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력의
화신
정윤남 씨의 올해 나이는 59세다.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쉰 적 없이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다. 남편의 직업은 대부분의 사람이 비교적 안정적이라 말하는 공무원이었지만, 정윤남 씨는 남편만 바라보지 않았다. 몸을 움직여 일하는 것이 즐거웠고 보람되었다고 했다. 딸과 아들이 어렸을 적에는 새벽에 우유와 신문을 배달했다. 낮 동안에는 이웃의 아이를 돌봐주는 일을 하기도 했다. 그 밖에도 수많은 일을 해왔다.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몸을 움직여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즐겁고 재미있다는 정윤남 씨. “지금도 그렇지만 집에 가만히 있으면 몸이 아픈 거 같더라고요. 나와서 일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그러면 재미도 있고 몸도 안 아픈 것 같고 또, 일한 만큼 생활에 보탬도 되고 좋아요. 우리 나이에 일할 수 있다는 자체가 즐거운 거지요.” 부모 도움 없이 월세방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해 지금에 오기까지 그녀는 부지런히 남편을 도왔고 자식을 키웠다. 직업에 귀천이 없는데 힘든 일, 지저분한 일이 어디 있느냐며, 당당하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즐겁다는 정윤남 씨다.
6시 30분
즐거운 출근시간
정윤남 씨가 경기도 수원 경기대학교 9강의동에 들어서는 시간은 매일 아침 6시 30분이다. 어김없이 5시에 일어나 남편의 아침을 챙기고 출근을 한다. 일찍 일어나는 것이 이제는 습관이 되었다. 9강의동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는 정윤남 씨를 포함해 모두 4명. 어제 만났어도 오늘 또 만나면 즐겁고 할 이야기가 많다. 9강의동 청소를 시작하는 아침 7시까지 30여 분간 간단히 요기도 하고 커피도 한잔하며 하루를 준비한다. 마음이 맞고 또 서로를 잘 알기에 한 공간을 쓰는 것이 불편하지는 않다. 출근하면서 입었던 옷을 작업복으로 갈아입자 책임감이 뒤따른다.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하고 담당 구역인 1층으로 내려간다. 오늘 하루가 진짜 시작되었다. 경기대학교 청소미화원 6년째, 힘들고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들 법도 한데 매일 에너지 넘치게 일하려고 노력한다는 정윤남 씨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하는 청소 일이 힘들 법도 한데 정윤남 씨의 얼굴에는 언제나 웃음이 가득하다. 일이 즐겁기 때문이란다.
아들과 엄마는
동창생
정윤남 씨와 그의 아들은 경기대학교 동창이나 다름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아들은 이미 졸업을 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재학 중이다. “아들이 막 학교에 입학 했을 때인데 경기대학교에 식당을 한군데 더 열어 식당에서 일할 사람을 뽑는다는 공고가 구인구직신문에 났어요. 아들한테 물었지요, ‘엄마가 여기서 일을 할까 하는데, 네가 불편하고 창피할 것 같으면 안 할게.’ 그랬더니 아들이 ‘엄마, 뭐가 창피해요. 엄마가 힘들까봐 걱정이지 저는 그런 거 없어요.’라고. 그렇게 경기대학교하고 인연을 맺었어요.” 학교 식당에서 3년 일을 했고 식당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통합되었다. 따라서 정윤남 씨도 일을 그만 두고 근처 다른 학교로 옮겨갔다. 같은 일을 하는데도 어쩐지 재미가 없고 힘이 들었다. 일년 남짓 지났을까, 같이 일했던 동료가 청소미화원 자리가 비었으니 같이 일해보자고 해서 다시 경기대학교로 왔다. 그렇게 지금 청소미화원으로 일하고 있다. 학교에만 오면 신이 나고 없었던 에너지가 저절로 생긴다고. 그 사이 아들은 졸업을 했고 직장에 들어갔으며 결혼을 했다. 그녀는 여전히 학교에 남아 청소를 하고 있다. 하나도 부끄러울 것 없이 말이다.
어떤일이든
당당하게
일과시간은 아침 7시부터 오후 4시까지다. 점심시간은 11시부터 1시까지. 점심시간이 평균 1시간인데 비해 길다. 힘들게 일하는 만큼 충분한 휴식을 가져야 한다는 학교 측의 배려 덕분이라고 한다. 주5일 출근에 1년 휴가는 15일, 일반 회사원들과 비교하더라도 괜찮은 근무환경이다. 특별한 기념일이나 날씨에 따라서 살펴주는 학교 관계자의 배려도 따뜻하다. 요즘처럼 더운 삼복더위에는 수박도 챙겨주고 오가며 마주하는 학교 직원들이 음료수도 건네준다. 때때로 점심이며 저녁도 특별하게 챙겨준다. 정윤남 씨는 참으로 고마운 일이라고 했다. “청소하는 사람을 누가 그렇게 챙겨주겠어요. 잊지 않고 때마다 살펴주고 챙겨주니 일하는 사람들이야 고맙지요. 학생들, 교수님들, 교직원분들이 먼저 인사도 해주고 청소 일이지만 보람 느낄 때가 많아요.” 서로서로 배려하고 챙기기 때문일까, 주어진 일뿐만 아니라 먼저 일을 찾아서 하기도 한다. 화단에 꽃씨도 심어 키우고, 담당구역인 1~2층 화장실에는 조화지만 사비로 꽃도 사다 놓는다. 이왕이면 깨끗하게 눈도 즐겁게 하기 위함이라고.
일을 하는 동안 한 번도 당당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고, 부끄러울 게 없었다는 정윤남 씨. 지금 하는 일뿐만 아니라 지나온 시간 우유배달, 신문배달 하는 동안에도 그랬다. 아들딸 남매에게도 도둑질이 아니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니면 무엇이든 열심히 하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모두 제 역할하며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엄마의 삶을 더 값지게 해주고 있다.
자기 삶을 가꾸듯 틈이 생기면 9강의동 앞뒤 뜰을 꽃밭으로, 텃밭으로 가꾸고 있다.
지나 가는 사람들이 미소를 머금고 바라볼 때면 큰 보람을 느낀다고.
쓸고 닦고하는 반복되는 일이지만 누구보다 자신의 일에 자신감을 갖고 있는 정윤남 씨. 오늘도 그녀의 비질에는 삶의 에너지가 담겼다.
정년을
희망하며
오랜 시간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나와 궁합이 잘 맞는 직장이 따로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정윤남 씨는 지금 일하고 있는 곳이 그렇다고 했다. 아침이면 일어나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해 땀 흘리며 일하고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생활하는 일이 참 고맙고, 그런 곳이 이 따뜻한 배려 넘치는 학교라 더 좋다는 그녀.매일 화장실 청소를 하고, 복도를 쓸고 닦고, 강의실과 교수실의 휴지통을 비우는 그녀. 세상에 헛된 일은 없으며, 자신이 궂은일을 함으로써 누군가가 깨끗한 환경에서 더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보람된다는 정윤남 씨. 이제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럴 수만 있다면 정년까지 학교에 남아서 지금의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부디, 정윤남 씨가 지나간 학교 곳곳이 반짝였던 것처럼 그녀의 삶도 마지막까지 반짝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