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시스템 마비 우려에 사회 혼란
밀레니엄 버그란 서기 2000년이 오면 컴퓨터가 오작동을 일으킬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당시 구축된 IT시스템들은 연도표기를 YY/MM/DD 형태로 표시했는데 새로운 2000년을 표기할 방법이 없어 시스템이 00/01/01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컴퓨터에 기반한 각종 시스템이 혼란을 일으켜서 은행에 넣어둔 예금이 없어지거나 관공서, 병원, 교통이 마비되고 심지어 핵폭탄이 발사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컴퓨터 전문가들은 9시 뉴스에 나와 적어도 한 달 치의 식량과 생필품을 준비하라고 경고했고 정부는 밀레니엄 버그 종합상황실을 설치했다. 사이비 종교가 기승을 부리고 은행엔 예금을 찾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외국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속출했다. 혼란도 그런 혼란이 없었다. 드디어 12월 31일. 제야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2000년 1월 1일로 넘어간 순간! 거짓말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긴장하고 준비했던 것에 비해 마치 농담 같은 해프닝이었다. 그게 벌써 20년 전의 일이다.
인터넷 시대 비약적 발전 계기
그러나 실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 아니다. 일상의 근간에 정보통신 기술이 얼마나 깊이 자리 잡았는지, 만약 정보통신망이 흔들린다면 얼마나 큰 혼란이 초래될것인지 전 세계가 뼈저리게 자각한 것이다. 당시 막 시작되던 인터넷 시대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2000년 1월에 발행된 우체국 사보는 ‘새천년 정보통신부에 바란다’를 특집으로 실었다. 당시 남궁석 정보통신부 장관(1938~2009)의 신년사를 일부 발췌해 본다.
‘제가 지금까지 늘 해온 얘기입니다만, 인터넷 세계에서는 시공이 초월됩니다. (중략) 이제 그곳에서 전자상거래도 일어나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사고파는 일용품들, 아기 기저귀나 화장지까지도 주문을 하면 집까지 배달되는 그런 시대가 올 겁니다. 그리고 아주 빠른 시간 내에 교육이 그곳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우수한 학생들이 전 세계 교수들의 강의를 마음대로 듣고 학점을 딸 수 있는 시대가 올 겁니다. 병원의 진료도 이제는 인터넷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많은 금융거래가 인터넷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비대면 사회… 메타버스 시대로
20년이 지난 지금 남궁석 장관의 말은 노스트라다무스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던 중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사회가 훨씬 앞당겨졌다. 밀레니엄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은 아예 가상현실 세계를 구축하고 아바타를 만들어 그 안에서 경제, 사회 활동을 한다. 이른바 메타버스(Metaverse. 가상을 의미하는 Meta + 세계를 의미하는 Universe)의 시대다. 흐름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자료를 찾고 노력하고 있지만 가끔은 손편지 한 장이 그립기도 하다.
새천년이 열리던 그해에 우정사업본부가 출범했다. 그전까지 정보통신부장관이 직접 관장하던 우편, 우체국 예금 등 우정사업 관련 기능을 우정사업본부장이 총괄하여 경영하도록 한 것이다. 1년간의 준비 끝에 4만여 명의 인력과 3,600여 명의 우정관서, 그리고 3조 6천억 원에 달하는 예산을 총괄하는 새로운 정부 조직이 탄생했다. 우정사업의 새로운 전기가 열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