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하루
푸른 새벽, 어둠 속 샛별과 함께 김성래 씨의 하루는 시작된다. 든든히 아침밥을 먹고, 호미며 낫을 챙겨 텃밭으로 향할 때쯤, 샛별은 총총히 아침볕에 사라진다. 밤사이 농작물들은 잘 있었는지 살피는 눈길과 손길마다 정성이 배어난다. 비가 온다는 소식에 어젯밤 늦게까지 농작물들을 살뜰히 챙긴 덕분에 오늘은 논이며 밭에 물을 대는 수고가 한결 가벼워졌다. 가는 봄을 아쉬워하며 촉촉이 대지를 적시는 빗방울이 마냥 반갑고 고맙기만 하다. 텃밭에 심어 놓은 열무와 파, 각종 쌈 채소들이 단비에 흠뻑 젖을 수 있도록 비닐을 거두고 물길을 내는 사이, 빗방울을 머금은 나뭇잎이 햇살에 반짝인다. 오랜만에 내린 단비가 아쉬워 해가 천천히 떠올랐으면, 하고 바라본다. 이제 막 싹을 틔운 어린잎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직접 만든 유기농 거름을 주고, 어느새 무성히 자란 풀을 뽑고, 고객에게 보낼 쌈 채소를 정성스레 수확하다 보면, 어느새 어스름한 밤공기가 어깨 위로 내려앉는다. 해가 떠오를 때 시작되어 해가 지면 끝이 나는 신성한 노동의 시간. 그렇게 흙과 바람, 햇살과 비에 농부의 땀과 노력이 더해져 하루가 빼곡히 채워져 간다.
또 다른 버스에
올라타다
5년 전, 김성래 씨는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가던 ‘도시인’이었다. 특급호텔 호텔리어(Hotelier)의 삶을 버리고 농부의 삶을 택했을 때, 그는 조금 천천히 달리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세 딸은 그동안 자신이 앞만 보고 달리느라 놓친 소중한 것들을 느끼며 살기를 바라는 부모 마음에 기꺼이 동참하며 용기를 주었다.
“내가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했는데,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을 때까지 ‘경쟁’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꿈을 키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자고 생각했고, 이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게 되었죠.” 큰딸, 민정이가 막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2009년 4월, 김성래 씨는 아내, 세 딸과 함께 이곳 장수로 내려와 농부가 되었다.
땅이 가르쳐준
삶의 지혜
‘느리게 흘러가는 삶’에 대한 로망은 ‘도시인’의 착각이었음을 ‘농부’가 되어가면서 철저하게 깨달았다. 해와 달이 만드는 자연의 시간을 본능적으로 몸에 새기고, 땅의 생물과 공존하며 생명을 일궈가는 농부의 삶. 땅을 일구며 보낸 지난 5년의 세월은 고스란히 손 위로 내려앉았다. 해가 길어지면 그만큼 더 몸을 움직여야 하고, 자식을 키우듯 마음과 정성을 다해도 흙과 햇살, 바람과 비의 도움이 더해져야만 비로소 열매를 거둘 수 있다는 사실, 농부로 살면서 배운 자연의 이치다.
“처음에는 감자 10개를 심어서 10개 모두를 수확하지 못하는 것이 그렇게 힘들더라고요. 왜 죽었는지 화가 나고, 고민되고, 마음 아프고. 그런데 그게 농사더라고요. 최선을 다해 땅을 일구고 정성껏 키우는 것, 딱 그것까지가 농부의 일. 그 다음은 자연에 맡기는 거예요. 내가 10개를 심었으니 10개를 다 거두겠다는 거, 욕심이고 교만인 거죠.” 허리를 숙여 씨를 심고 땅에 엎드려 농작물을 키우면서 김성래 씨는 자연 앞에 겸손해지는 법을, 욕심을 버리고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배웠다.
불편함을 선택한
착한고집, 유기농
더 빨리, 더 편하게, 더 크고 많은 열매를 얻기 위한 농부의 욕심에 몸살을 앓는 땅. 그 땅을 살리고 함께 공존하기 위해 김성래 씨가 기꺼이 선택한 불편함, 유기농 농사다. 농약이나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아 농작물 사이의 잡초를 뽑는 데에만 하루를 꼬박 보내기도 하고, 혹여나 땅에 좋은 벌레들을 죽일까 논밭을 거니는 발걸음조차 조심스럽다.
