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악은 유교 이념을 포함하고 있는 음악
정가악회 천재현 대표는 ‘정가’라는 이름 때문에 정가악회가 지향하는 음악에 대해 여러 사람이 오해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국악에서 정가(正歌)는 바르고 큰 노래라는 뜻입니다. 가곡, 가사, 시조 세 개를 묶어서 정가라고 하는데 우리는 사람 냄새 나는 음악을 해보자는 취지에서 ‘정가’의 정을 ‘뜻 정(情)’ 자로 바꿔서 정가악회라는 이름을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인 정가(正歌)만 할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데 그건 오해입니다. 일반적으로 정악은 아정(雅正)하고 고상하며 바르고 큰 음악을 이릅니다. 궁중음악, 민간 상류층에서 연주되던 음악이 여기 속한다고 하는데, 이런 분류법은 음악을 이해하는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봅니다.”
일반적으로 정악은 궁중음악, 풍류, 정가 등을 일컫는다. 궁중음악은 궁중에서 내려오는 음악이다. 풍류는 8〜15개의 곡이 연이어 짜여 있는 영산회상(靈山會上)을 연주하는 것이다. 풍류라는 이름은 옛날 각 지방의 풍류객들이 풍류방에 모여 영산회상을 연주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풍류 중에 현악기를 중심으로 실내에서 연주하는 것을 줄풍류라 한다. 가곡은 피리·젓대·가야금·거문고·해금의 관현 반주에 시조시를 노래하는 성악곡이다. 장단과 선율이 변하면서 느리고 점잖게 시작한 음악이 어느새 능청이고, 출렁이고 이내 촘촘해진다. 노랫말 역시 체면과 은유에 싸여 있던 초반의 분위기를 휘감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본성을 드러낸다. 분위기의 정점에서 태평가가 시작된다. 여기서 급반전이 이루어진다. 완전히 다른 빠르기와 다른 분위기가 시작된다.
서양 악기와 우리의 악기는 용도가 다르다.
우리 악기는 사랑방, 풍류방 정도의 사이즈에 어울리는 악기였고, 우리 악기로 연주하는 정악이나 산조도 사랑방 같은 작은 공간에서 연주하는 음악이었다.
한옥에서 연주했더니 우는 사람까지 있었다
정가악회는 초창기 국악의 황무지에서 결성됐다. 정가악회를 만든 천재현 대표는 원래 정가를 전공했다. “가곡이 좋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기에도 일반인들에게 가곡은 “지루하기도 하고 무슨 소린지 못 알아듣는 음악”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더 근본적인 데 있었다. “줄풍류 영산회상이나, 가곡도 들을 사람이 아주 없는 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었어요. 저변을 확대하는 데 뭐가 문제였는지 알아내는 게 급선무였어요. 영산회상을 연구하겠다고 6개월간 회원들과 칩거하면서 음악을 연구한 적도 있어요. 극장에서 공연을 하는 건 우리가 봐도 재미가 없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바로 그 극장이 문제였죠.” 서양 악기와 우리의 악기는 용도가 다르다. 서양 악기는 극장용으로 만들어졌다. 반면 우리 악기는 사랑방, 풍류방 정도의 사이즈에 어울리는 악기였고, 우리 악기로 연주하는 정악이나 산조도 사랑방 같은 작은 공간에서 연주하는 음악이었다. “악기의 속성 자체가 극장용이 아닌데, 극장에서 연주하려니 착오가 있었던 거예요. 국악은 가까이에서 들어야 매력을 발견할 수 있어요. 연주자들의 호흡과 악기의 울림을 연주자와 함께 느껴야지요. 국악 전용극장이라고 있기는 하지만 마이크를 대지 않으면 공연을 할 수 없는 곳이에요. 우리 악기는 마이크를 통하면 제 음을 들을 수 없어요. 그러니 국악을 국악답게 듣지 못하는 거예요. 커다란 극장에서 마이크에서 걸러지고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국악을 듣는 건, 알맹이는 한국인인데 서양 옷을 입혀 놓은 거랑 같아요. 촌스러운 음악이 된 거죠. 그래서 자연히 국악이 대중과 멀어진 거예요.”
가장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음악
정가악회의 무대는 한옥, 사랑방이나 그들이 연습하는 풍류방이다. 관객도 많아야 20명 안팎인 무대가 그들이 즐기는 공연이다. 그렇게 해서 국악의 찰딱찰딱한 맛을 관객이 온전하게 느낄 수 있었다. 국악을 제대로 들려준 효과는 대단했다. “안국동 한옥에서 공연했더니 ‘국악이 이런 거였냐’는 반응을 보였어요. 우는 사람까지 있었어요.” 이러한 성과들은 청송의 송소고택과 경주의 양동마을에서 각각 ‘정가악회 풍류 1- 송소고택 줄풍류’, ‘정가악회 풍류 3- 경주 관가정 가곡’ 음반 제작으로 이어졌다. 극장식 무대도 버리지 않았다. 극장에서는 풍류를 음악극 형식으로 전개했다. 지난해에 전일 전좌석 매진을 기록한 낭독음악극 <왕모래>는 새로운 가능성을 연 작품이다. 북한, 일본, 중국의 악기는 전부 개량됐다. 우리 악기에 관심을 두지 않아서 변하지 않은 것이 이제는 도리어 큰 장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우리의 악기로 연주되는 우리의 음악이 가장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전통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서양인들이었다. 정가악회는 우연히 독일에 있는 기획자들을 만나게 됐는데 이들이 일주일간 정가악회 풍류방에서 우리의 음악을 접하고는 깜짝 놀라면서 풍류방과 같은 공연을 만들었다. 이를 계기로 미국, 독일, 덴마크, 핀란드 등 세계 여러 도시에 초청되어 연주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처음 정가악회를 만든다고 했을 때는 그에게 국악을 가르친 스승조차 반대했지만, 그는 발상의 전환을 꾀했다.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하기에 일반인들에게 새롭게 다가가리라는 각오로 그는 정가악회를 만들게 되었다. “국악은 변해야 한다면서 우리 악기로 서양의 음악을 연주하는 퓨전음악이 생겼지만, 나는 우리에게 원래 있던 음악으로 국악의 저변을 확대해보자는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10년을 버텨 오는 중이죠.” 정가악회는 2007~200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단체 집중육성 프로그램에 선정됐으며, 2009년 KBS 국악대상 수상, 서울시 전문 예술단체 선정, 문화예술분야 예비사회적기업, 남산 국악당 상주예술단체로 선정돼 탄탄한 기반을 다지며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