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전문,
통인시장 수선집
통인시장에는 ‘세탁소’가 아니라 ‘수선집’이라는 간판을 단 오래된 수선집이 몇 있다. 이제는 사라지고 사람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 중의 하나가 어쩌면 수선집일지도 모른다. 프랜차이즈 세탁전문점이 골목마다 들어서고, 최신식 기계와 재봉틀이 단 몇 분이면 말끔하게 세탁해주고 수선해주는 전문 세탁소에 우리는 어느새 익숙해졌다. 그런데 통인시장 골목에는 구두와 가방을 수선하는 집, 옷만 전문으로 하는 수선집이 서너 집 된다. 경쟁이랄 것도 없다. 한자리서 30년, 20년 하다 보니 저마다 단골손님도 따로 있고 서로 의지하며 상부상조하고 지낸다. 그런 수선집 중 하나를 운영하고 있는 김혜선 씨를 만났다. 통인시장에서 ‘알뜰옷수선’ 간판을 내걸고 일한 지 올해로 20년째. 1.5평 남짓한 그 공간에서 길고 긴 세월 옷을 수선하며 지금까지 왔다.
어쩔 수 없는 시작
“17살에 바느질을 처음 시작했어요. 그 시절 바느질이 좋아서 시작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먹고 살기 힘들고, 부모님께 도움이 될까 싶어 시작했죠. 어쩌다 보니 지금까지 바느질을 하고 있네요.”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며 이야기 꺼내는 김혜선 씨의 눈가가 촉촉이 젖었다. 젖은 눈가에도 얼굴은 밝게 웃고 있었다. 한때는 너무 지긋지긋해서 다 팽개치고 다른 일을 해보고도 싶었다고 했다. 그럴 수 없는 삶의 무게가 그녀를 억누르기를 몇 번… 마음에 폭풍이 일어 결국 바느질을 그만두고 분식집을 차렸다. 그러나 생각대로 장사가 잘되지도, 수선하는 것보다 재밌지도 않았고, 오히려 힘만 들 뿐이었다. 얼마 못 가 정리를 하고, 마치 운명인 것처럼 그녀가 잘할 수 있는 일을 다시 시작했다. 바느질 일인 옷 수선이었다. 그렇게 통인시장에 자리 잡고 20년 동안 바느질로 아이들을 키웠고 남편의 사업을 도왔다. 분명 힘들었지만 힘든 줄 몰랐고 시간은 흘러 오늘에 왔다.
더없이 행복 한 일
처음 일을 시작했을 당시에는 손님은 ‘손님’ 그 이상 어떤 의미도 없었다. 손님이 많아야 돈을 많이 버니까 손님 한명 한명이 돈으로 연결되었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한해 두 해 일을 할수록 돈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님의 특성을 생각하게 되었고, 손님이 들고 온 옷에서 저마다 삶의 모습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명품만이 비싸고 좋은 옷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뭔가 말로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지만, 어떤 깨달음이 마음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갈 즈음, 자기 일이 자랑스럽고 잘하고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 대견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지금, 누구보다 수선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일을 일로만 생각하지 않고 어느 순간 즐기며, 잘할 수 있게 된 것, 그래서 그 덕에 아이들 잘 키우고 손자손녀도 보았으니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느냐는 김혜선 씨. “돌이켜보면 수선 일이 아니었다면 이토록 즐겁게, 행복하게 살지는 못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작은 수선집이 참 좋아요, 너무 소중하고요.”
