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보다 벌에 집중하는 도시 양봉
서울 도심 한복판인 상도동에서 유독 눈에 띄는 건물 하나, 핸드픽트호텔. 지역사회와의 상생을 내세우며 들어선 이곳 옥상에는 조금 특별한 손님을 위한 또 다른 객실이 마련되어 있다. 바로 근면함의 상징인 꿀벌들이 지내는 벌통이다. 도심 속 호텔 옥상에 자리한 벌통이라, 그리 익숙하진 않아도 무척 이채롭다. 사회적기업인 어반비즈서울 박진 대표는 몇 해 전부터 이와 같이 빌딩 옥상 곳곳에 벌통을 만들고 도심 속 환경 재생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도시 양봉이 가진 보통의 양봉 농가들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꿀’보다 ‘벌’에 집중한다는 점이죠. 벌을 키워 얻어낸 결과물인 꿀로 수익을 얻는 것보다는 벌을 키움으로써 그 주변에 벌들이 자랄 수 있을 만큼의 꽃을 피우고 녹지를 만드는 것이 제가 하고 있는 도시 양봉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얻은 꿀 또한 제 활동에 중요한 요소이지만요.(웃음)”
새로운 도전은 언제나 도전받는다
2013년 가정을 꾸리고 첫 아이를 얻은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던 그 무렵, 박 대표는 벌을 키우겠다며 잘 다니던 직장을 돌연 그만두고 이 일에 뛰어들었다. 인생에서 다른 어떠한 시점보다 새로운 도전에 주저하게 되는 그때, 그는 어떻게 그런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걸까?
“본래 시골에서 나고 자란 제게 흙과 풀은 익숙한 놀잇감이었어요. 서울에 올라와 직장을 다니다 우연히 도시 양봉이란 걸 접하게 된 후부터 ‘이 일을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강해졌고 그걸 실행에 옮긴 거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환경에 관심이 많아 따로 농업학을 배우기도 했으니 나름 어느 정도의 준비과정은 거쳤던 것 같아요. 어찌 보면 저만을 생각한 이기적인 선택이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살아가면서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고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상황에 얽매여 주저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어차피 새로운 도전이란 인생의 매 순간 부딪쳐야만 하니까요.”
잘 키운 벌통 하나, 서른 장정 안 부럽다
박 대표는 현재 서울 도심 곳곳 20여 개의 장소에서 벌들을 기르고 있으며 올 연말까지 서울 시내에 이 같은 벌통을 50개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도심 속 벌들은 도시에 어떤 영향을 주는 걸까?
“보통 꿀벌 한 군(群)이 대략 1~4km2(제곱킬로미터)의 면적에 수분(受粉)*에 관여하거든요. 벌통 하나가 놓인 곳의 발화율은 평소보다 20%가 증가합니다. 이렇게 꽃과 풀이 늘어나며 녹지가 조성되면 곤충과 새들이 더 유입되고 이를 통해 도시 생태계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죠. 이 정도 크기의 땅에 수분 작업을 사람이 하려면 서른 명은 족히 필요할 테지만 벌통 하나면 이 모든 게 해결되고 덤으로 꿀까지 얻을 수 있으니 꿀벌은 최고의 친환경 노동력이죠. 도시에 사는 벌들이 모은 꿀이 과연 깨끗할지 걱정하는 분들도 많으세요. 하지만 꽃의 꿀을 머금고 벌통에 돌아와 게워내는 과정에서 벌이 필터 역할을 하기 때문에 보통의 꿀처럼 안심하고 먹을 수 있습니다.”
벌을 통해 사람을 키워내고파
박진 대표는 자신처럼 벌과 환경에 관심이 많은 일반 대중을 위한 일일양봉 체험, 본격적으로 도시 양봉에 뛰어들거나 귀농을 위해 배움을 원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전문양성과정 등도 운영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쪽방촌’으로 불리는 도시 빈민가 주민들에게 양봉을 가르치고 이를 통해 경제적 이득을 얻어 이들의 자립을 돕는 프로그램 또한 진행할 예정이라고.
“벌이 늘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벌을 기르고 보살펴 줄 ‘사람’이 더 필요한 게 사실이거든요. 그간 벌들만 길렀다면, 이제는 벌을 통해 환경을 지키고 가꿔줄 사람을 키우고 싶어요. 먼저 벌이 성가시고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인간생활에 여러모로 유익한 곤충이라는 점을 더 알리고 싶어요. 그래서 보다 더 많은 분이 벌의 중요성, 이로움에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해요.”
꿀벌이 만드는 달콤한 세상
자신이 가진 그 어떤 이름보다 도심 속 농부라는 수식어를 가장 좋아한다는 박 대표에게 앞으로의 꿈과 소신을 물었다.
“우리는 매번 수많은 선택 속에서 자신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고 이에 따른 책임 또한 짊어지며 살아가죠. 하지만 언제부턴가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 자신을 비추고 남들의 말에 더 귀 기울이며 살고 있는 듯해요. 어떠한 선택에 앞서 항상 ‘삶의 비교 대상은 남이 아닌 내가 되어야 한다’라는 게 제 소신이에요.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떳떳한 선택이라면 무엇이든 자신 있게 도전할 생각입니다.”
꿀이 아닌 꿈을 파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박진 대표. ‘꿀벌이 만드는 달콤한 세상’이라는 어반비즈서울의 슬로건처럼 그의 삶에 늘 행복이라는 달콤한 꿀 한 모금이 함께하기를 소망한다.
Profile
박진
1982년생 生 중앙대학교 불문과 학사
2013 ~ 현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농학과 재학
2013.3.~ 현재 어반비즈서울 대표
2013.4.~ 현재 100여 차례의 강연 및 단기교육 진행
2014.10.~2016.10. 서울시 도시농업 운영위원
2015.3. 농촌진흥청 토종벌 교육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