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앞두고 발표된 정부조직법요강에는 행정 각 부가 국무총리 외에 외무부·내무부·국방부·재무부·법무부·문교부·농림부·상공부·사회부·교통체신부 등 10부로 짜여 있었다. 그리고 국무총리 직속으로 총무처·기획처·법제처·공보처 등 4개 처를 두기로 했다.
이 요강이 발표되자, 명단에서 빠진 각 행정기관은 독립을 꾀하려 맹렬한 막후공작을 벌였다. 치안 분야는 독립을 원했고, 수산이나 보건·노동 분야도 별도 부처로 독립하길 바랐다.
교통체신부의 분리안도 당연히 화제 거리가 되었다.
교통체신부로 통합한다는 안에 대한 체신부 내부의 반응은 미묘했다. 총무국·우무국·전무국·저금보험국·재정국·자재국 등 6개 국으로 구성돼 있는 본부의 조직 중 사업 부서인 우무국과 전무국·저금보험국 직원은 환영하거나 방관하는 입장이었는데, 사업 지원 부서인 총무국이나 재정국·자재국 직원은 반대했다. 그 중에서도 전무국 직원이 통합안에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그들이 찬성하고 반대하는 속셈을 들여다보면 극히 이기적이었다. 찬성파는 교통부와 통합되더라도 그들이 소속돼 있는 국은 그대로 존속할 것이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는데다, 또 교통부와 통합하면 무임승차의 혜택을 입게 돼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에 비해 반대파는 교통부와 통합하게
되면 소속 국이 없어질 것이며, 그리 되면 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교통부와의 통합안으로 체신부가 시끌시끌
그러던 어느 날 체신부장 서리인 총무국장 박상옥이 자재국장 최재호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했다. 체신부의 핵심 간부인 두 사람은 인사 문제로 충돌한 뒤 오랫동안 냉전을 계속하고 있어 꽤나 껄끄러운 사이였다.
“통합 문제를 둘러싸고 부론(部)이 분열돼 있어 걱정이 크네요.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이를 분리시켜야지, 그렇지 못하면 체신사에 영원히 오점을 남기게 돼요.”
박상옥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며, 헌법 및 정부조직법의 기초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국회의원 서상일과의 술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부탁했다. 최재호는 서상일과 같은 대구 출신이어서 잘 아는 사이였던 것이다.
두 사람은 묵은 감정을 씻고 서로 합심해 분리안을 성사시키자고 다짐했다. 그들은 서상일·허정 등 몇몇 국회의원을 음식점으로 초대해 술대접을 하며 설득 작업에 나섰다. 최재호가 일본의 예를 들어 가며 교통과 체신이 분리돼야 할 필요성을 설명했다. 일본이 2차 세계대전 중인 1943년 12월 철도성과 체신성을 통합해 운수통신성으로 개편했으나, 운영상의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결국 체신성으로 환원한 일이 있었는데, 구체적으로 그 사례를 들어가며 설득했다.
박상옥과 최재호는 그렇게 국회의원을 찾아다니며 체신부는 교통부와 분리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럼에도 통합 찬성파는 그들대로 국회의원을 찾아다니며 사업 발전을 위해 절대로 통합해야 한다고 열을 올렸다.
아무튼 국회의원 서상일을 상대로 한 로비의 효과는 컸다.
국회는 10부로 한다는 원칙을 깨뜨리고 교통과 체신을 분리해 11부 4처로 한다는 정부조직법안을 만들어 본회의에 넘겼다. 열띤 찬반의 토론을 거듭한 뒤 표결에 들어가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치안부 독립안이나 수산부·보건부·노동부 설치안은 부결됐으나, 교통부와 체신부의 분리안은 가결되었다.
심심하면 불거지는 교통부·체신부 통합설
체신부는 그렇게 교통부와의 통합에서 벗어나 독립 부처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양 부처의 통합 문제는 그 뒤로도 정부조직 축소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거론되었다. 반드시 두 부처를 통합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교통부와 체신부는 같은 사업 관청이고, 국회 상임위원회 역시 하나로 통합돼 있어 두 부처를 통합해도 무방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1956년 5월의 부통령선거에서 여당인 자유당이 패하자, 이승만 정권은 이탈된 민심을 수습하고자 행정부 기구의 개편을 단행하기로 했다. 그때 역시 교통부와 체신부의 통합론이 대두되었다.
그 해 7월 비가 몹시 내리던 날 밤, 체신부차관 최재호는 급히 만나자는 이응준 장관의 연락을 받고 집으로 찾아갔다.
“오늘 오후 늦게 국무회의에서 교통·체신 양 부처를 통합해 교통체신부로 하는 11부안이 통과됐어요.”
최재호와 마주앉자 이응준은 풀이 죽은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아니, 왜 반대하지 않으셨어요?”
깜짝 놀란 최재호가 따지듯 물었다.
“전연 예고도 없이 갑자기 다른 안건에 이어 제출됐기 때문에 반대할 겨를이 없었지. 이종림 교통부장관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지만, 내심 반기는 눈치더라고….”
최재호는 화난 표정으로 이응준을 바라보았다. 정말 딱한 노인이 아닐 수 없었다. 주무 장관이 말 한 마디 못하고 앉아 있었으니 다른 장관이 애써 반대할 리 없고, 따라서 통합안은 싱겁게 통과되었으리라.
“늙은 사람이 모처럼 장관 자리에 앉았는데, 하필 내 때에 체신부가 폐지된단 말인가. 다들 내가 체신부를 팔아먹었다고 할 텐데,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이응준은 장탄식을 했다.
최재호는 너무 염려하지 말라고 위로하고, 그 방법을 일러주었다.
“전임 장관 때에도 통합 문제가 대두됐으나 체신부장관이 국무회의에서 사의를 표명하며‘저 한 사람 그만두는 건 문제아니지만, 국가적인 견지에서 볼 때 교통부와 체신부의 통합은 불가합니다. 그 이유는 이러이러합니다.’라며 극력 반대했습니다. 그래서 대통령께서 재고하라는 분부를 내린 바 있으며, 국회에 대해서도 저희가 총동원으로 공작을 펼쳐서 모면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장관님은 우선 정부측에서 통합을 하지 못하도록 최후의 각오를 가지고 대통령께 통합의 부당성을 잘 설명하셔야 합니다.”
며칠 뒤 이응준이 국무회의에서 통합의 부당성을 설명했고, 법제실장 신태익이 반대 의견을 내놓자 이승만이 재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림으로써 두 부처 통합안은 무산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