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옛날 이야기, 들어보실래요?
단양 영춘우체국 박미예 씨
초심 그대로의 진심
아직은 산수유뿐이다. 작고 노란 봄꽃이 우체국 바깥에 수줍게 피어있다. 머잖아 분홍빛 진달래며 연둣빛 새순이 주위의 산들을 ‘새 옷’으로 갈아입힐 것이다. 면 소재지에 자리하고 있음에도, 계절마다 달라지는 자연의 빛을 이곳에선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봄날이 아니라도 영춘우체국엔 언제나 꽃이 핀다. 박미예 씨와 그의 동료들이 피우는 ‘웃음꽃’이 그것이다. 고운 꽃이 ‘안팎으로’ 피어나는 새봄이 그래서 더 눈부시다.
“대강우체국에서 근무하다 지난해 7월 이곳으로 왔어요.제가 <우체국과 사람들>에 나왔던 2002년에도 영춘우체국에서 근무했는데, 공교롭게 또 여기서 뵙게 됐네요.다시 오니 참 좋아요. 16년 만에 돌아온 건데도 고객분들이 저를 기억해주시더라고요. ‘그때 그 새댁 맞냐’면서 반겨주시는데 얼마나 감사하던지…. 마음 따뜻한 분들을 다시 만나 하루하루 즐겁게 일하고 있어요.”
그가 소개된 2002년 7월은 금융 창구에서만 일해온 그에게 ‘친절 강사’라는 직책이 갓 주어진 때다. CS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그 시절, 그는 충청지방우정청에서 뽑은 단양총괄국 대표로 서울 KBS에서 CS 위탁교육을 받았다. 고객을 어떻게 응대하고 어떻게 만족시켜야 하는지, 다른 총괄국 대표들과 치열하게 배워나갔다. 2주간의 ‘스파르타식’ 교육이 끝난 뒤엔 자신이 익힌 비결들을 단양의 여러 우체국 직원들에게 전파했다. 친절 강사로서의 5년이 그렇게 시작됐고, 그 출발점에 <우체국과 사람들> 인터뷰 의뢰가 왔다. ‘초심’으로 가득했던 그때가 아주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친절에 대한 제 생각은 같아요. 목소리를 ‘솔’ 톤으로 한다거나 30도 각도로 인사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건 고객을 향한 ‘진심’이라 믿어요. 특히 이곳은 서로서로 잘 아는 ‘시골 우체국’이라, 한 분 한 분 소중하게 기억하고 배려하는 태도가 필요해요. 가령 이름 쓰는 것이 서툰 할머님은 제가 손을 잡고 함께 써드리기도 해요. 100만 원이란 숫자를 쓰실 때는 ‘위에서 아래로 1자를 내리긋고 동그라미를 여섯 개 그리시라’고 가르쳐드리죠. ‘내 부모’라 생각하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20년 전 영춘우체국에서의 근무 모습과 현재 모습
긍정적인 삶이 친절로 이어지는 이유
고객을 향한 진심이 우러나오려면, 평소 긍정적인 마음으로 일상을 가꿔야 한다고 그는 생각한다. 자신의 마음이 밝고 환해야 타인을 배려하는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혹여 집에 우환이 생겨도 그 기분을 일터로 절대 끌고 오지 않는다. 우체국에선 우체국 일만, 집에선 집안일만 생각하는 것이 그가 오랜 세월 지켜온 삶의 규칙이다.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고객을 친절하게 대하는 데 매우 중요해요. 서로 사이가 좋으면 그 온기와 활기가 고객들에게 오롯이 전달되죠. 제 자랑 같아서 쑥스럽지만, 우리 집배실 직원 8명에게 매일 아침 드립커피를 손수 제공해요. 제가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거든요. 서로에게 조금만 다정해져도 친절은 자연스레 퍼져나가요.” 금융텔러로서 상품을 ‘자신있게’ 설명하는 것도 친절의 한 방법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우체국은 국가기관이기 때문에 원금이 전액 보장된다는 것부터 그는 힘주어 설명한다. 어르신들 가운데는 그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쉽고 정확한 설명으로 고객들의 ‘불안’을 덜어주는 것. 그것이 금융텔러에게 꼭 필요한 태도라 그는 믿고 있다. 그의 실적은 대부분 고객과의 ‘대화’에서 비롯된다. 이런저런 수다를 통해 고객의 필요를 눈 밝게 알아보고, 각자에게 꼭 맞는 상품을 슬기롭게 권유한다. 그 과정이 지나면 거의 모든 고객이 훗날에라도 그를 찾아와 상품에 가입한다. 그가 충청지방우정청에서 오랜 시간 상위권의 실적을 유지해온 것은 박미예라는 사람을, 우체국이라는 기관을, 고객들이 그만큼 ‘신뢰’한다는 증거다.
“우리 나이로 스무 살이던 1985년, 당시 별정우체국이던 단양 적성우체국에서 첫 근무를 시작했어요. 일반 우체국으로 옮겨온 건 1989년이에요. 그때부터 단양의 여러 우체국을 순회하며 즐겁게 근무해왔어요. 근무 초창기를 떠올리면 기억이 아련해져요. 주판으로 이자 계산을 하고 손으로 돈을 세서 지급하던 일, 그날 치 마감을 하고 나면 현금출납 일보에 먹지를 대고 숫자를 써서 전산소에 보내던 일…. 그땐 어떻게 일했지 싶다가도, 어쩐지 그때가 그리워져요.”
우체국 역사의 ‘산증인’인 그는 55세에 명예퇴직을 하려던 마음을 몇 년 전 바꿨다. 고객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동료들과 마음을 나누면서, 정년까지 즐겁게 일하기로 한 것이다. 이제 4년 6개월 남았다. 마지막까지 이어질 그의 ‘초심’에 벌써 마음이 뭉클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