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신부, 통신·전산 지원 뒷받침
당시 우체국 사보는 <체신>이라는 이름으로 발행되고 있었고 1988년 8월부터 11월까지 4개월간 올림픽 특집을 담았다. 8월 특집의 첫 번째 기사인 ‘인류의 제전, 이렇게 지원한다’ 중 일부를 발췌해 소개한다.
‘서울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는 여러 분야 중 특히 통신과 전산은 대회 운영의 중추신경이기 때문에 그 준비 및 운영의 성패 여부가 대회의 성공적 개최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key point라는 사실은 자명한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지원하는 부서가 바로 우리가 몸담고 있는 체신부다.’
그리고 3개월 후 11월호 특집의 ‘완벽했던 우편물 안전활동’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멋진 대회였다. 참, 잘 해냈다. 만나는 사람마다 너나없이 자연스레 나오는 말이다. 대회 기간 동안에 해낸 우리 국민의 높은 수준은 한결같이 누구에게나 칭찬받아 모자랄 것이 없었다. 그중 한몫을 해도 단단히 한 것 중 하나가 대회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도록 한 완벽한 통신지원이었다.’
체신부는 우정 분야, 전파관리 분야, 전기통신·전산 분야로 세분해 체계적으로 지원했는데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었다. 대회 운영을 위해 총 3만 1,500회선의 통신을 공급했는데 이는 바로 전 대회인 LA 올림픽보다 약 40% 많은 양이며 통신운영요원만 3천 명에 달했다. 덕분에 전 세계 방송사에서 대회 진행 상황을 자국에 중계하고 5천 명에 달하는 취재기자들이 기사 송고를 하는 데 불편 없이 이용할 수있었다.
임시우체국 통해 전 세계에 활약상 전파
임시우체국의 활약도 눈부셨다. 각 경기장, 프레스 센터, 선수촌 및 기자촌 등에 총 67개소가 설치됐는데 올림픽 개최 한 달 전부터 끝난 뒤인 10월 9일까지 약 두 달간 운영됐고 영어, 일어, 중국어, 불어 등 외국어 능력이 출중한 진행요원들이 배치됐다. 이 기간 총 70만 통의 우편물이 접수됐는데 이중 60만 통이 전 세계로 보내졌다. 대한민국의 눈부신 발전상이 전파와 우편을 타고 전 세계로 알려진 것이다. 나도 당시 해외 펜팔 친구들에게 88 올림픽 우표와 기념품을 보내주며 으스댔던 기억이 난다. 해외 펜팔이 뭔가 싶겠지만 그땐 그런 게 유행이었다.
요즘이야 한류 드라마와 K-POP 덕분에 세계에서 한국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겠지만 그때만 해도 해외여행조차 자유롭지 않은 때였다.(해외여행 자율화는 올림픽 다음 해인 1989년에 이뤄졌다.) 한국은 일제 강점기와 전쟁을 겪은 지 40여 년밖에 안 된 개발도상국이었고 해외 원조를 받는 나라였다. 그런 나라에서 올림픽이 열린 것이다. 그것도 160개국 참가라는역대 최대의 규모로 말이다. 이후 세계적으로 한국의 위상이 크게 높아졌고 문화적, 경제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할 수 있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되며 도쿄올림픽 개최 여부가 다시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갈팡질팡하는 도쿄 올림픽 뉴스를 보고 있자니 88 올림픽 주제가가 머릿속에 맴돈다. 손에 손 잡고~ 벽을 넘어서~우리 사는 세상 더욱 살기 좋도록~!
1988년 발행된 <체신> 속 올림픽 특집 기사中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