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이 호명된 순간부터
온 국민의 관심을 받다
평창동계올림픽 개최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유치위원회의 ‘입’ 을 맡았던 나승연 전 대변인을 떠올렸다. 외교관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유년 시절을 해외에서 보낸 덕분에 외국어에 능통한 그는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을 위한 최종 프레젠테이션(PT)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이 끝난 직후 유치위원회는 해체됐어요. 공식적인 제 역할도 그때 끝났으니까 ‘전’ 대변인이 맞고 이제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본업에 충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치위에서 일했던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요청이 여기저기서 들어와 강연을 하고, 이를 발판으로 국제 행사 유치 관련 컨설팅도 진행하고 있어요.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에 몸담으며 겪었던 소중한 경험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셈이지요.”
두 번의 실패를 겪고서도 ‘삼세판 승리’를 얻어낸 평창의 유치 성공 직후 나승연에게는 ‘더반의 여신’, ‘프레젠테이션의 여왕’ 등 긍정적인 별명이 붙여졌다. 영어와 프랑스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온화하게 미소 띤 얼굴로 IOC 위원들과 눈을 맞추고 이들의 마음을 평창으로 돌아서게 했으니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며 그의 가족 관계와 과거 활동 경력까지 소개되었고 당시 언론사들은 앞다투어 ‘나승연 모시기’에 나섰다.
“유치위원회의 요청에 따라 저는 남아공 현지에 1주일 정도 더 머물러야 했어요. 그래서 국내 반응이나 상황이 어떤지는 잘 몰랐습니다. 마지막 PT가 끝나고 한국에 있던 지인들로부터 계속 연락이 오길래 많이 응원해주셨구나, 생각만 했었지요. 그러다 인천공항에 도착해보니 기자분들이 너무 많이 기다리고 계셔서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이쪽저쪽 플래시가 터지면서 질문들이쏟아져 나오는데 감당이 안 되더군요. 몇 분 안 되는 PT를 내가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스포트라이트를 혼자 받아도 되는걸까 생각하며 부담스러운 마음에 도망가고 싶었어요.”
그의 말처럼 10여 년 동안 묵묵히 평창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준비했던 사람들 중에는 알려지지 않은 관계자와 일반 국민들도 많다. 나승연 대표는 이들의 노력이 훨씬 더 크고, 자신의 참여를 간혹 ‘피겨 여왕’ 김연아 선수의 공로와 함께 언급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도 않다고 말했다. 자신은 단지 ‘작은 역할’ 을 했을 뿐이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겸손의 미덕이 발견되는 순간이다.
오래 기억에 남는
영어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는 기업
대부분의 학창 시절을 외국에서 보냈던 나승연은 고등학교 3학년 진학을 앞두고 한국에 들어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다 아리랑TV 앵커 1기로 입사한 그는 함께했던 직장 동료들과 회사를 나와 영어 컨설팅 기업 ‘오라티오’를 설립했다. 올해로 15년이 된 이 회사의 공동대표인 그는 스피치 컨설턴트로서 영어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고 있다. 원어민처럼 잘 하지 않아도 충분히 영어를 잘 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설립한 기업에서 그의 역할은 무엇일까?
“당시만 해도 영어로 말을 한다는 것은 마냥 어려운 문제였고 수요도 그리 많지는 않았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은 세상에 많고 앞으로 더 늘어날 것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영어에 능통한 것과 ‘제대로’ 말하는 것은 다르지요. 정확한 문법의 영어를 유창한 발음으로 구사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청중에게 오래 기억될 만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하는 내용과 목소리도 물론 중요하지만 자신감 있는 태도와 표정, 자연스러운 보디랭귀지 등 비언어적인 측면에서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해요. 이 모든 것을 제가 직접 경험한 것들과 만나본 사례들을 토대로 전달하고 싶어서 만든 회사가 오라티오(Oratio)입니다. 거창한 기업 철학이 있다기보다는 소통에 기반을 둔 회사이고, 15년이 지난 지금도 저희 회사의 가장 큰 미션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영어를 잘 하는 편인데도 자신감이 없고 말할 기회가 부족해서 알던 것도 잊어버리거나 점점 더 못 하게 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오라티오에서는 이제 영어뿐만 아니라 모국어 스피치 영역으로까지 확장하여 말하는 법과 소통의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고. 청중이 많든 적든 누군가를 향해 말을 한다는 것은 분명 책임이 뒤따르는 막중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승연은 자신의 말을 누군가가 들어준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영광이자기쁜 일이고 감사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한다. 그가 생각하는프레젠테이션은 필요에 따라 제 목소리를 내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스킬’인 것이다. 이는 가족과 함께 어릴 때부터 캐나다, 영국, 말레이시아, 덴마크 등지에서 살았던 나승연 특유의 성장 배경과도 맞물려 있는 깨달음이다. 한창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학창 시절을 북미, 유럽, 아시아 등 세계 곳곳에서 보냈으니 그 안에서 새로운 것들을 얼마나 많이 보고 느꼈을까?