“뭐 좀 거창하게 얘기하자면, 유기농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누군가의 식탁에 건강한 자연을 선물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요. 화학 비료나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제철 식물을 키우는 거죠.” 일일이 사람의 손을 거쳐 더딘 속도로 자라는 유기농 채소. 모양도 제각각이고 땅에 이로운 벌레와 함께 자라다 보니 구멍이 숭숭한 것도 있지만, 김성래 씨는 고집스레 유기농법을 이어가고 있다. 유기농 제철 농사만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같은 생각으로 땅을 일구는 ‘하늘소마을’ 동지들이 있어 고집스러운 그 길이 외롭지만은 않다.
“하늘소마을에 함께 사는 12가족에게는 꼭 지켜야 할 약속이 있습니다. 분뇨를 소중히 여겨 재래식 화장실을 쓰고, 깨끗한 물을 내보내기 위해 계면활성제가 들어간 세제와 비누를 쓰지 않고,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것. 우리가 사는 땅을 깨끗하게 지키고, 그 안에서 건강하고 정직한 작물을 키워내기 위한 작고 소중한 약속입니다.”
건강한 식탁을 위한
또 다른 도전
김성래 씨가 1년 동안 심고 키우는 작물은 어림잡아 50종류가 넘는다. 1년 동안 한두 작물을 많이 짓는 것보다 제철 작물을 조금씩 자주 생산하는 것이 유기농사에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농부로 산다는 것은 농사를 짓는 것뿐만 아니라, 생산한 농작물을 판매하는 것까지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삶이죠. 인터넷을 통해 회원을 모집하고, 그날그날 재배한 신선한 제철 작물을 한 꾸러미씩 포장해서 회원들에게 보내는 방식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가격도 조금은 비싸고 투박하고 못생긴 상품도 많지만, 그 안에 담긴 건강한 자연의 가치에 공감하는 분들이 꾸준히 힘을 실어주고 계십니다.” 매일 김성래 씨의 식탁에 오르는 건강한 음식들이 또 다른 누군가의 식탁에 오른다. 깨끗한 자연과 농부의 땀과 정성이 일궈낸 유기농 작물은 많은 이들의 밥상을 건강하고 안전하게 변화시켰다. “많은 고객으로부터 감사의 인사를 받으면서 보람을 느끼기도 했지만, ‘유기농은 누구의 먹거리일까?’라는 고민이 마음 한켠에 생겼습니다. 소득의 양극화가 먹거리의 양극화로 이뤄졌고, 안전하고 건강한 유기농 식품은 소수만 접하는 ‘비싼 먹거리’가 되었죠.” 김성래 씨와 아내 박진희 씨는 이런 현실을 조금이라도 바꾸기 위한 작은 움직임을 시작했다.
‘아름다운재단의 소셜펀딩 프로그램인 ‘개미스폰서’를 통해 시민후원자들을 모아, 전북 지역아동센터(옛 공부방) 6곳을 포함해 청소년쉼터·장애인공동체 등 전국 13곳에 건강한 자연과 농부의 땀, 그리고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유기농 농산물을 보냈다. 틈틈이 강의에 나서고 시간을 내어 ‘음식 정의(food justice)’를 실천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진행 중이다.
아껴둔 알사탕을 꺼내 먹듯
그렇게 달콤한 농부의 삶
조금 여유로운 삶을 찾아 선택한 농부의 삶. 또다시 치열한 삶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하지만 김성래 씨의 대답은 단순했다. 농부로 살면서 땅이 주는 건강한 먹거리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알았고, 그 선물을 누구나 먹을 수 있기를 바랐다는 것. 그래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의 행적이 우리네 밥상을 변화시키려면, 아직 더 많은 사람들의 동의와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 하지만 김성래 씨는 이 땅의 흙을 으뜸으로 치고 그것을 일구며 사는 것도, 정직하게 재배한 건강한 먹거리를 누구나 먹을 수 있는 ‘음식 정의’를 이뤄가는 일도 멈출 생각이 없다. 일부러 만들지 않은 여백의 소중함, 볕 좋은 날 산 중턱까지 걸으며 이름 모를 산새와 봄꽃을 보는 즐거움. 지난해 보았던 두꺼비가 봄 마실을 나오지 않았는지 두리번거리는 재미, 흘러가는 대로 놔둬야만 비로소 자연이 되는 삶의 행복을 농부가 되면서 느꼈기 때문이다. 하늘소마을에서 태어나 꽃 이름을 감쪽같이 구별해내는 아들 동찬이, 외출을 하는 엄마에게 “노을을 보려면 다섯 시까지는 와야 한다”고 다짐을 받는 딸아이의 건강한 웃음을 지켜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아이들과 함께하는 농부의 삶이 아껴둔 알사탕을 꺼내 먹듯 달콤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