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궁궐 내관을 만나다
“제가 생각하는 궁궐은 역사의 현장이자 또 한편으로는 치욕의 현장입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궁궐은 딱 끊어진 단절된, 죽어있는 상태의 궁궐이에요. 그런데 조선시대의 궁궐은 왕이 살았고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일하며 살았던 살아있는 공간이었습니다. 단편적인 예로 태종의 셋째 아들 충녕대군이 세종대왕이 되었던 현장이고,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현장도 궁궐입니다. 무수히 많은 조선 왕조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현장 그 자체이죠. 조선시대의 궁궐은 때때로 그 세를 넓히기도 했을 것이며 또 때로는 어떤 사건으로 불타기도 다시 세워지기도 하면서 조선왕조 500년을 지켜왔습니다. 그러다 일본에 의해 철저하게 무너졌죠, 경복궁 건물의 90%가 일본에 의해 전소되었고 창경궁은 창경원이 되었었습니다. 이 어찌 치욕스러운 현장이 아니겠습니까?”
궁궐기행가 송용진 씨는 이러한 살아있는 궁궐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또 알리고 싶어 본격적으로 역사 공부를 시작했다. 현재 그는 ‘재미있는 사(史)교육현장’ 대표다. 한국화를 전공했던 그가 궁궐과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한 편의 사극 때문이었다. 1996년 당시 <용의 눈물> 사극에 등장했던 궁궐은 너무나 멋있었고 연기자 유동근의 이방원 연기는 그를 조선 건국의 시기로 데려다 놓았다. 그러나 유연찮게 들른 경복궁은 사극 속의 모습과는 달랐었다. 어딘지 모르게 황폐했고 현실과는 단절된 느낌을 받았다. 여기저기 둘러보다 기념품 숍에서 궁궐관련 책 한권을 집어 들었는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 책의 내용은 일본에 의해 철저하게 짓밟힌 조선시대의 궁궐 이야기였다.
“마음속에 뜨거운 것이 차올랐죠. 그때부터 미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 후로 매주 궁궐을 찾았고 관련 책을 찾아 읽으며 공부하고 사진을 찍고 그랬어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잖아요. 조선시대의 역사가, 그 속에 살았던 왕들의 이야기가, 신하들의 이야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우리의 역사를 잘 알아야 미래를 설계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궁궐에 미친 송용진 씨는 스스로 내관 복장을 맞춰 입고 경복궁에서 궁궐역사와 궁궐문화 알리는 일을 시작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닌 혼자 시작한 일이었다. 내관복장을 하고 경복궁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 자연스레 사람들이 몰려와 그의 이야기에 집중했고 그는 그런 일이 너무나 즐겁고 재미있다고 했다. 그렇게 궁궐에 이어 왕릉, 박물관에도 심취해 2005년 <쏭내관의 재미있는 궁궐기행>을 펴내는 데 이어 <쏭내관의 재미있는 왕릉기행> <쏭내관의 재미있는 박물관기행> 등의 책을 펴내면서 우리 역사를 알기 쉽게, 재미있게 소개하며 역사 현장에서 과거와 현재, 미래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나는 쏭내관이다
그가 궁궐기행을 시작하면서 내관복장을 선택한 데에는 깊은 뜻이 있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그리고 왕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역사의 마지막을 함께한 사람이 바로 내관이기 때문이고 또, 역사를 배우고 알아가는 일이 재미있어야 하기에 다소 유머스러운 이미지가 있는 내관복장을 택했던 것. 그는 가장 낮은 자세로 재미있게 역사를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왕의 복장을 했더라면 지금처럼 열정적으로 소리 지르고 뛰어다니며 역사기행을 하지 못했을 것이란다. 그는 하루 10시간씩 사극을 보며 중요한 순간을 캡처해 인물과 이야기가 살아있는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를 재구성했다. 왕릉이며 박물관 기행을 다니며 수백, 수천 장 찍어두었던 사진도 그의 사(史)교육 프로그램에 그대로 들어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방영된 거의 모든 사극을 다 봤어요. 폐인이 되더라고요.”
