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식문화와 소반
전통적으로 바닥에 앉아서 생활하는 평좌식(平坐式)문화에 따라 밥을 차리고 나르는 작은 상인 소반은 없는 집이 없을 정도로 세간의 기본이었다. 서민들의 소반부터 왕의 소반까지 종류도 다양했고 지역마다 모양도 달랐다. 소반은 일상생활에 쓰이는 생활용품이면서 쓸모없는 부분이 없고 각 부분이 전체와 조화를 이루는 절제된 예술성을 갖추고 있다. 소반은 제작 지역에 따라 해주반, 나주반, 통영반 등으로 나뉘고, 상판의 형태에 따라 사각반, 팔각반, 십이각반, 원반, 화형반 등으로 구분한다. 다리 모양에 따라 호랑이 다리를 닮은 호족반과 개의 다리를 닮은 구족반 등으로 나뉜다. 늘 쓰이는 세간에서 조상의 멋과 정서를 느낄 수 있다. 60년대 아파트가 등장하면서 입식문화가 보편화된 지금, 소반은 우리의 부엌에서 사라져갔다. 잔치나 제사를 위해 다리를 접을 수 있도록 개량한 교자상 정도가 남았을 뿐 전통 소반은 좀처럼 찾기가 힘들다.
“요즘 30대만 봐도 소반을 잘 모릅니다. 일부러 찾지 않고는 전통공예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죠.”
이종덕 조교는 부친으로부터 이어오는 소반장인의 길이 쉽지 않은 현실을 이야기했다.
선친께서 물려주신
작업도구들은 이종덕
전수조교가 고유의
소반을 만드는데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것들이다.
대를 잇는다는 것
전통공예에 대한 관심은 전반적으로 떨어지는 추세이지만 분야에 따라 그 정도가 다르다. 전통복식으로 여전히 그 명맥을 유지하고 관심도 비교적 높은 한복, 공연문화와 연계되어 꾸준히 수요를 창출하고 있는 국악기처럼 여전히 큰 관심 속에 전수자를 내고 있는 분야도 있지만 소반은 무엇보다 작품에 대한 수요가 없어 배우려는 사람도 없다. 그렇다 보니 이종덕 조교는 현재 거의 유일한 소반장 전수자다. 그는 아버지의 대를 잇고 있었다. 시작은 할아버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안성에서 소반을 만들던 할아버지의 뒤를 선친(故 이인세)께서 전수받았고 중요무형문화재 제99호 소반장으로 지정받기에 이른다.
어린 시절부터 소반 일을 봐왔던 이종덕 전수조교도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사포질을 배우며 소반작업을 돕기 시작했다.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소위 눈썰미가 있다며 선친에게 인정을 받았고 본격적인 전수를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버지께서는 소반일에 앞서 그림공부를 하라고 하셨어요. 해주반에 들어가는 문양의 창작능력이 완성도에서 많은 부분을 좌우하기 때문이었죠. 조상들이 만들어놓은 문양을 따라 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스스로 그릴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10%만 너의 것으로 바꿀 수 있어도 창작이라는 말씀을 하셨죠. 그만큼 소반에 들어가는 문양을 균형 있게 만들어내는 게 쉽지 않다는 뜻이 숨어있습니다.”
이종덕 조교는 벼루장 故 이창호 선생(중요무형문화재 제94호)에게 한국화를, 원동문 스님에게 한국 단청을 배웠다. 3년 전 작고하신 선친 이인세 선생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전통문양을 수집하고 연구하며 창작하는 작업에 몰두하셨다고 한다. 아직 작품으로 완성하지 못한 문양을 소반에 담아내는 것도 그의 몫으로 남았다.
소반 한 개 만드는데 30일
소반은 상판과 다리로 이뤄진다. 좀 더 세밀하게 얘기하면 그릇을 올리는 상판, 다리, 다리와 다리 사이 상판을 지지하는 부분인 운각, 그리고 다리와 다리를 연결하는 족대로 구성된다. 해주반은 다리를 대신해 넓은 나무판인 판각을 쓰는데 판각에 화려한 문양을 조각해 꾸민다. 좌우가 대칭이라 정교한 조각을 하지 않으면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지게 된다.
“보통 조각칼 하면 칼끝이 조각하려는 모양에 맞춰 다듬어진 칼을 쓰는데 소반제작에 쓰이는 조각칼은 칼끝까지 서서히 좁아지며 날카로워지는 긴 날을 가진 칼을 씁니다. 마치 가위의 한쪽을 떼어낸 것 같은 모양이죠. 선친께서 물려주신 작업도구들이 고유의 소반을 만드는데 최적화되어 있어요.”
소반을 만드는 과정은 나무를 말리고 구성에 맞춰 부분을 깎고 조각하고 조립하고 칠하고 건조시키는 과정을 거친다. 보통 소반 한 개를 만드는데 한 달여가 소요된다. 그 긴 시간동안 작은 소반에 집중되는 장인의 손길에서 온도와 습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요소들이 오차 없이 제 역할을 해내야만 아름다운 곡선의 소반이 완성되는 것이다. 곡선과 균형과 빛깔의 조화가 소반이 갖는 멋이다.
한 개의 소반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나무를 말리고 깎고
조각하고 조립하며 한달
여의 시간이 걸린다.
이종덕 전수조교가
온 시간을 집중하는
것, 소반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함이다.
전통계승의 가난한 현실
오는 10월 서울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2층에서 소반 작품 전시회를 여는 이종덕 조교는 전시회를 여는 가장 큰 이유가 소반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라 말했다.
“이제 소반은 생활가구라기 보다는 전통공예로 예술작품에 더 다가서 있습니다. 생활가구라고 하면 소비자가 있어야 하는데 소반을 생활가구로 구입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전통공예의 명맥을 잇기 위한 물질적 정서적 지원 없이 전수자의 의지로만 이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기본적인 생활은 해결되어야 전통도 이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전통소반은 이제 생활가구로서의 임무를 다 한 것 같아요. 이제 하나의 작품으로 인정받기 위해 앞으로는 더 많이 대중들에게 알리고 또 그 접점에서 제가 더 열심히 뛰어야 할 것 같아요.” 이종덕 전수조교는 많은 문화예술계 인맥을 갖고 있지만 소반이라는 전통의 한 부분을 혼자서 짊어지고 가는 모습은 왠지 외로워 보였다. 다만 소반을 계속해서 다음 세대까지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스스로 해내리라는 의지는 매우 명료했다. 앞으로 소반의 섬세한 조각이 주는 경이로움, 빛깔의 아름다움, 선과 균형의 조화가 주는 예술로서의 가치가 대중의 눈을 통해 널리 알려지길 바라본다. 직접 보지 않고는 느낄 수 없는 소반의 매력은 오는 가을 삼성동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에서 만날 수 있다. 외롭고 고독한 전통계승의 길에 더욱 많은 친구들이 함께할 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