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가문 영남요
도자기에 대해 좀 안다는 사람들에게 ‘영남요’라고 하면 분명, ‘아!’하고 감탄사를 내뱉을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처음이자 유일한 중요무형문화재 105호 사기장인 백산 김정옥 선생과 그의 아들이자 우리가 오늘 만나기로 한 사기장 전수조교 김경식 씨의 가문을 일컬어 말하는데, 그 역사성과 전통성, 기능성, 또 예술성에서 반기를 들만 한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저를 비롯해 고등학교 3학년인 제 아들까지 9대째 도자기를 빚고 있습니다. ‘영남요’라는 이름은 1980년대 아버지께서 명명하신 것으로, 본격적으로 가업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도 있으셨겠지만 선대의 도예 역사와 전통을 지켜내야 한다는 마음이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라지는 조선백자의 맥을 이어가는 길이라 생각하셨겠지요. 그렇게 ‘영남요’라는 이름 아래 지금의 저도 있을 수 있었을 겁니다.”
사기장 전수조교 김경식은 경북 문경에서 대대로 조선백자를 빚어온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현재 8대째 가업을 이으며 올해 1월 사기장 전수조교로 선정되어 조선백자의 전통성을 지켜가고 있다. 그의 아버지 7대 백산 김정옥 선생, 6대 김교수 선생, 5대 김운희 선생으로 하여 초대 김취정 선생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1800년대에 닿는다. 2013년 현재, 19살인 그의 아들 김지훈도 가업을 잇겠다고 자진하고 나섰으니 9대까지 20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한 가문이 조선백자의 명맥을 잇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강요랄까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다만 스스로 느끼는 어떤 부담감은 있었지요. 형제 가운데 유일한 아들이었고, 가업을 이어야 한다면 제가 하는 게 마땅하다는 생각이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마음속에 자리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생각은 있었지만 몸과 마음이 하나로 합쳐져 도예가의 길을 걷기까지는 얼마 동안의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어린 시절, 밖에 나가 놀려고 하면 어김없이 아버지 손에 이끌려 토련(土鍊)이며 작업 뒷일 심부름을 해야 했어요. 친구들은 다 노는데 그걸 해야 하니까 어린 마음에 참 귀찮고 싫었어요. 힘들기도 했고요. 시간이 지나고 이쯤 되니, 그때 아버지가 참 많이 ‘힘드셨겠다’ 좀 더 도와드릴 걸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 평생을 조선백자 만들기와 연구에 몰두하는 아버지를 보고 자란 소년 김경식은 청년이 되었고, 이후 장교로 군 생활을 하면서 휴가 나올 때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흙을 만졌다. 그렇게 차츰차츰 흙과 불에 가까워져 1995년 군 제대를 하고 본격적으로 가업을 잇기로 결정했다. 그것은 우리나라 전통 도예의 혼을 잇는 일이기도 했다. 한 번 마음먹은 이상 흔들리거나 갈등해야할 이유는 없었다. 아버지는 엄격한 스승으로 변모하셨고, 그는 어떻게 하면 흙과 불을 잘 다루어 전통방식대로 조선백자를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해 집중하고 연구하는 도예가가 되었다.
땀 흘리지 않고 얻어지는 것은 없다는 아버지이자 스승 백산 김정옥 선생의 말을 새기며 김경식 씨는 오늘도 온 마음을 다해 물레를 돌린다.
무한불성(無汗不成)의 마음가짐
사기장 전수조교 김경식 씨는 지난 2011년 제1회 전국 발물레경진대회에서 항아리를 제작하여 대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전승공예대전에서도 발물레로 달항아리를 제작, 출품하여 도자부문 최고상 문화재보호재단 이사장상을 받기도 했다. 캐나다 토론토 왕립박물관에는 김경식 씨의 작품이 상설전시 되고 있기도 하다.
“발물레 작업은 힘이 많이 듭니다. 찻사발이나, 주전자, 접시 같은 작은 것들은 수월하지만 항아리처럼 큰 작품은 중심을 잡기가 어렵거든요. 체력적인 소모도 많고요. 그럼에도 선대부터 지금까지 발물레 작업을 이어오는 것은 전통방식 그대로 우리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에서입니다.”
조선백자는 은은한 빛깔에 기형이 원만하고 절제된 선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 동시에, 실용적이며 기능적이라는 점과 단순 간결하면서도 익살스러운 문양이 특징이라고 한다. 영남요는 이런 조선백자의 특징과 전통을 지키기 위해 흙과 불, 유약, 문양에 있어 어느 것 하나도 전통 그대로의 것을 놓치고 가는 법이 없다.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작업자의 품이 좀 더 들더라도 옛 방식 그대로 도자기를 빚어내고 있다. 그것은 선대로부터 김경식 씨로 이어지는 조선백자를 옳게 지켜내고 계승하기 위한 약속과도 같은 것이다. 전국 방방곡곡으로 흙과 나무를 구하러 다니며 전통 가마인 망뎅이가마에 적송만을 고집하는 일,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그려 왔던 문양을 연구하고 자꾸 그려보는 일, 유약 개발을 게을리하지 않는 일 또한 대대로 내려오는 조선백자의 맥을 자연스럽게 몸에 배도록 하는 일의 계속이리라.
“흙이나 불은 거짓이 없어요. 노력이, 손길이, 마음이 닿는 대로 그 결과를 보여줍니다. 잠깐의 방심도 있을 수 없죠. 옛 조선백자의 단아한 아름다움에는 바로 옛 도공들의 거짓 없는 혼이 닿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흙을 만지고 불을 다루는 것은 결국 자연을 가까이하는 일이죠. 자연 앞에 겸손하게 진실한 마음으로 조선백자를 지켜가고 또 ‘지금’에 맞게 후대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 제가 최선을 다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이야 찻잔에 녹차를 주로 마시지만 앞으로는 찻잔에 홍차를 담아 마실 수도 있으니 전통방식의 제작기법은 지키되, 쓰임이나 기능은 앞으로의 생활문화에 맞도록 재해석하며 고민하고자 합니다.”
한 가문이 8대에 걸쳐 한 가지 일을 해왔다는 것만으로도 그것은 가문의 역사이자, 모두의 역사가 되기에 충분하다. 경북 문경 관음리에서 시작한 조선백자는 이제 세계 곳곳에서 그 아름다움과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사기장 전수조교 김경식 씨는 아버지이자 스승인 김정옥 선생의 가르침인 무한불성(無汗不成)을 몸과 마음으로 기억하며, 우리 것, 조선백자의 아름다움을 지켜나갈 것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그의 아들과 함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