그는 웃으며 말했지만 하루 10시간씩 작정하고 사극을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한 노력 때문이었을까, 그의 강의를 들은 사람들은 역사에 취해 역사 속으로 자꾸만 파고 들어가게 된다고.
“아이들이, 또 선생님들이, 부모님들이 궁금한 것을 끊임없이 물어올 때 너무 좋죠. 꼭 저와 하는 궁궐기행이 아니더라도 역사여행하는 친구들을 보면 먼저 다가가서 함께 이야기 나누고 그래요. 역사 현장에 있다 보면,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어요. ‘역사’ 과목이 선택교과라는 점이에요. 저희 세대는 물론이고 지금 학생들까지 생각하는 것보다 역사에 대한 인식이 낮아요. 무조건 암기해서 배웠고, 배우기 때문이죠. 역사가 없는 미래가 있을 수 있을까요? 지금이라도 역사를 제대로 알고, 이해하고 그래서 역사와 현재의 간극이 줄어들어 선인들의 경험과 지혜가 미래를 준비하는 밑거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시작이 역사여행이었으면 합니다.”
쏭내관은 말했다. 역사여행에 앞서 마음의 여유를 가질 것, 여행지의 배경지식을 조금이라도 알고 여행에 임할 것, 역사지에서 그곳에 관한 책을 함께 읽어볼 것…. 그렇게 한다면 역사여행의 재미가 두배 세배 배가 될 것이라고. 그러면 어느 날 역사가 자신에게 다가오고 미래도 탄탄해질 것이라고.
“왜 사직공원이 되었고 왜 종묘공원이 되었습니까?”
그의 마지막 질문이 마음에 박혀 지워지질 않는다. 이번 여름은 궁궐여행을 떠나보련다.
송용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한국화과 졸업
영국 그리니치대학 대학원 예술경영 졸업
<저서>
쏭내관의 재미있는 궁궐기행 1,2
쏭내관의 재미있는 박물관기행
쏭내관의 재미있는 왕릉기행
쏭선생의 독종 영어
메신저&트위터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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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궁궐 내관을 만나다
“제가 생각하는 궁궐은 역사의 현장이자 또 한편으로는 치욕의 현장입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궁궐은 딱 끊어진 단절된, 죽어있는 상태의 궁궐이에요. 그런데 조선시대의 궁궐은 왕이 살았고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일하며 살았던 살아있는 공간이었습니다. 단편적인 예로 태종의 셋째 아들 충녕대군이 세종대왕이 되었던 현장이고,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현장도 궁궐입니다. 무수히 많은 조선 왕조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현장 그 자체이죠. 조선시대의 궁궐은 때때로 그 세를 넓히기도 했을 것이며 또 때로는 어떤 사건으로 불타기도 다시 세워지기도 하면서 조선왕조 500년을 지켜왔습니다. 그러다 일본에 의해 철저하게 무너졌죠, 경복궁 건물의 90%가 일본에 의해 전소되었고 창경궁은 창경원이 되었었습니다. 이 어찌 치욕스러운 현장이 아니겠습니까?”
궁궐기행가 송용진 씨는 이러한 살아있는 궁궐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또 알리고 싶어 본격적으로 역사 공부를 시작했다. 현재 그는 ‘재미있는 사(史)교육현장’ 대표다. 한국화를 전공했던 그가 궁궐과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한 편의 사극 때문이었다. 1996년 당시 <용의 눈물> 사극에 등장했던 궁궐은 너무나 멋있었고 연기자 유동근의 이방원 연기는 그를 조선 건국의 시기로 데려다 놓았다. 그러나 유연찮게 들른 경복궁은 사극 속의 모습과는 달랐었다. 어딘지 모르게 황폐했고 현실과는 단절된 느낌을 받았다. 여기저기 둘러보다 기념품 숍에서 궁궐관련 책 한권을 집어 들었는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 책의 내용은 일본에 의해 철저하게 짓밟힌 조선시대의 궁궐 이야기였다.