“단지 해외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저를 부러워하시거나 화려하게만 살았을 것으로 오해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고 열린 가치관을 갖게 됐다는 건 행복한 일이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힘든 시간도 있었지요. 외모는 전혀 다른데 영어는 할 줄 알고, 그러면서 발음은 또 자기네들과 다르니 그게 놀림거리가 되어 따돌림과 인종차별을 겪었습니다. 더 놀라운 건 내가 태어난 한국을 아예 모르는 친구들도 너무나 많다는 거였어요. 충격이었지요. 저는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에서도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평창을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했습니다. 아직도 뉴스 클립으로 잠깐씩 보이는 한국의 모습을 전부로 여기고 세계 어디쯤의 휴전국가로만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소통은 계속돼야 합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 도움을 주고 싶은
이 시대의 롤모델
국제 행사 유치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경영자의 자리로 돌아와서도 틈틈이 강연과 방송을 겸하고 있는 나승연 대표. 여러 가지 일을 하니 스트레스도 많을 것만 같은데 그는 매사 긍정 엔진을 풀가동시켜 특별히 담아두지 않는다고 한다. 시간 날 때마다 하는 운동과 짬짬이 계획해서 혼자 다녀오는 여행이 나승연이 말하는 자신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이야기 끝에 우체국에 대한 그의 특별한 애정도 들을 수 있다.
“외국에서 학교를 다니며 스포츠를 자연스레 일상으로 접하다 보니 지금도 운동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요. 한국 친구들과 주고받던 편지와 소포는 혼란스러웠던 그 시절의 스트레스를 덜어주기도 했습니다. 친구들이 보내준 손편지가 너무 소중해서 매일읽어보고 답장을 썼지요. 그래서 우체국을 떠올리면 항상 애틋한 마음이 있고, 요즘도 정말 마음을 표현하고 싶을 땐 선물을 사서 우체국을 통해 보내곤 합니다.”
수많은 취업준비생과 유리천장을 뚫고 성장하고픈 여성들이 나승연을 롤모델로 꼽을 때 그는 희망의 메시지를 보낸다.
“언젠가 메릴 스트립이 ‘롤모델이란 50%는 정말 그 사람의 모습이고 50%는 남들이 봤을 때 이랬으면 좋겠다 싶은 이상적인 모습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의 말처럼 저도 100% 훌륭한 사람은 아니지만 더 나은 내가 되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뿐입니다. 단 몇 분에게라도 도움이 된다면 제가 하고 있는 일들을 계속 해내고 싶습니다.”
끝으로 나승연은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이 ‘대한민국 5천만의 올림픽’임을 강조했다. 대회의 성공 여부도 우리 국민의 역할과 태도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며, ‘지상 최고의 쇼’라고 불리는 올림픽을 꼭 현장에서 관람하고 즐겼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인터뷰 내내 조금은 덜 다듬어진 한국어 발음으로
자신의 역할을 겸손하게만 표현했던 그는 누가 뭐래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성공의 주역이었다.
Profile
나승연
1995년 이화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 졸업, 한국은행 입사
1996년 아리랑국제방송 1기 공채 기자로 선발
2002년 한일월드컵 조직위원회
2003년 오라티오 설립
2010년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대변인 활동 시작
2011년 대한적십자사 홍보대사
2012년 여수엑스포 유치위원회, 체육훈장 맹호장
2013년 청년위원회 청년멘토 위원