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쓰고 인문학 강의와 방송을 진행하는 멀티 인문학자
2014년에 출간된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은 당시 여행책으로는 매우 드물게 80일 만에 종합 판매순위 1위에 올라 더욱 눈길을 끌었다. 많은 사람들이 꼭 한 번 가보고 싶어 하는 유럽을 각 지역의 특성에 따라 10가지 콘셉트로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은 도시 곳곳에서 느껴야 할 핵심 요소들을 안내한 ‘감성 가이드’ 라는 평가를 받으며 지금까지도 ‘좋은 여행책’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2004년 문학평론가로 데뷔하여 영화 주간지와 미디어 평론지 등에 대중문화를 주제로 글을 써왔던 정여울은 이 책을 통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제가 쓴 책들이 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자기소개서인 것 같습니다.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 외에도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마음의 서재> 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지요. 요즘은 책 쓰기와 더불어 주요 일간지에 에세이를 쓰고 다양한 주제의 인문학 강연을 하면서 네이버 오디오클립 ‘월간 정여울: 당신의 감성을 깨우는 글쓰기 프로젝트’의 진행자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책, 여행, 대중문화, 심리학 등등 정여울이 쓰는 글을 보면 특정 분야의 ‘작가’라고 규정하기엔 아쉬울 정도로 전방위적이다. 스무 권이 훌쩍 넘는 ‘자기소개서’를 갖고 있던 그는 올해부턴 아예 한 출판사에서 매월 한 권의 책을 출간하는 이른바 ‘월간 정여울’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 도무지 ‘창작의 고통’이라는 게 없어 보이는 그를 ‘멀티 인문학자’로 부르고 싶다.
“저는 글을 쓰는 매 순간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에요. 글을 쓸 때 스스로 가장 솔직하면서도 깊이 있고 열정적인 또 하나의 제 자신과 마주합니다. 평소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사회생활을 할 때는 ‘에고(ego)’라는 ‘사회적 자아’가 더 열심히 활동을 한다면, 글을 쓰는 순간엔 보다 내면 깊숙한 곳의 ‘자기(self)’와 만나게 되는 셈이지요. 그런 자기와의 깊은 만남이 참 좋고 그런 시간들이 모여서 글쓰기의 열정이 샘솟는 것 같습니다.”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그 자체로 행복을 느낀다는 정여울에게서 고통보다 더 진한 ‘창작의 향기’가 느껴지는 순간이다. ‘인문학자’로 불리는 게 쑥스러우면서도 듣기 좋다는 그는 문학과 철학, 역사로부터 마르지 않는 영감을 얻고 있어 여전히 공부할 게 참 많단다. 이렇게 다채로운 분야로 안테나를 바짝 세우고 있는 그가 요즘 최고의 관심사로 두고 있는 건 뭘까? 대중문화 비평에도 일가견이 있는 그인 만큼, 아이돌 노래를 줄줄 꿰고 있다 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데 ‘그건 잘 모른다’며 웃는다.
“공부하며 듣기에는 아무래도 가사가 있는 노래보단 악기 연주
가좋아서 클래식을 즐겨 듣습니다. 요즘 최고의 관심사는 트라우마예요. 단지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로부터 뭔가를 배우고 싶고, 트라우마를 극복함으로써 얻어지는 삶의 소중한 에너지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쉽고 즐겁게, 공감대를 확장해나가는 인문학자
쉼 없이 일하는 와중에 공부의 끈도 놓지 않고 있다는 그에게 휴식을 권하며 여름휴가 계획을 물었다. 여행책 베스트셀러 작가의 휴가지는 어디가 될지, 인문학자의 쉼표는 어떻게 찍힐지 무척이나 궁금했는데 “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8월 14일부터 22일까지 ‘정여울 작가와 함께 떠나는 유럽 글쓰기 여행’을 떠날 계획이라고 하니, 역시나 완벽한 휴식은 아닌 듯하다.
“독자와 함께 떠나는 첫 번째 여행이라 많이 떨리고 설렙니다. 그동안 ‘여행에 대한 글쓰기’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행을 다니며 글을 쓴다는 게 힘들지는 않은지 자주 질문을 받았어요. 이번 여행이 여행과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글을 쓰며 여행하는 삶’을 함께 체험해보는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 저한테는 이 여행이 올 여름의 가장 큰 이벤트니까 충분히 휴식이 되고 즐거운 경험이 될 거라 생각해요.”
막연히 ‘여행 다니면서 글도 쓰고 돈도 벌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정여울은 스스로 “난 그런 사람은 아니다”라며 웃는다. 그는 글을 쓰고 강의를 펼치며 대중에게 인문학을 전하는 사람이지만 어렵게 풀고 싶진 않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탐구하는 자세로 삶을 즐길 수 있도록 작은 씨앗을 전하고 싶을 뿐이다. 어려운 내용을 마냥 무겁게 전한다면 ‘인문학’은 소수의 전유물에 그칠 수도 있을 터. 정여울은 끊임없이 폭넓게 공부하고 여러 분야를 탐구하여 쉽고 즐겁게, 그러면서도 공감의 깊이를 더하는 인문학을 전하고 싶은 사람이다. 수많은 글쓰기의 테마 중 하나이자 결코 생계를 보장해주지 않는 ‘여행’ 이라는 주제를 놓고 독자와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책에서 보는 것만으로는 전부 이해되지 않는 세상의 신비와 수수께끼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글쓰기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직접 알려주고 싶어서라고. 자기 글을 쓰고 강의에 집중하기도 바쁠 텐데 친절하기까지 한 정여울의 기획의도를 듣고 나니 인문학의 따뜻한 감성과 포용력이 느껴진다.
20대,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발견하고 찾아가는 시간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에 위로받는 20대 청춘을 더 이상 찾기가 어려운 세상이다. 청소년을 위한 기고와 강의도 진행하고 있는 정여울은 마지막으로 오늘날의 20대에게 해주고픈 한마디를 남겼다.
“우리네 삶이 지나치게 ‘생존’을 중심으로 구조화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험한 세상에서 어떻게 취직을 하고 살아남아야 할지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한 20대 친구들이 많아요. 그런데 저도 사실 30대 중반까지 그랬습니다. 하지만 그런 고민과 방황의 시간을 헛된 것으로 여기고 좌절하지 마세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발견하고 찾아가는 시간이 됩니다. 세상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내 자신의 깊은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자아’와 꼭 만나시길 바랍니다. 이 만남이 어쩌면 고민과 걱정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일 것이라고 감히 말씀드려봅니다.”
Profile
서울대학교, 한신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를 거쳐 현재 다수의 출강과 네이버 오디오클립 ‘월간 정여울: 당신의 감성을 깨우는 글쓰기 프로젝트’를 진행 중.
2014년
• 여행에세이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 ‘올해의 책’ 선정
2013년
• 산문집 <마음의 서재>로 제3회 전숙희문학상 수상
2006년
• 『공간』, 『씨네21』, 『GQ』, 『출판저널』, 『드라마티크』 등 다수의 매체에 기고한 글을엮어 <아가씨, 대중문화의 숲에서 희망을 보다> 출간
2004년
• <문학동네> 봄호 「암흑의 핵심을 포복하는 시시포스의 암소—방현석론」으로 등단•‘이효석 연구’로 동 대학원에서 국문과 박사학위 취득
•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