“마음속에 뜨거운 것이 차올랐죠. 그때부터 미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 후로 매주 궁궐을 찾았고 관련 책을 찾아 읽으며 공부하고 사진을 찍고 그랬어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잖아요. 조선시대의 역사가, 그 속에 살았던 왕들의 이야기가, 신하들의 이야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우리의 역사를 잘 알아야 미래를 설계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궁궐에 미친 송용진 씨는 스스로 내관 복장을 맞춰 입고 경복궁에서 궁궐역사와 궁궐문화 알리는 일을 시작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닌 혼자 시작한 일이었다. 내관복장을 하고 경복궁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 자연스레 사람들이 몰려와 그의 이야기에 집중했고 그는 그런 일이 너무나 즐겁고 재미있다고 했다. 그렇게 궁궐에 이어 왕릉, 박물관에도 심취해 2005년 <쏭내관의 재미있는 궁궐기행>을 펴내는 데 이어 <쏭내관의 재미있는 왕릉기행> <쏭내관의 재미있는 박물관기행> 등의 책을 펴내면서 우리 역사를 알기 쉽게, 재미있게 소개하며 역사 현장에서 과거와 현재, 미래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나는 쏭내관이다
그가 궁궐기행을 시작하면서 내관복장을 선택한 데에는 깊은 뜻이 있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그리고 왕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역사의 마지막을 함께한 사람이 바로 내관이기 때문이고 또, 역사를 배우고 알아가는 일이 재미있어야 하기에 다소 유머스러운 이미지가 있는 내관복장을 택했던 것. 그는 가장 낮은 자세로 재미있게 역사를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왕의 복장을 했더라면 지금처럼 열정적으로 소리 지르고 뛰어다니며 역사기행을 하지 못했을 것이란다. 그는 하루 10시간씩 사극을 보며 중요한 순간을 캡처해 인물과 이야기가 살아있는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를 재구성했다. 왕릉이며 박물관 기행을 다니며 수백, 수천 장 찍어두었던 사진도 그의 사(史)교육 프로그램에 그대로 들어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방영된 거의 모든 사극을 다 봤어요. 폐인이 되더라고요.”
그는 웃으며 말했지만 하루 10시간씩 작정하고 사극을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한 노력 때문이었을까, 그의 강의를 들은 사람들은 역사에 취해 역사 속으로 자꾸만 파고 들어가게 된다고.
“아이들이, 또 선생님들이, 부모님들이 궁금한 것을 끊임없이 물어올 때 너무 좋죠. 꼭 저와 하는 궁궐기행이 아니더라도 역사여행하는 친구들을 보면 먼저 다가가서 함께 이야기 나누고 그래요. 역사 현장에 있다 보면,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어요. ‘역사’ 과목이 선택교과라는 점이에요. 저희 세대는 물론이고 지금 학생들까지 생각하는 것보다 역사에 대한 인식이 낮아요. 무조건 암기해서 배웠고, 배우기 때문이죠. 역사가 없는 미래가 있을 수 있을까요? 지금이라도 역사를 제대로 알고, 이해하고 그래서 역사와 현재의 간극이 줄어들어 선인들의 경험과 지혜가 미래를 준비하는 밑거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시작이 역사여행이었으면 합니다.”
쏭내관은 말했다. 역사여행에 앞서 마음의 여유를 가질 것, 여행지의 배경지식을 조금이라도 알고 여행에 임할 것, 역사지에서 그곳에 관한 책을 함께 읽어볼 것…. 그렇게 한다면 역사여행의 재미가 두배 세배 배가 될 것이라고. 그러면 어느 날 역사가 자신에게 다가오고 미래도 탄탄해질 것이라고.
“왜 사직공원이 되었고 왜 종묘공원이 되었습니까?”
그의 마지막 질문이 마음에 박혀 지워지질 않는다. 이번 여름은 궁궐여행을 떠나보련다.
송용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한국화과 졸업
영국 그리니치대학 대학원 예술경영 졸업
<저서>
쏭내관의 재미있는 궁궐기행 1,2
쏭내관의 재미있는 박물관기행
쏭내관의 재미있는 왕릉기행
쏭선생의 독종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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