손님과의 약속을 소중하게
“사장님, 이거 청바지 길이 좀 줄여주세요. 제 길이 아시죠?” 하고는 한 남자 손님이 수선비만 주고 문을 닫고 나간다. 보통 바짓단을 접어오기 마련인데, 그런 흔적도 없다. 20년 하니까 거의 단골손님이라 굳이 표시해오지 않아도 그 길이를 눈짐작으로 안단다. 다시 해달라는 손님이 손에 꼽을 정도라니 손님하고의 관계도 좋다. “동네 특성이 그런가, 잘 사는 분들도 많으신데 대부분 찾아오시는 손님들이 소박하세요. 몇 해 전에 수선해간 바지를 또 가지고 온다거나, 같은 재킷을 몇 번씩 가져와 고쳐서 입으세요. 알뜰하고 검소하시죠. 저도 그 영향을 많이 받은 거 같아요. 이렇게 저렇게 인연을 맺고 하다 보니 이제는 ‘척’ 하면 ‘척’하는 사이가 되었다고 할 수 있죠.” 김혜선 씨가 지금까지 온 데는 일을 좋아하고 재미있어 했던 것도 있지만, 손님과의 약속을 철저하게 지켰기 때문이다. 내일 오전 옷을 찾으러 오기로 했다면, 그녀는 오늘 밤 옷을 수선해 놓는다. 다음 날 아침 시간이 있더라도 마음이 급해져 절대 수선을 잘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조금이라도 여유를 갖고 손님의 체형이나, 손님이 원하는 것을 생각하며 재봉틀을 돌리고,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한다. 철저한 손님과의 약속, 그래서 손님들이 김혜선 씨의 수선집을 찾는지도 모르겠다. 하여 오늘도 30년 넘은 그녀의 재봉틀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엄마 닮은딸
딸은 누구보다도 엄마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김혜선 씨의 딸 추희정 씨도 엄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어려서부터 봐 온 엄마의 모습은 언제나 바느질하는 모습이었다. 가게에서 못 끝낸 일은 집으로 가져와 밤을 새우며 하셨다. 늦도록 혼자 앉아 바느질하는 엄마 모습을 생각하니 지금도 눈물이 나더라는 추희정 씨. 이런저런 방황 끝에 의상디자인과에 들어갔고 비로소 엄마가 하는 일이 얼마나 대단하고 가치 있는 일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고 한다. “엄마가 저희 어려서 옷이랑 모자를 거의 만들어주셨어요. 세상에 하나뿐인 소중한 옷이었죠. 그때는 미처 몰랐던 것 같아요. 아이를 낳고 보니 너무 감사한 일이었죠. 저라면 일하면서 아이까지 세심하게 챙기기가 불가능할 것 같은데 엄마는 어느 것도 소홀하지 않으셨으니 너무 존경스러워요.”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이 하나로 모여 모녀는 쑥스럽지만 오랜만에 묻어둔 마음속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마음을 전했다.
삶을 촘촘히 바느질하며
아침 7시면 집안일을 시작으로 하루를 열어 오후 9시 시장이 문 닫을 때까지 그녀는 수선집을 지킨다. 하루 평균 20여 벌의 바지와 2~3벌의 투피스, 3~4벌 원피스를 수선한다. 약속을 지키려면 부지런히 손과 발을 써야 하고 눈도 쉴 틈이 없다. 그래도 지금까지 일할 수 있고, 일할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는 그녀. 김혜선 씨는 최근, 통인시장이 유명세를 타면서 찾아오는 관광객이 늘어나자 더 친절하게 맞이하고자 영어와 컴퓨터 공부를 시작했다. 영어는 찾아오는 외국인 손님과 조금이라도 소통하기 위해서고 컴퓨터는 일종의 자기개발이라고. 늘 그랬듯 집에 가서도 일을 해야 하지만 뒤늦게 공부하는 재미에 푹 빠져 신이 난다는 그녀. 20년간 매일 1시간씩 버스를 타고 와 통인시장 근처 정류장에 내려 ‘알뜰옷수선집’으로 가는 그 순간이 가장 벅차고 셀렌다는 김혜선 씨. 그녀의 인생버스는 오늘도 운행 중이지만, 늘 그렇듯 수선집 정류장에 잠시 머물며 한 땀 한 땀 촘촘히 삶을 여미고 있다. 앞으로도 얼마간은 계속 그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