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의 재능
형제는 유년시절부터 미술 시간을 좋아했다.
형은 만들기를 잘했고 동생은 그리기를 잘했다. 교내외 미술대회의 상을 도맡으며 예술인의 끼를 발산했다. 화려하고 세밀한 묘사가 담긴 화각공예의 도안과 채색작업에 동생 이종민 선생의 그림솜씨는 제격이었다. 또 재료의 손질부터 가구를 만드는 공정까지 형 이종문 선생의 정교한 손끝 감각은 화각공예에 절묘하게 어울렸다. 이 형제의 스승이자 아버지인 이재만 무형문화재 보유자는 화각공예에 필요한 모든 기술과 감각을 보유한 화각장이다. 보유자의 스승인 고 음일천 선생의 이수자로 시작해 스스로 작품의 복원과 함께 전 공정의 완성도를 높이며 화각공예를 완성하여 최초의 무형문화재로 인정받기에 이른다. 이런 아버지의 재능은 두 아들에게 나누어 대물림된 것인지도 모른다. 형제는 자연스럽게 공정을 나눈다. 전 공정을 두루 이해하고 참여하기는 하지만 동생인 이종민 선생은 도안과 채색작업에 보다 관심을 두고 작업하고, 형 이종문 선생은 깎고 다듬고 붙이며 작품의 형태와 균형을 맞춘다. 어쩌면 전통은 핏줄로 이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상식을 뒤집는 화각예술
화각의 공정은 특별하다. 특별해서 기억에 진하게 남는다. 화각 작품을 보는 이는 실제 그림을 그리고 채색한 반대편을 보게 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그래서 그림과 채색 과정 또한 보이는 면과 반대로
진행한다. 반투명지에 연필로 도안하고 먹선을 넣어 뒤집은 뒤 화각을 올려 그림과 채색작업을 하는데 일반적인 그림은 채색을 할 때 안쪽부터 바깥쪽으로 하는 것과 반대로 화각공예는 바깥부터 안쪽으로 작업한다. 화려하고 세밀한 화각작품을 본다면 반대로 하는 작업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전체 공정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없이는 제대로 된 작품을 완성할 수가 없다. 또 화각공예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조각그림을 이어서 큰 그림을 완성한다는 점이다. 화각공예를 거슬러 올라가면 대모복채(玳瑁伏彩) 장식기술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대모(玳瑁)라는 거북이의 등껍질을 얇게 갈아 복채하여 목공예품에 붙여 장식하는 기술이다. 주재료였던 대모를 구할 수 없게 되자 대체 재료로 쇠뿔을 이용하며 화각공예가 성행하게 되는데 쇠뿔을 펼쳐도 면적이 좁아서 큰 그림을 그릴 때는 조각을 붙여서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더라도 화각공예는 완성에 이르는 공정 중 쉬운 공정이 없다. 상식적이지 않아 더욱 귀한 예술작품, 화각공예다.
살아오는 전통의 숨결
화각공예는 사라질 위기에 있던 궁중공예다.
재료가 귀하고 공정이 까다로워 화각작품은 왕실의 애장품으로 쓰였다. 서민의 공예품이 아니다 보니 작품이 원체 귀했고 자연재료인 쇠뿔은 영구적이지 않아 남아있는 화각공예품도 문헌도 없다. 간혹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 있으나 훼손을 이유로 공개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순전히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해진 전통공예인 것이다. 이재만 보유자가 스승인 음일천 선생의 공방에 들렀다가 문하에 들어간 나이가 열여섯 때라고 한다. 우연한 기회를 통해 화각 기술을 전수하게 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업으로 삼기로 하고 화각 연구에 몰입했다. 단청장이셨던 조부와 대목장이셨던 아버지, 자수 솜씨가 뛰어났던 어머니의 피를 그대로 받아선지 그림 그리는 솜씨가 뛰어났던 이재만 선생은 어린 시절 화상 입은 성치 않은 손으로 전승이 끝날 수 있었던 화각공예를 전수받고 재료가공부터 가구제작, 화각복채에 이르는 작품 제작의 전 과정을 혼자 힘으로 완성해 1996년 무형문화재로 인정받기에 이른다. 아직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는 않지만 이재만 선생과 두 이수자 아들의 손을 거쳐 탄생한 화각작품은 그 화려한 색채와 그림을 얼마나 잘 계승 발전시켜왔는지 증명하고 있다.
상식적이지 않아 더욱 귀한 예술품, 화각공예를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다는 두 이수자는 오늘도 노력에 노력을 더하고 있다.
재료 준비부터 예술
화각공예의 주재료인 쇠뿔은 원뿔형이다. 단단한 쇠뿔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얇은 판으로 만드는 과정부터 수준 높은 기술을 필요로 한다. 이수자인 이종문 선생은 뿔을 손질하는 과정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뿔 에 열을 가해 펴고 갈아낸다고 해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화각이 완성되는 게 아닙니다. 그림을 그릴 수 있고 뒤집었을 때 비치는 화각이 나와야 뿔을 손질하는 과정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쇠뿔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상태인지는 갈아보아야 알기 때문에 결국 과정을 다 마치고도 못 쓰게 되는 경우가 쓰게 되는 경우보다 많죠. 작업과정에서 손상되는 경우도 많고요. 그래서 같은 양으로 얼마나 많은 화각을 완성해 내느냐가 기술의 수준을 가늠하는 기준이 될 수도 있습니다.”
보유자인 이재만 장인의 경우 10개의 쇠뿔 중 3개 정도라면 이수자인 이종문 선생은 10개 중 1개 정도가 나온다는 식이다. 재료 준비부터 쉽지 않은 화각이기에 완성된 작품을 보는 마음도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체 공정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없이는 좋은 작품을 완성할 수 없다. 부지런히 익히고 연구하는 것이 전통 화각공예를 후대로 잇는 것임을 형제는 잘 알고 있다.
모두의 화각공예를 꿈꾸며
형제는 화각공예를 아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한다. 그래서 기회가 오면 대외활동도 적극적으로 한다.
'리조 트에서 체험교실을 1년 넘게 진행했어요. 리조트를 찾은 가족들이 화각공예 손거울을 만들어보는 체험이었죠. 화각공예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체험활동을 통해 우리의 전통공예라는 사실과 함께 화려한 색과 그림에 관심을 갖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러한 활동을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종민 이수자는 이 체험교실을 위해 리조트에서 겨울을 보내기도 했다. 또 형제는 사람들이 화각공예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향수통, 줄타이 등 생활 속의 공예품을 만드는데도 힘을 쓰고 있다. 과정이 쉽지 않고 완성까지 오랜 시간이 걸려 쉽진 않지만 화각공예를 알리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전 통공예를 계승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지만 이 길이 갖는 가치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책임감을 갖고 발전시켜 나가려 노력하고 있어요. 모든 사람들이 우리 화각공예를 알고 사랑해 주는 그날까지 노력할 생각입니다.”라고 두 형제 이수자는 입을 모은다.
화려한 겉모습을 눈으로 보고 긴 제작과정을 마음으로 보는 화각공예. 보석보다 빛나는 또 하나의 전통공예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