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 올게요!
드라마 촬영을 위해 방문했던 보육시설에서 촬영을 마치고 나오면서 한 말 한마디가 그녀의 삶 전체를 이끌게 될 줄은 그녀도 주위 사람 누구도 몰랐다. “다음에 올게요!”라고 말했으니 다음에 꼭 가야 했었다는 배우 정애리 씨. 언제고 한번은 다시 갔어야 했는데 혼자 찾아가는 길을 몰라 얼마간의 시간을 흘려보냈다고. 그러던 어느 날 다른 촬영장을 가는 길에 그 보육시설을 지나게 되었고, 꼼꼼히 메모를 했다 촬영을 마치고 그곳을 찾았다. 그곳의 모든 사람들이 놀랐다. 정말 올 줄 몰랐기 때문. 평소 스스로 한말은 지키고 또 지킬 말만 하려는 그녀의 마음가짐이 드러난 것일 터. 그렇게 인연을 맺은 것이 노량진동에 위치한 ‘서울성로원’이다. 올해로 22년째, 매주 일요일이면 정애리 씨는 그곳을 찾는다. 특별히 무엇을 하지 않아도 아이들에게 그저 ‘정애리 이모’가 되어 함께 시간을 보낸다. 우리와 만난 그날도 아이들과 점심을 먹고 난 직후. 그녀의 딸도 함께였다.
“딸이 아주 어렸을 때로 기억해요. 그날도 같이 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어요. 아이가 묻더라고요. 왜 엄마는 다른 아이들만 돌보느냐고요. 아마도 함께 온 이곳에서 자신은 뒤로하고 다른 아이들을 돌보는 엄마가 서운했던 모양이에요. 해서 왜 그래야 하는지를 설명해주었어요. 그때는 몰랐어도 성장하는 동안 스스로 보면서 깨닫게 된 것 같아요. 지금은 아이들의 누나로 언니로 가족처럼 지내요.”
거기 늘
사람이 있었어요
돌이켜보면 그곳이 어디든 그곳에 사람이 있어 찾아갔다는 그녀. 성로원아기집을 다니면서 아이들을 보게 되었고 아이들을 보다 보니 또 장애인들이 보였고 그다음에는 노숙자, 탈북자들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그녀는 어떤 물질적 나눔이 아니더라도 그들을 찾아가 손을 잡아주며 마음을 나누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언가 큰 물질적 나눔이나 도움을 주어야만 그것이 나누는 삶을 사는 것으로 생각해요. 네 맞습니다. 물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렇지만 어려운 형편의 사람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함께 이야기 나누며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그들의 손을 잡아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삶을 나누는 것도 아주 훌륭한 사랑 나눔이에요.”
늘 그러한 것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 있어 그곳을 찾게 되었다는 그녀. 22년째 한결같이 또 쉼 없이 그럴 수 있다는 것 자체로 그녀가 위대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저도 가만히 돌이켜보면 이러는 제가 놀랍기도 해요. 그런데 그곳에 늘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들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 있었죠. 만나고 나면 보고 싶고, 다시 만날 사람이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성로원 가족들, 해외 250여 명의 1:1 결연을 맺은 아이들 그리고 무수히 만난 어려운 환경의 사람들이 그렇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애리 씨는 해외아동을 돕는 일에 대한 생각을 말했다.
“우리나라 아이들도 무척이나 어렵고 힘든데 왜 해외아이들을 돕느냐고 묻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상대적인 빈곤이에요. 해서 우리끼리 해결하고 도울 수 있어요. 그렇지만 나라 밖의 그 아이들은 절대적인 빈곤이지요. 누군가 돕지 않으면 당장 생명이 위태로워요. 그 아이들을 그대로 죽게 할 수는 없지요.”
그녀가 해외 아이들을 바쁜 스케줄을 쪼개가며 만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점 때문이었다.
봉사할 시간을
만들어요
가녀린 체구에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녀는 쉼 없이 연기를 하며 연기하는 동안에도 없는 시간을 만들어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그들을 찾아간다. 가서 안아주고 손을 잡아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1978년 데뷔해서 지금까지 큰 공백 없이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감사한 일이라며, 그러면서 마음 나누는 일도 할 수 있어 더없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말하는 그녀. 그것은 아마도 주어진 장소, 지금 현재에 최선을 다하고 진실하기 위해 누구보다도 노력하는 그녀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늘 스스로 묻고 답해요.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 진실했는가?’라고요. 그렇게 묻고 답하다 보면 어느새 제 모습이 보이죠. 그렇게 저의 마음과 생각을 다잡는 노력을 해왔습니다.”
연기와 봉사활동을 구분하지 않으며 배우, 엄마, 아내 등 어떤 역할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그저 ‘정애리’라는 이름의 한 사람으로 지금 현재 있는 곳에서 진실을 다한다는 그녀다.
누구나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어 하는 마음은 있다. 그러나 나중에, 얼마간의 금액을 만들어서 도와야지 하는 그런저런 나름의 이유로 다음으로 미루는 사람들이 대부분. 하지만 ‘도움이라는 것이, 나눔이라는 것이 별거 있겠느냐’며 마음만 있다면 지금 바로 실천하라는 정애리 씨. 반찬을 잘 만들면 이웃의 어려운 사람에게 맛있는 반찬을 나누어 주는 일을 하고 아이들을 잘 보면 보육위탁시설을 찾아가 아이 돌보는 일을 실천해보라고 말한다. 또 어려운 사람들과 비교해 스스로 위로 삼지 말라고도 말한다. 누구보다도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면서도 그녀가 시간을 만들어 수년 동안 아이들을 돌보고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는 이유를 어찌 한줄, 한마디의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만큼 그녀의 사랑나눔은 단편적이지 않고 일시적이지 않다. 깊고 넓다. 오늘 우리는 날개 없는 천사, 마음 따뜻한 천사를 만났다.
정애리 <1978년 KBS 데뷔>
2004 월드비전 친선대사 / 2010 제3회 대한민국 나눔대상 국회상임위원장상
2009 제28회 세종문화상 통일외교부문상 / 2007 국제사회봉사의원연맹 사회봉사특별상
사랑과 야망(SBS), 아내의 유혹(SBS), 민들레가족(MBC), 웃어라 동해야(KBS)
근초고왕(KBS), 당신 참 예쁘다(MBC), 당신 뿐이야(KBS), 발효가족(JTBC) 등 다수
서울성로원 _ 1951년 개원한 서울성로원은 한국전쟁으로 인한 전쟁미망인과 고아들의 보호를 위해 창설되었다. 현재는 여러 가지 이유로 친부모와 살 수 없는 영유아, 미취학 아동, 초등학생, 중학생 등 60여 명의 아동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서울시 동작구 노량진동 223-5. 02-821-94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