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산탈춤은 인생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7호 봉산탈춤 이수자 손병만>
고등학교 입학해 우연히 시작한 탈춤과 사물놀이는 그의 인생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내성적인 성격은 누구와도 어울릴 수 있는 밝은 성격으로 바뀌었고, ‘전통’이라는 것은 낡고 오래된 것이라 여겼던 철없던 생각은 ‘우리 것, 전통’은 지키고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소중한 것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그리하여 직장생활을 과감히 정리하고 30살 나이에 다시금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다고.
“직장생활을 하며 취미로 할 것인지, 이왕 시작한 거 끝을 볼 것인지 서른 살 무렵 고민이 많았습니다. 오랜 시간 고민을 했고 그 결론은 탈춤만으로 인생을 한번 살아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결정 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는 그는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연희과에 입학을 했다. 손병만 씨는 그렇게 열일곱부터 서른일곱 지금까지 봉산탈춤에 빠져 지내고 있다. “고등학교에서 봉산탈춤을 계속 배우기는 했지만 제대로 된 봉산탈춤이라고 할 수는 없었어요. 변형이 많이 된 거였죠. 그래도 그 탈춤이 그렇게 재미가 있더라고요. 고등학교 2학년 때 봉산탈춤 예능보유자 소무역 故김선봉 선생님의 정기공연을 보고 ‘아, 봉산탈춤이란 이런 것이구나’라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탈을 벗은 소무 연희자가 60대 할머니였다는, 그리고 그럴 수 있도록 에너지를 주는 것이 바로 우리 전통이고 탈춤이란 생각에 그는 무한감동을 느꼈다고 했다. 20년 세월, 그는 봉산탈춤을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더 많이 알리고 함께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해왔다.
현재 그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7호 봉산탈춤 이수자이다. 아직 갈 길이 먼 손 씨지만 그는 자신을 찾는 이가 있으면 기꺼이 외국까지 나가 공연을 하고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런 활동은 국내에서 더 활발하다. 전통탈춤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야말로 우리 탈춤을 지키고 보존하는 첫 번째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는 이야기한다. 그저 작은 관심을 보여줄 것을. 가수 발굴하는 오디션 프로그램만 만들지 말고 우리 전통문화 예술인을 발굴하고 키우는 프로그램 기획에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이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봉산탈춤을 추고 또 그것에 대해 연구, 고민하고 대외적으로 알리고 하는 모든 일들이 그는 보람이라고 했다. 탈춤으로 인해 그가 인생을 배우고 삶의 흥겨움을 알았듯이 앞으로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그의 꿈이 이루어지길.
존재감을 일깨워준 탈춤
<중요무형문화재 제17호 봉산탈춤 전수자 양혜경>
처음 양혜경 씨가 봉산탈춤 전수회관에 입회하고 싶다고 했을 때, 선배들은 하나같이 만류했다. 여자로서 하기 힘들다는 것, 그래서 오래가지 못하리라는 것이 이유였다. 오기가 더 생겼고 그녀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꼭 탈춤을 전문적으로 배우겠다고 결심했다. 새벽 6시부터 시작되는 일과는 빠듯했다. 일본어와 영어를 배웠고 체력을 키우기 위해 수영도 배웠다. 저녁이면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힘든 생활 속에서 봉산탈춤에 대한 그녀의 생각은 더 간절해졌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다시 전수회관을 찾았을 때 당시 사무국장 박상운 선생은 그녀를 푸근하게 맞아주었다고. 그렇게 양혜경 씨의 탈춤 인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어려서부터 가난하게 살았어요. 서울예술대학 연극과에 입학해서 40분 되는 거리를 차비가 없어서 걸어 다녔어요. 연극과 특기를 살리기 위해 동아리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게 ‘서울예대민속연구회(탈춤반)’라는 봉산탈춤 동아리였습니다. 아침 7시에 모여 남산을 뛰었고 수업 전까지는 기본동작을 배우고 수업이 끝나면 또 모여 연습에 연습… 80명으로 시작한 동아리 회원이 마지막엔 20명만 남았어요.” 그녀는 그런 힘든 시간들이 스스로를 단련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했다. 탈춤을 추면서 느끼는 흥겨운 에너지가 그녀 안의 어떤 부정적인 감정들을 해소시켜주는 것 같았다고.
탈춤은 탈, 가면을 쓰고 하는 것이라 숨쉬기도 불편하고 앞도 잘 보이지 않는다. 역할의 개성이 분명해 연기도 잘해야 하고 목소리의 울림도 좋아야 한다. 더군다나 뛰는 동작이 대부분인 봉산탈춤은 여성으로 해내기 어렵다. 그동안 탈춤 연희자가 남자였던 이유도 바로 이점이다. 그래서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했다. 서도소리, 남도소리, 경기소리를 배웠고 소리를 배운 후에는 영남교방무나 도살풀이 전통춤을 배웠다. 연극과 출신이지만 춤사위와 소리로 채워지는 봉산탈춤의 개성 분명한 역할들을 보다 완벽하게 소화하고 싶은 그녀의 욕심이었다. “봉산탈춤은 인간의 몸이 예술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큰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것 같아요. 마당을 가득 채우는 어떤 강렬함을 공연 때마다 느낍니다. 그런 강렬함은 한계를 넘어서게 하는, 마술적인 힘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그녀는 마당에서, 무대에서 관중을 만나는 일이 무척이나 즐겁다고 한다. 비록 여기까지 오는데 힘들기도 했지만 ‘탈춤’이라는 전통예술에 매료되어 스스로의 인생, 스스로의 존재를 세운 그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