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역사
그때 그 시절우리들의 새 유니폼
새 옷이다. 까실까실한 새 옷이 살결에 닿으면 괜스레 맘이 설랬다.
늘 새 옷은 자세를 바로 세우고,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대전엑스포가 열리고, 금융실명제를 실시한 1993년 여름.
우리에게 다가왔던 새 유니폼 이야기다.
글.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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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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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소식
빨간 우체통의 기억
매년 봄이 되면, 전국 우체국에서는 우체통을 청소하고 도색하는 등 우체통 정비에 정성을 쏟는다. 묵은 때를 벗어던지고 본연의 색을 내비치는 빨간 우체통. 우체국의 상징물로서, 그리고 사람과 사람의 정을 이어주는 매개체로서 국민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아왔다. 하지만 전화, 이메일, SNS 등 통신기술의 발달로, 1993년 5만 7천여 개나 되었던 우체통은 20여 년이 지난 오늘날 1만 5천여개(2014년 기준)로 많이 줄어들었다. 많은 영화나 소설, 가요 등에서 단골소재로 등장하던 우체통의 모습은 앞으로는 더 이상 보거나 듣기 힘들어질지도 모른다. 우리의 가슴 속 따뜻함으로 기억되는 빨간 우체통, 그 30여 년 전 모습을 들여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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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소식
군인에게 편지를 쓴 기억이 있나요?
1,800년 전 작성된 이집트 출신의 한 군인이 쓴 편지가 몇 년 전 회자된 적이 있다. 로마 군단에 속해있던 ‘아우레리우스 폴이온’이란 군인이 어머니와 동생들에게 쓴 편지가 100여 년 만에 판독되어 화제가 되었는데, 그 편지에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통신망이라고는 거의 없던 그 시절, 군인에게 ‘편지’는 가족, 연인과의 가장 중요한 연결 고리였다.
오늘날에도 군인에게 ‘편지’란, 종교시설에 가서 먹는 초코파이보다 또는 TV 쇼에서 나오는 걸
그룹보다 더 큰 위안을 줄 수 있는 매개체이다. 낯선 환경에서 고된 훈련을 마친 후 가족, 친구, 연인에게 온 편지를 읽다 보면, 굳게 닫힌 마음이 어느새 스르르 녹아내린다. 이러한 편지를 군인과 편리하게 주고받을 수 있게 된 건 ‘군사우편’이라는 제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군인의 소통을 오랫동안 책임지고 있는 ‘군사우편’ 그 역사를 들여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