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숭 시리즈”는 어떤 동기에서 시작하셨나요?
처음에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의 모습에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모습을 작품으로 그려 제 자신을 치유하는 목적에서 ‘내숭’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업실의 거울을 통하여 화폭에 담긴 사람이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다른 사람인 줄로만 알았던 화면 속의 내가 생김새뿐만 아니라 ‘당당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어정쩡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그 본질까지도 저의 모습과 너무 닮아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고백적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내숭의 사전적 의미는 “겉으로는 순해 보이나 속으로는 엉큼함”입니다. 저는 내숭이 우리 사회에서 여자에게 더 어울리는 말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자의 전유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내숭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보편적 욕구에 따라, 보통의 사람들이 자신의 모자란 부분을 감추고 좋은 모습을 보이고자 하는 데서 나타나는 흔한 ‘불일치’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거의 본능적으로 나타나는 것이기도 한데, 결국 사회의 통념에 따라 개인이 자아의 정체성을 양보하는 현상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동양화가 가진 힘은 무엇일까요?
조상 대대로 내려오며 우리나라 정서를 한껏 우려낸 동양화는 그 존재만으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 동양화’라고 한다면 이 산수화와 사군자도 등을 생각하실 것 같은데요, 오늘날에는 동양화와 서양화의 경계가 모호해졌다고 할 정도로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정말 많은 작가들이 독특한 정서를 담은 ‘한국화’를 그리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저의 작은 바램이 있다면, 우리나라 미술시장이 훨씬 더 성장하고 많은 사람들이 미술작품을 향유할 수 있는 그런 구조로 발전해 갔으면 좋겠고, 저는 그런 구조와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우체국 택배 박스가 밥상이 되거나 빨대가 젓가락이 되는 발상이 기발합니다. 표현의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찾으시나요?
제 작품이 저의 자화상이니만큼, 실제로 생활하는 순간순간에 작품에 대한 영감을 얻습니다. 예를 들어서 저의 작품 중 ‘투혼’ 은 햄버거 세트를 먹고 있는 장면을 형상화 한 것인데요, 제가 작업을 하면서 끼니를 거르다가 쓰러지겠다 싶은 순간에 전투적으로 섭식하는 제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내숭이구나!’하고 이를 소재로 한 것입니다. 빨대로 감자튀김을 집어 먹는 것은 그림을 그리던 중인지라 손에 기름을 묻히지 않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운치 있다’는 제가 저 혼자서 독점하는 공간인 화장실에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비밀스러우면서도 운치 있는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를 형상화한 것입니다. 저의 아이디어는 저의 생활과 경험에서 불현듯 떠오르고, 그것이 더 보편적인 것일 때 더 많은 사랑을 받는 것 같습니다.
저의 작품은 제 실체를 고백하고 홀로서기 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의 작품이 특히 많은 분들의 공감을 얻는 것 같은데요, 실존인물의 서사적 스토리가 작품에 반영이 되어 있어 여성분들은 제 작품을 보고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듯도 합니다.
그림에 대한 관심과 소질, 그 시작이 어디부터였는지 궁금합니다
저희 부모님께서는 미술 전공자는 아니지만, 미술에 항상 관심이 많으셔서 어렸을 때도 여행가면 꼭 미술관을 데려가 주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친언니가 먼저 자연스럽게 미술을 하게 되었으며, 저 또한 언니의 영향을 받아 미술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한국화를 선택한 이유는 고등학교 1학년 무렵 동양화, 그 중에서도 수묵화에 매력과 재미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오주석 선생님의 ‘한국의 미 특강’이라는 책에서 김홍도 선생의 그림 등을 아주 재미있게 해설하고 우리 한국화에서 나타났던 수묵화의 높은 경지를 설명해주는데요, 당시 그 책을 읽었을 때의 감동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수묵은 여러 번 덧칠을 해도 화면이 탁해지거나 두꺼워지지 않고 오히려 덧칠을 통해서 투명한 느낌을 줄 수도 있고, 농담의 묘미를 살릴 수 있는 특징이 있어 아주 매력적인 매체입니다.
앞으로의 활동계획은 어떤가요?
삶이 변화하면서 자연스레 작업도 바뀌듯 미래 작업에 대해서는 그 가능성에 대해 계속 열어 놓고 있습니다.
저는 평면 작업이 이외에 평소 영상과 설치 작업에 많은 관심이 있습니다. 평면 작업에서는 보여주지 못하는 입체 작업의 새로운 시도는 여러 가지 예상치 못한 결과를 이루어 흥미롭습니다. ‘내숭’을 실제로 보고 만질 수 있는 것으로 만든다면, 그림으로 접하는 것보다 더 ‘내숭’이라는 실체를 직관적이고도 가깝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요. 언젠가는 ‘내숭’을 시선이나 통념이라는 개념으로 추상화 해나갈 수 있으며 시간이더 흐르고 시대가 바뀐다면 새로운 주제를 들고 나와야 할것입니다.
최종 목표라고 하는 것은 우선 작가로서 일가를 이루는 것이고, 그와 아울러서 미술이 생활 속에 스며들어서 자리잡고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문화와 구조를 만드는 일에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 예술에 나타나는 전통문화를 대중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전통문화 전도사’의 모습도 상상해 봅니다.
전시, 작품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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