 개설 명령을 내린 날이다. 고종은 1884년 3월 27일(양력 4월 22일) 신식 우편제도를 전담할 기관으로 우정총국을 설치하라는 전교를 내리고 홍영식을 총판으로 임명했다.
셋째, 1884년 10월 1일(양력 11월 18일) 구 전의감 건물에서우정총국이 우편 업무를 개시했다.
넷째, 1884년 10월 17일 우정총국 총판 홍영식이 청사 준공식을 거행하고 축하연을 개최했다.
이 네 가지 사실을 가지고 재론했지만, 역시 업무 개시일이냐축하연 개최일이냐로 양분되었다.
그 과정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변수로 등장한 것이 문위우표발행일이었다. 한국 최초의 우표인 문위우표가 실제로 업무 개시일에 발행됐는지, 그 후에 발행됐는지 알 길이 없었다. 대한우표회는 그 우표의 발행일이 12월 4일이라 했다. 업무 개시일에 우표까지 사용했다면 그 날을 기념일로 함이 타당하나, 그렇지 않다면 우표를 최초로 사용한 날로 함이 타당하다는 주장이제기되었다.
갑신정변으로 널리 알려진 날 기념일로 정해 체신
부 간부회의에서 그 같은 사실을 놓고 논란을 거듭했다. 그러자 체신부차관 최재호가 ‘체신의 날’을 어느 날로 하느냐 보다 제정 자체에 뜻이 있으므로 12월 4일을 주장했다.
“12월 4일 우정총국 청사 낙성식에 여러 고관과 외교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화파의 중진인 우정총국 총판 홍영식의 주재로 신식 우편제도 개시를 축하하는 연회가 열렸고, 이에 편승해 개화파 정객들이 정변을 일으켰다는 것은 일반 국민에게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 날의 축하연이 우편 업무 개시 관련이든청사 준공 관련이든, 체신사업은 이와는 관계없이 언제나 문명개화의 선구로서 사회의 첨단에서 활동해야 할 사명을 띠고있다. 그런 점에서 큰 의의를 발견할 수 있으므로 갑신정변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12월 4일을‘체신의 날’로 정하는 게 좋겠다.”
최재호의 주장에 따라‘체신의 날’은 12월 4일로 정해졌다. 1956년 6월의 일이었다.
제1회‘체신의 날’기념식은 광화문에 있는 중앙전신국에서 거행되었다. 역대 장ㆍ차관과 국회 교통체신위원장을 초청해 기념품을 증정하고, 우수 종사원과 장기 근속자를 표창했다. 또한 체신사업이 성장, 발전해온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체신 연혁보고회도 가졌다.
‘체신의 날’은 그 뒤 1972년, 4월 22일로 변경되었다. 그 문제가 재론된 것은 신상철 장관 때였다. 체신기념관을 개관한 바있는 신상철은 우취 선장 등 문화사업에 관심이 많았다. 그가 주재한 간부회의에서‘체신의 날’을 바꾸기로 하고, 어느 날로하느냐는 문제를 놓고 토의했다. 결론은 엉뚱한 방향으로 내려졌다. 우정총국을 개설하라는 고종의 칙령이 내려진 날을 생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에 더 무게가 실려 4월 22일로 결정되었다. ‘체신의 날’은 1973년부터 그렇게 4월 22일로 바뀌었다. 1995년 체신부의 명칭이 정보통신부로 바뀜에 따라‘체신의날’도‘정보통신의 날’로 그 명칭이 바뀌었다.
하지만 4월 22일을‘정보통신의 날’로 받아들이기엔 어딘지 떨떠름한 구석이 있다. 12월 4일에서 벗어난 것은 매우 다행스런 일이다. 그 날의 우정총국 낙성식을 계기로 갑신정변이 일어났고, 그 결과 우정총국이 문을 닫았으며, 우편 창시자인 홍영식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그 날만큼은피해야 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우편사업 개시일인 11월 18일로변경했어야 함에도 웬일인지 4월 22일로 바뀌었다. 고종이 우정총국의 개설 명령을 내린 날을 생일로 삼아야 한다면, 그보다2년 먼저 설립된 우정사부터 챙겼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