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궁의 과학
활의 장력은 어느 정도일까? 우리가 가장 친숙하게 보는 올림픽 양궁경기에 쓰이는 활의 장력이 50파운드다. 무게로 환산하면 22kg이 넘는 무게를 줄에 걸고 당긴다고 생각하면 쉽다. 양궁경기에서 표적까지의 거리는 70m인데 활터에서 표적까지의 거리는 145m로 양궁경기의 두 배가 넘으니 우리 각궁의 장력이 어느 정도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엄청난 장력을 버티는 활을 만드는 제궁기술에는 과학이 숨어있다. 특히 한 가지 재료가 아닌 여러 가지 재료를 붙여 만드는 복합궁(複合弓)인 각궁이 엄청난 힘을 견딜 수 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각궁은 7재라고 하여 물소 뿔, 대나무, 소심 줄, 뽕나무, 참나무, 민어 부레풀, 화피로 만든다. 물소 뿔과 대나무, 소심 줄을 민어 부레풀로 견고하게 결합하는 것이 기술의 핵심이다. 민어 부레풀의 특성상 습도와 기온이 높은 여름에는 응고되지 않아 보통 10월 말에서 이듬해 봄까지 활을 만든다. 특히 소심을 올리고 건조하는 과정이 여름철에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여름에는 재료를 준비하고 본격적으로 추워지는 10월 말에야 제작에 들어간다. 각궁을 만드는 과정은 이렇다. 먼저 활의 손잡이와 양 끝 부분에 참나무와 뽕나무를 대고 탄력을 유지하기 위해 대나무를 넣은 다음 물소 뿔과 소심 줄을 민어 부레풀로 붙인다. 민어 부레풀은 어교라고 하는데 흔히 알고 있는 아교(阿膠)보다 접착력이 강하다. 수직으로 접착되는 부분에 정교한 홈을 내어 맞추고 수평으로 탄력이 높은 소심 줄이나 대나무 같은 재료들을 켜켜이 붙여 우수한 장력을 실현한다. 거기에 좌우의 정교한 균형을 맞추기 위해 매 과정 다듬는 공정을 거친다. 수공예로 만들어내는 정교한 대칭구조가 놀라울 따름이다.
궁시장의 길
대부분 전수조교가 부모의 대를 잇는 게 무형문화재의 현실이다. 어린 시절부터 보고 자라온 이유도 있지만, 딱히 전통 공예를 업으로 삼을 만한 후학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생활과 전통문화 계승이라는 대의의 경계에서 대부분 고달픈 전통의 대를 잇는 길을 택한다. 궁시장 전수조교인 김윤경 선생도 스스로 판단할 겨를도 없이 자연스럽게 대를 잇게 되었다.
“일단 생활이 어렵죠. 궁을 만드는 일이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서 배우면서 돕는 이수자들이 있으면 좋겠지만, 누구도 이 길로 들어서려 하지 않아요. 쉽게 말해 먹고살기 힘든 길이니까요. 그래서 아내와 둘이 이곳 성무정을 지키고 있어요.”
예로부터 경북 예천은 활의 주요 생산지였다. 김윤경 선생의 아버지인 故 김박영 선생은 당대 널리 이름을 떨치던 궁장 김홍경 선생의 장남이다. 김박영 선생은 아버지에게 활 만드는 법을 배웠으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사촌 형인 이치우 선생에게 활 만드는 법을 배운다. 그 후 10년간 외도를 하였으나 35세 때 예천의 궁장 권오규 선생의 권유로 다시 활을 만들기로 하고 부천의 경기궁 명인 김장환 선생의 밑에서 제궁기술을 연마했다. 1984년 김장환 선생이 작고한 후 선생의 아들인 김기원 선생과 함께 뒤를 잇다가 그마저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홀로 대를 이으며 1996년 궁시장 기능보유자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런 아버지께서 2011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자 김윤경 선생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아버지의 자리를 지키게 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길은 아버지에게로 수렴한다
기능보유자인 아버지 김박영 선생은 교육철학이 뚜렷하셨다. 애써 자신의 기술을 가르치려 하지 않고 그저 보여주는 것이 교육이었다. 그래서 아들이 나름의 생각대로 각궁을 만들더라도 그저 바라만볼 뿐 고쳐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술의 개선을 꾀하던 김윤경 선생은 결국엔 아버지의 기술이 최적화된 기술이라는 것을 깨닫고 처음으로 돌아오게 됐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왜 저렇게 하실까?라고 생각한 공정이 많았죠. 그래서 제 생각대로 만들어 봤어요. 그런데 생각처럼 되진 않더라고요. 결국, 아버지의 방법이 맞았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됐죠. 모든 과정이 그랬던 것 같아요. 아버지가 생전 자주 하시던 말씀이 있었는데 ‘모든 게 시간이 지날수록 더 나아지지만, 처음부터 완벽하게 나온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활이다.’라고 하셨어요. 물론 아버님께서 배운 그 시점의 기술이 완벽했다는 말씀이시겠죠. 제가 직접 해보니 그 말이 정말 틀림없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 제궁기술에 대한 믿음과 자부심이 있었기에 그런 교육도 가능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새삼 우리 전통 공예와 장인들에 대한 자부심과 더불어 존경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각궁은 아시아 물소 뿔, 참나무, 대나무, 어교, 소심 줄, 뽕나무, 화피의 자연재료로 만들어지는 전통 병기이자 예술품이다.
김윤경 전수조교는 아버지의 길을 따라 누구도 하지 않으려는 전통 공예가의 길을 묵묵히 걷고 있다
각궁이 생활 속에 꽃피우기 위해
생각보다 많은 동호인이 활터를 찾고 있었다. 생활체육으로 활을 쏘는 인구는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전통 각궁의 수요도 꾸준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1년에 100개 남짓을 제작하는 게 전부다. 궁도협회에서는 활성화를 위해 카본재질로 만든 계량형 궁을 보급했고 대부분의 동호인들이 카본궁을 사용한다. 그렇다 보니 상대적으로 비싸고 관리도 해야 하는 전통 각궁을 쓰는 동호인은 많지 않다고 한다. 전통 각궁과 카본궁의 가장 큰 차이는 쏘는 맛에서 찾을 수 있는데 활을 당기고 화살이 날아갈 때 느껴지는 손맛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런 궁의 차이와 더불어 활쏘기에 필요한 예절인 시법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전통적으로 활터마다 지켜온 ‘초사례✽’ 문화도 지키지 않는 동호회도 많다고 한다. 전통 궁도를 지키며 생활체육으로 활성화된다면 전통 각궁도 보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흡사 점처럼 느껴질 만큼 먼 거리의 표적을 맞히는 쾌감, 작은 점에 집중할 때 느껴지는 적막함, 함께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 느껴지는 신의.
디지털과 스마트가 대세인 세상에서 오히려 새롭게 느껴지는 전통 궁도의 매력에 빠져들어 보는 건 어떨까? 또 우리 각궁을 찾는 젊은 세대의 관심과 사랑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초사례 : 활을 배우고 나서 처음 사대에 서기 전에 갖추는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