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맛을
재현해내다
“겨우내 먹을 김장을 담고, 메주를 띄울 채비에 마음부터 분주해지는 계절이네요. 음식 맛은 장맛이라잖아요. 좋은 재료와 정성이 깃든 손맛, 그리고 햇살과 바람이 빚어낸 자연의 선물이 바로 우리네 조상의 지혜가 담긴 장맛인 거 같아요.”
역사의 순간순간을 함께 한 오래된 고목과 이름 모를 들꽃들이 한데 어우러진 ‘한국역사문화음식학교’. 그 뒷마당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장독들을 정성스런 손길로 매만지는 차은정 씨는, 이곳의 학교장이자 신라시대의 전통음식을 맛볼 수 있는 ‘라선재’의 대표다.
“2007년 11월부터 경주시와 함께 신라음식 복원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어요. 조선시대의 음식문화는 어느 정도 복원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신라의 음식문화는 고증할 만한 조리 책이 없기 때문에 박물관 자료와 당시의 고서들, 벽화 등에 나타난 단편적 사료를 연결해 원형을 복원하고 개발하고 있죠.”
태어나 첫돌에 부모로부터 밥상을 받고, 죽고 나서도 후손으로부터 밥상을 받는 것이 인간의 생. 그래서 차은정 씨는 그 맛과 혼을 되살리는 일이 주는 무게감을 잘 알고 있다. 한끼 밥상이 하루하루 모여 삶이 되고, 문화가 되고, 역사가 되는 것임을, 오랜 시간 정성껏 음식을 만들고 그 음식을 나누며 배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배움을 함께 나누기 위해 신라 천년의 역사가 숨 쉬는 경주에 ‘한국역사문화음식학교’를 세웠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당시의 ‘밥상’을 복원하고, 그 음식에 깃든 우리의 음식문화를 다시 되살리는 일. ‘한국역사문화음식학교’는 신라 천년을 이어온 한국 음식문화와 역사를 만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요리사관학교인 것이다.
“물론 신라 전통음식을 만드는 법을 연구하고 가르치죠. 하지만 그보다 먼저 음식은 기술이 아닌 진심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음식을 먹을 누군가를 향한 마음과 그 마음이 담긴 정성스런 손길에서 완성되는 것임을 가르치죠. 특히 정성스레 재료를 고르고 겸손함으로 음식을 만들고 감사함으로 음식을 대했던 선조들의 혼을 함께 느끼고 되살리는 일. 그 감동과 책임감을 함께 나누고자 노력합니다.”
신라를 맛볼 수 있는 곳
‘라선재’
‘한국역사문화음식학교’ 내에 문을 연 ‘라선재’는 차은정 씨와 제자들이 함께 되살린, 천년고도 신라 왕가의 식문화를 맛보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선인들이 즐겼던 우리 음식의 혼을 솥과 단지에 오롯이 담아내기 위해 재료를 고르는 일부터 요리를 하고, 정갈한 그릇에 담아내는 일까지 차은정 씨의 손길은 늘 분주하기만 하다.
“가장 한국적인 멋인 살아 있는 고장 경주에, 정작 한국의 맛, 신라의 맛이 없다는 사실이 늘 안타까웠어요. 그 맛을 되살리기 위해 ‘한국역사문화음식학교’를 세웠고, 그 맛을 함께 공유하기 위한 공간이 바로 ‘라선재’예요.”
무엇보다 제자들이 ‘누군가를 위해 밥상을 차리는 마음’을 강의실이 아닌 실제 식탁에서 배우고 느끼길 원하는 마음, 그 마음이 ‘라선재’의 머릿돌이 되었다.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하고 그냥 평범한 영양사가 되려고 했어요. 그런데 학교에서 이론으로 배운 지식을 실제 현장에 접목하려니 그 사이에 공백이 꽤 크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대학원에서 조리학을 공부했죠. 어떤 재료가 만나 어떻게 조리했을 때 몸에 좋고 맛도 좋은 음식이 되는지 어렴풋이 알게 됐어요. 내 음식을 먹을 누군가를 떠올리며 요리하는 것의 중요성, 그렇게 음식에 정성과 마음을 담는 법을 배운 것도 그때였던 것 같아요.”
요리에 대한 지식과 기술, 그리고 음식을 대하는 마음과 정신, 그리고 우리 전통음식을 계승하려는 사명감을 강의실과 현장에서 온몸으로 배울 수 있는 곳, 라선재는 급하게 한술 떠 한끼 식사를 채우는 곳이 아니라, 천천히 그 맛을 음미하며 만든 이의 정성과 역사의 숨결을 맛있게 비워내는 공간이다.
우리 조상의 지혜가 깃든
약선 요리
신라궁중음식 전수자로, ‘한국역사문화음식학교’의 교장으로, 라선재의 대표로 시간을 쪼개며 생활하는 차은정 씨의 이름 앞에 ‘학생’이라는 또 하나의 명칭이 붙었다. 신라음식을 제대로 되살리기 위해 ‘한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것.
“화려한 양념 문화, 다양한 식재료, 불교색이 강한 화려한 미적 감각이 신라음식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중에서도 신라음식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는 것은 현대의 약선과 다를 바 없는 ‘건강한 음식’이라는 점입니다. 다채로운 양념을 사용하지만 담백하고, 재료의 궁합이 잘 맞아 독이 되지 않고 편안하게 소화되는 것, 혀가 즐겁고 몸이 건강한 음식이 바로 신라음식입니다.”
식품영양학과 조리학에서 그치지 않고 한의학을 다시 공부한 것도 바로 약선 요리로 대표되는 신라음식을 더 잘 복원하기 위한 다짐의 표현이다. 그녀가 신라의 약선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쩌면 ‘운명’이었다. 한의사인 아버지 덕분에 ‘음식이 곧 약’이라는 것을 식탁에서 자연스레 배우게 되었고, 무구한 자연을 조금 다듬어 식탁에 옮겨놓는 것이야 말로 가장 훌륭한 요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은 제철 음식이 갖는 그 신비한 힘을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았던 것 같아요. 좋은 땅에서 적당한 햇빛과 때에 따라 뿌리는 단비를 맞으며 자란 자연의 선물.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재료입니다.”
요리연구가로 한창 승승장구하던 시절 뜻하지 않게 ‘암’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고,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했을 때 ‘건강한 밥상’을 통해 건강을 되찾은 그녀이기에, 우리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깃든 약선 요리를 되살리는 일이 더 큰 사명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조상의 지혜가 담긴 음식을 통해 다시 얻은 삶이잖아요. 남은 생 동안 조상들이 먹었던 몸에 좋은 전통 음식을 최대한 가깝게 만들어내는 것이 제게 남겨진 숙제이자 소명입니다. 더불어 ‘한국역사문화음식학교’를 통해 그 정신을 함께 공유한 제자들이 세계에 우리의 맛을 널리 알린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죠.”
신라 천년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경주. 그곳에 가면 신라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건강한 맛이 오롯이 담긴 차은정 씨의 밥상을 맛볼 수 있다.
차은정
영양학, 조리학, 한의학을 전공한 약선전문가
동국대학교 한의학과 생리학 박사 전공
영산대학교 약선학과 교수 역임
2011 한국역사문화음식학교장
2010 G20 대표단 만찬 자문
2009 우리나라 꽃, 약초음식이야기 전시관 운영
2008 신라의 떡, 역사문화 Special전 개최
2007 신라왕실음식특선 전시관 운영
2006 앙코르와트 세계문화엑스포 식문화외교 외
*한국역사문화음식학교 : 경주시 신평동 375-3 ☏ 054-771-6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