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만나다
강원도 강릉의 한 제재소. 들어서자마자 낯선 향이 코끝을 스친다. “나무 냄새에요. 저는 이 냄새가 참 좋더라고요. 그래서 이곳에 들어오면 늘 마음이 편안해져요.” 적당한 온도와 빛, 바람을 맞으며 건조된 나무가 적당한 크기로 잘리고 다듬어져 현장으로 옮겨지고 나면, 또 다른 나무가 그 자리를 채우는 일이 끊임없이 반복되니, 변함없이 이 공간을 채우고 있는 오래된 향, 신채호 씨가 가장 좋아하는 나무 냄새다.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는 “나무는 자연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라고 했다. 비, 바람, 햇살을 받으며 흙에서 자란 나무는, 건축물로 재탄생한 후에도 그 결을 따라 미세하게 숨을 쉰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우리가 자연을 보며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듯, 나무로 지은 건축물은 세월의 두께와 함께 그 깊이와 멋을 더하게 된다.
“그냥 보기에는 다 똑같아 보여도 나무마다 가지고 있는 이야기가 달라요. 나무의 결마다 새겨져 있는 이야기를 읽어낼 줄 알아야 제대로 나무를 다듬을 수 있어요. 나무는 쇠나 돌 같은 재료와는 달리 변형이 심해요. 건조 과정에서 휘고 갈라지기도 하고, 건축이 끝난 다음에도 시간이 지나면서 또 변하거든요. 그래서 나무로 된 집은 천년을 내다보고 지어야 한다고 하죠.”
언젠가 태풍에 휘어졌던 나무, 바닷가 근처에서 자라 수분을 많이 갖고 있는 나무, 비, 바람을 맞으며 더 단단해진 나무… 신채호 씨는 제재소 가득 쌓여 있는 나무의 결들에 오롯이 새겨진 이야기들을 듣는 시간이 참 행복하단다. 알맞은 온도와 바람, 햇살 속에서 나무가 잘 건조되도록 밤낮으로 온 정성을 쏟는 일을 결코 힘들다 생각한 적이 없다. 갈라진 나무는 그 나무대로, 움푹 패인 옹이는 그 옹이대로, 함부로 버리지 않고 가장 적합한 용도를 찾아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목수’의 길을 택한 자신이 참 고맙다.
운명처럼 시작한
전통가옥 짓는 일.
오래 걸리고 더디지만
분명, 삶의 중요한
깨달음을 주는
가장 의미 있는
일이 되었다.
스승을 만나다
나무가 좋아 20살이 넘으면서부터 통나무집을 짓는 일을 해왔던 신재호 씨가 전통 건물을 짓게 된 건 그의 말대로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다.
“아는 선배의 집에 갔다가 달력에 있는 목조 건물 사진을 보게 됐어요. 저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지더라고요. 비록 사진 속의 모습이었지만, 한동안 그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죠. 사진 아래 작은 글씨로 ‘단양 구인사 조사전’이라고 쓰여 있는 걸보는 순간, 운명 같은 걸 느꼈어요. 단양이 제 고향이거든요. 꼭 내 눈으로 저 건물을 직접 보리라 다짐했죠.”
그 길로 고향으로 내려가 구인사를 찾았다. 조사전의 아름다움을 눈앞에서 실감하는 순간, 웅장함에 비견될 것이 없어 보였다. 그가 구인사 조사전의 도편수이자, 신응수 대목장을 스승으로 삼게 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나무를 재단하고 다듬고 집을 짓는 작업은 통나무집을 짓던 때와 다를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 나무가 하나의 건축물이 되기까지 쏟는 노력과 마음은 분명 달랐다. 가장 좋은 나무를 찾기 위해 우리 땅 구석구석을 다니고, 마치 아이를 키우듯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온 정성을 다해 나무를 건조한다. 전통 방식을 따라 선조들이 만든 궁궐과 건축물을 다시 복원하는 일은 분명 더 많은 시간과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잘 알고 있다. 선조들이 만든 건축물을 복원한다는 것은, 그 모양을 똑같이 찍어내는 것만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선조들의 혼과 열정도 담아내는 것이라는 것을. 처음 스승이 지은 구인사 조사전을 봤을 때 느낀 그 뭉클함 역시 그 불편함 속에서 탄생한 것이란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숙명을 만나다
선대들이 남긴 건축 양식과 그 안에 담긴 혼과 열정을 후대에 계승한다는 자긍심으로 묵묵히 50년 목수 인생을 걸어온 신응수 대목장. 스승이 걸어온 그 우직한 길을 닮고 싶다는 신재호 씨에게 숭례문 복원 작업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숭례문이 불타는 모습을 스승님과 함께 지켜봤어요. 우리네 역사와 선조들의 건축 양식이 오롯이 담겨 있는 국보 1호가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을 보며 참 마음이 아팠죠. 스승님께서 처음 목수 일을 시작하신 것이 1962년 숭례문 복원공사에 막내로 참여하면서부터거든요. 그리고 50년이 흘러 도편수로 숭례문 복원 작업에 참여하게 되신 거죠. 스승님께 이번 숭례문 복원은 숙명 같은 일이셨어요.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으셨죠.”
최고의 장인들이 참여한 숭례문 복원 작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통 기법을 통해 진행됐다. 현대화된 기계 대신 지금은 찾아보기도 힘든 전통 도구들을 사용해 일일이 사람의 손으로 자르고 붙이고 다듬는 과정이 반복됐다.
두세 달이면 근사한 집을 뚝딱 짓는다는 현대적인 시스템 속에서 전통 방식을 그대로 고수해 복원한 숭례문. 뛰어난 ‘기술’을 넘어선 ‘장인정신’으로 완성된 숭례문 복원 작업을 통해, 그는 오래전 같은 방식으로 숭례문을 지었을 선조들의 땀과 노력, 혼을 만날 수 있었다.
“숭례문뿐만 아니라 스승님과 함께 경복궁, 창경궁 등 우리 전통 건축물을 복원하면서 배우는 것이 참 많아요. 측량 도구도 기계도 없었던 그 옛날, 어떻게 정확하고 완벽한 설계를 통해 이토록 아름답고 과학적인 건축물을 만들 수 있었는지, 감탄만 나오죠.
아마도 지금보다 재료도 귀하고 작업에도 많은 시간이 들었을 테니, 오래 살 수 있는 집을 짓기 위해 더 깊이 생각하고 더 정성껏 집을 지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 아름다움이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닐까요?”
어쩌면 옛날과 같은 재료, 같은 방식만을 고수해 집을 짓는 것은 무리한 일일지 모른다. 그래서 신채호 씨는 그의 스승이 그랬듯이 선조들의 마음가짐을 닮으려 무던히도 노력할 뿐이다.
“나무는 함부로 자르지 말고 아무리 작은 나무토막이라도 함부로 버리지 마라”는 스승님의 말씀을 가슴에 담고, 평생을 나무와 교감하며 우리 것 지키기에 최선을 다해 온 스승의 뒤를 이어 가려 한다. 나무의 결에 새겨진 이야기를 손끝으로 느끼며 천년을 이어갈 수 있는 집을 짓고 싶다는 신재호 씨. 어느덧 전통 건축을 계승하는 일은 그에게도 거스를 수 없는 숙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